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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항공 병과에 관한 간략한 정리 글 (추가)
게시물ID : history_196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3
조회수 : 113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2/15 17:56:30
>일본 제국 하악 거리는 글 아닙니다,
>통설로 널리 퍼진 이상한 내용이 많아서 관련 내용을 작성해봅니다, 구태여 역사 게시판인 이유는 관련 내용이 이 게시판의 글에서 언급된바 있기때문입니다.;
>누차 다시 말씀드리지만 일본 제국 하악 거리는 글 아닙니다.


일본 제국군에 입대하여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정을 거쳐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해군 병학교와 두번째로 예비 연습생 이른바 예과련입니다, 이 중 전자인 해군 병학교가 사관을 후자인 예과련이 하사관을 배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교육 기관의 인원 모집은 매우 엄격한 기준에 따랐고 또 굉장히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그 만큼 교육 기간도 상당하였고 커리큘럼도 국어, 한문, 수학, 지리, 역사, 영어, 화학 등 12과목의 보통학, 운용술, 항해술, 포술, 수뢰술, 통신술, 항공술, 기관술, 정비술, 전측술 등 9과목의 군사학, 그리고 유도, 검도, 럭비, 수영, 스모, 축구, 배구 등 10과목의 체육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게 잘 짜여 있는 편이었습니다, 여기에 100시간 이상의 항공 모함등에 배비될 경우는 추가로 50여 시간을 더하여 초등, 중등,고등 과정 비행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커리큘럼에서 볼수 있듯이 이들 파일럿은 다른 나라의 그 것과 다르게 함선과 화포, 함포의 운용, 상륙전, 육상전 필요하다면 장교로서 지휘 임무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활약할것을 요구받은 정예 중에 정예라는 겁니다,

그 만큼 군기 역시 엄격하기로 타 병과에서 따라올 곳이 없었고, 육성에 드는 비용 시간은 이루 말할수 없었지요.

다만 대본영에서 잘 못 생각한 것은 소비에 따른 공급 문제입니다, 어찌보면 경제적인 이야기인데 이 들은 미국과의 전쟁에 있어 당연히 전례 즉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미 겪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 없이 소모되는 인원 만큼 충분히 보충할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문제였지요.

항공기를 운용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문제가 아닌 만큼 최소한의 자질이 필요한데 이 자질을 갖춘 이 들을 배출해낼 일본의 인재풀은 미국에 비할게 못되었습니다, 더하여 교육 기관의 숫자나 선발 인원, 규모 무엇하나 미국을 앞지르는 것이 없었지요,

항공 산업의 전반적인 인프라의 문제과 보급, 그리고 높으신 분독립유공자들의 실패등 다양한 문제들이 겹치며 소모되는 인력은 급격하게 증가되었고, 뒤늦게 비행 훈련 시간과 교육 기간을 단축 시키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질적 약화를 가져와 항공기의 조종 기술이 심각한 수준으로 후퇴하기까지 했습니다,

가령 대전말 미군의 경우 초등 비행 교관이라 할 지라도 평균 1천 시간 이상의 비행 을 거친 사람만을 요구 했고 3명, 중고등 교육 과정은 5명 이내의 학생만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우 평균 70시간의 비행 을 거쳤다면 한 사람의 파일럿으로서 제 몫을 해낼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추가/

일본군의 인프라적 측면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글의 답글에서 가져와 보자면 가령 A6M 시리즈의 최대 문제점은 기술적 기반의 부재로 인해 낡은 전술을 고집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근본적인 설계 그자체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이 언급하신 43년부터의 격차는 양 국가의 기술적 진보에 따른 것이지 기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니 말입니다, 

가령 A6M과 F6F와의 격차가 벌어진 것은 F6F가 R-2800-10w 엔진을 달면서 부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다 이해가 쉬울듯 합니다, 이는 당장 기반이 되는 전반적인 인프라 그 자체에서부터 큰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비릇된 거죠.

또한 보급의 문제를 들자면 예를 들어 하야테는 설계만 좋은게 아니라 성능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이제 호마레 엔진은 고 품질유를 요구하나 실제는 사정이 좋았던 해군도 87 옥탄유를 쓰던 때이고, 크랭크 베어링의 구조 강도나 공정률이 형편없이 낮음에도 보급도 힘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군 파일럿의 출격회수는 연합군 파일럿의 수배에 달했고 절연 고무조차 제대로 보급이 안될 정도라 점화 플러그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남방 해역 이후 하루 한척 꼴로 수송함이 가라앉아 해군에서는 출항을 거부하고 있어 육군에서 수송용 잠수함을 만드네 마네 하던 것에서 볼수 있듯 보급은 항공대뿐만 아니라 일본군 전체에 지독하리 만큼 큰 타격을 안겨주었지요.

추가2/ 비단 일본만 이런건 아닙니다, 영국군과 독일군의 경우 한창 전황이 안 좋을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10시간 정도 비행훈련 시키고 자대로 보냈습니다. 물론 미국은 최소 120시간을 비행 훈련에 투자했지요.

추가3/ 훈련 기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수 있겠습니다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최소한의 전투를 할줄 아는 즉 그럭 저럭 굴릴수 있는 파일럿을 얻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가령 사카이 사부로의 경우 조종사학교에 합격한 것은 37년이었고, 첫 실전투입은 38년에 중국에서 있었습니다. 영국의 에이스 로알드 달의 경우 39년 말에 자원 입대를 했습니다만 파일럿 이수 과정은 6개월 뒤에 수료했고 40년 7월에 실전투입되었지요.

즉 이 당시의 조종사 양성 기간은 그렇게 생각처럼 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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