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은 후,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극 중 주인공의 입장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을 해 봤다.
아마 구구단 정도를 배우던 그런 어린 시절,어느 교과목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담임이 다음 시간에 공부할 단원을 통째로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그 숙제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월은 저만치 흘러 이다음 문장 첫 글자조차 기억해낼 수 없어졌음에도,
저 첫 문장 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내 뇌리에 박혀있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뒤, 다시 한 번 저 문장이 떠올랐다.
혹자는 인간은 누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인간은 타인과 연결고리를 욕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동반된다.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실망한다면, 나와 멀어진다면, 나로 인해 슬퍼진다면, 나를 거절한다면,
나라는 존재를 흉측한 벌레처럼 여긴다면...
우리는 그렇게 좋은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가면 속에 감춰둔 채로 타인을 대한다.
그러나 나의 본 모습은 가면의 형태에 꾸역꾸역 끼워 맞춰진 채로 괴리감을 맛보고,
때때로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용기는 없다.
그럼 이 괴리감과 자기혐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나 스스로만큼은 나의 비릿한 감정들과 추악한 형태들도 감싸 안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밀어내고 외면해야 할 불순물이 아닌 포용의 대상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온전하게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그렇기에 내가 나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란츠 카프카도 정서적으로 꽤나 불안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타인의 애정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정을 잃을까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고...
그런 그의 내적 고통이 이 '변신'이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