- 아이고.. 오래도 걸렸지요?
- 그런가요?
- 네.. 길게 돌아 왔습니다.
- 당신은 누구죠?
- 그 말에 앞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 되십니까?
- 전 당연히 모르겠죠.
- ..추측이라도 듣고 싶은데..
- 시간이 많으신가 봐요?
- ..제 심기를 건드시면 곤란하실텐데?
- ...........
- 자,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 되십니까?
- 생전, 전 종교를 믿지 않았어요. 그렇게 살아 왔구요.
죽는다면, 전 이렇듯 제가 생각할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 했죠. 하지만 제가 틀린건가요?
- 일단 듣기로 하죠, 왜 그렇게 생각 했죠?
- 그야 당연히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세포들 역시,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세포들 또한 영혼을 갖고 있을텐데, 그것들을 이어주는 물리적인
그릇이 사라진 "죽음" 이후엔, 당연히 그것들을 담고 있지 못하는것 아닌가요?
- 흥미롭군요. 그 가설의 근간은 어떻게 됩니까?
- 제 가설의 근간은 없어요. 그저 제 망상에 의거한 추측일 뿐이죠. 제가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 곤란하지만, 뭐 들어는 보죠.
-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누가 정의내린 것입니까?
- ..그야 인간일테지요.
- 제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죽음"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신가요?
- 뭐.. 저도 다른 인간들처럼 똑같이 생각합니다만, 끝.. 사후세계.. 뭐 이렇게 말이죠.
- ..하.. 역시 당신조차도 인간을 벗어나진 못했군요.
- 무슨 뜻이죠?
- 인간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인류가 나고 성장한 이례, 인류는 자신들이 관찰한 것들을 모아 놓고,
그것을 "진리"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귀납적인 정의 따윈, 관찰과 근거에 의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과학" 에서조차
흔하게 뒤짚히고 부정되고 있다는게 인류의 현 주소입니다. 심지어 오늘날 까지도 말이죠.
우리가 믿어 왔던 그 "진리"가 깨어져 버린다는 말 이에요.
이게 무얼 뜻하는지 아시겠어요?
- 음.. 그 끝을 보고 온 사람이 없으니, 확실한건 세상에 없다. 이 말인가?
- 제 말을 제대로 이해 하셨군요.
- 하지만.. 반대로 그 끝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그것이 추측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는 소리 아닌가? 그 추측이 사실일수도 있다는 말이잖나.
- 당신이 말하는 그 반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요?
- 어떠한 미지의 법칙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소릴세. 사후의 세계가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 ............전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종교는 있지요.
- 그게 뭔가?
- 불교 입니다.
- 불교?
- 네. 삶을 고해로 죽음을 해탈로 보는 불교의 종교적 이념 말입니다.
또 하나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신앙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 말해보게.
- 바로 애니미즘 입니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원시 종교지요.
어쩌면 인류는, 인류의 태동기 직후에 곧바로 진리를 깨달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아까 제가 말한 제 몸 전체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 역시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이 같은 구성들은 결국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 그래서 그렇게 본인이 자살했다라고 믿는 건가?
- 믿는게 아닙니다! 전 죽었습니다.
- 그렇군. 그렇다면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렇게 물리적인 그릇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나?
- 모릅니다. 다만, 전 제 자아를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 구성원들이 없는 제 진정한 "자아"를 말이죠.
그렇기에 전 이렇게 자살을 한 것입니다.
선생께선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곳의 삶은 어떻습니까? 죽음 후에도 그렇게 살아 지던가요?
사실 죽음은, 죽음이 아닌 육신의 족쇄를 벗어나기 위한 그러한 일련의 과정 이였던가요?
아니면,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세상에 또 다른 죽음이 있었던 것인가요?
대답을, 대답을 해주세요 대답을!
- 잠깐... 질문이 너무 과하군..
아까, 내가 처음 한 말. 기억 하나?
-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이라고 하셨었죠.
- 잘 기억 하는군.
- 이제 전 어떻게 되는거죠?
- 저기 침대처럼 보이는게 보이는가?
- 네.
- 저기에 길게 누워 있게.
- 저, 조,조금이라도 마,말씀만해 주신다면..!
- 쉿.......... 그대로 눈을 감게.
- 네...
"우당탕"
- 어 빨리 들어 오라니까..! 어 빨리 눈치채기 전에 어서..! 야 빨리 묶어!!
- 뭐, 뭐야 이거 뭐하는 짓이야!!
- 약 투여할 시간이 지났으면 지났다고 말을 해야 될거 아니야.
저 미친놈이 나한테 뭔짓을 할 줄 알고!! 니들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 죄,죄송합니다 원장님..
- 됐으니까 빨리 약 투여하고 저새끼 독방에 처 넣어.
- 놔, 놔!! 선생!! 이것이 죽음의 시작 입니까!? 살아서도 이런 취급을 당하고!
죽어서까지 이런 취급을..! 선생!! 말씀을 좀 해주십쇼!! 네!?
- 뭐라는거야 저 또라이새끼! 야! 내가 한번만 말하는거 니들도 알지?
- 네...
- 저새끼 다시 한번 내 방에 몰래 들어오는 날엔, 그날부로 니들 병원에서 아웃이야 아웃! 알았어!?
- 네.. 조심하겠습니다.. 야..! 손 제대로 묶어..! 약 투여 했지..?
- 선생.. 선생.. 선생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 이것이 육체의 그릇을 벗어나는
중인건가요.. 선생.. 전 드디어 제 원초적인 자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