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50만의 대한민국 제2의 수도 부산광역시. 시민이면서도 자신의 행정구역 안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6기가 가동되며, 이걸로 모자라 같은 장소에 신규 4기가 추가되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더 많다. 이 핵 중 ‘폭탄’이 있다. 현 대통령 아버지 시대에 만들고 2007년 6월 9일에 수명 30년을 채운 고리원전 1호기다. 전 세계 핵발전소 평균 수명은 20년 정도니 10년을 더 쓴 셈이다. 한 번 망가져 방사능이 누출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는 원자력발전의 속성상 이 정도 사용했으면 폐기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원자력을 ‘환경 친화적 에너지’라고 말하는 MB는 10년 더 쓰자고 했다. 그러나 고리원전 1호기는 2013년 기준으로 사고나 고장으로 672차례나 가동이 중단되는 불안한 전조를 세상에 알렸다.
2016년 2월 27일 일요일 새벽 1시 25분.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야음을 깨는 요란한 경보음이 당직실을 뒤덮는다. 당직자. 당황하지만 황당하지는 않았다. 시점을 특정할 수 없으나 이미 예견된 사태라고 직감함 때문 아닐까. 당직자는 전화기를 들고 있다. “블랙아웃 상태입니다.” 상대쪽 즉 원자력위원회 당직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상태가 심각하다. 정전 상태다. 원자로마저 전기가 안 들어가고 있다. 15분이 지났다. 2012년 2월에도 전기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12분으로 그 사달은 그쳤다. 한 달 동안 숨겼어도 별 문제가 없었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지금은 속수무책이다. 정전 후 20여분 뒤 1시 45분. YTN 속보가 뜬다. “고리원전 정전 신고 들어와.” 술자리를 함께하던 원자력위원회 소속 사무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엿본 YTN 기자의 특종이었다.
장면은 청와대 비서실장 침실로 넘어간다. 눈을 채 못 뜬 비서실장은 여러 번 바닥을 두들기다가 전화기를 잡고서는 얼굴에 댄다. “누군데 야밤에 전화야?”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실세 비서실장. 새벽 2시 반 전화기로 들리는 그 목소리는 영락없는 팔순 앞둔 노파의 것이었다. 상대는 YTN 보도를 보고 전화한 청와대 야간 당직자. 목소리는 다급해야 한다. “실장님, 이제 한 시간 남았습니다.” “뭐가?” “이대로 한 시간 안에 전기가 돌지 않으면 핵 연료봉이 녹기 시작합니다. 노심 융용이라고…….” “어려운 말 하지 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만 말해!” “후쿠시마처럼 되는 겁니다.” “뭐?” 한동안 말문이 막혀 있던 비서실장 입에서 끝내 나온 말.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야.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가동할 일이야. 그쪽으로 연락해.”
다시 고리원자력본부. 당직실에는 전화벨만 요란하게 울린다. 그러나 명절 중 휴업으로 철시한 매장의 모습 그대로다. 직원들은 모두 발전소를 떠났다. 아니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기술이 모자라 세 조각을 붙여 만든 ‘용접 원자로’를 무한히 쓰다가는 언젠가 파국을 만날 것을. 원전 전문가들이 실종된 현장에 구급차, 소방차가, 10분 뒤 방송사 중계차가 도착했지만 방법이 있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2시간이 경과했다. 그렇게 새벽 3시 반이 됐다.
“펑”
그래, 그랬다. 후쿠시마 원전이 수소 폭발할 때도 저 폭연이었다. 저 흉물을 어떻게든 가동하려고 들인 3000억 보수(補修) 비용이 아까운 게 아니다. 저 폭발이 미칠, 계수할 수 없는 파괴력, 이게 문제다.
“네, 알겠습니다.”
새벽 3시.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불야성이 됐다. 아파트마다 불이 켜졌다. 한쪽에서는 토하듯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 방송사가 긴급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작업복 차림의 총리가 나왔다. “국민 여러분, 고리 원전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고, 가동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관계 방재 인력을 총동원해 사태 수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주민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앞으로 이어질 정부의 안전 대책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한 젊은 기자 하나가 담화 중임에도, 아직 발언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끼어든다. “가동 중단 사태가 아니지요. 폭발 사고가 났는데요.” 총리는 노려보는 것만으로 답을 대신했다. 기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가 “정확한 경위를 밝혀주십시오”라는 추궁이 토해진다. 그러자 총리, “가만히 있어요!”라며 일침을 놓는다.
곧 이어진 방송뉴스. “검경은 전담팀을 구성해 원전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세력과 개인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했습니다.” 조용한 수도권과 달리 영남권은 미명부터 ‘동란’ 그 이상의 상태다. “고리원전 사고 대책본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가 흐르는, TV가 켜진 빈 집이 수두룩했다. 공중에서 부감(俯瞰)하니 고속도로 입구로부터 수km의 장사진이 연출된다. 국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은 초봄이라 해는 8시나 돼야 떴다. 청와대 관저 주변. “아직 취침 중이십니다. 보고서는 계속 방안으로 드렸습니다만.” PK는 이미 아수라판이 됐지만 7시간 가까이 대통령 주재 회의는 없었다. 잠시 후 관저에서 대통령이 나온다. 그리고 꺼내는, 사태 발생 후 첫 일성. “부산은요?”...가 아니다. 아주 건조한 어조였다. “정전되면 발전기로 전기를 가동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전(發電)하기가 힘듭니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대통령 앞에 나타난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이미 방사능이 부산 전역에 번졌다고 합니다.”
아뿔싸. 바람이 초속 4미터 강풍이 불던 밤이었다. 고리발전소에서 방사능은 기장군을 20분 만에, 90분이면 부산 울산 전역을 덮는다 했다. 정말 그랬다. 그렇다면 이 사고로 이주 및 접근 금지 조치를 취해야 할 지역의 반경은 얼마일까. 체르노빌 당시, 소련 정부는 반경 30km의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켰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조차 체르노빌의 6배에 해당하는 세슘 량이 검출됐다고 한다. 앞서 후쿠시마와 같은 타격이라고 했다. 고리 원전으로부터 40km면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폐허의 땅이 된다.
울산 인구 120만. 경남양산 인구 30만. 앞서 부산 인구를 350만이라 했던가. 합해 500만이 살던 터를 버려야 한다. 언제나 귀향이 가능할까. 수 년 수 십 년 정도가 아니다. 수 백 년 후에나 자연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똑같은 사정의 후쿠시마가 그러하니. 120년도 못사는 인간에게 있어 그렇다면,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살아서 못 돌아간다는 점에서 명왕성과 다르지 않다.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보자. 대통령 찬양 기사로 즐비한 한 보수 인터넷 신문에는 “고리원전 방사능 누출 사건 이상해, 북한 소행일 수도”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다. 물론 이내 뭇매를 맞고 삭제된다. 문제는 부산 울산 경남양산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특히 노약자, 장애인들 중 독거자들에게 도시 탈출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아침, 눈을 뜨고서야 사방천지가 대통령 대신 방사능이 지배하는 지역, 무법질서임을 비로소 알게 된 시민도 상당했으니 말이다.
사중오중 방호복을 입고 사고 지점으로부터 40km 떨어진 밀양을 시찰한 대통령, 대구실내체육관으로 피신한 부산 주민들을 향해 가는 중이다. 이보다 앞서 두 달도 안 남은 총선 탓인지, 새누리당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대통령께서는 지금 사고 현장에 방문 하셨어요”라며 구원자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 같은 정신 나간 드립은 없었다. 상황이 그만큼 위중했기에. 곧 이어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피란민들의 비난과 욕설이 난무했다. 간신히 수습되자 대통령은 “안타깝고 애가 타고 참담하겠지만 수습 소식을 기다려주기 바란다”며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 어디선가, 저간의 맥락 및 이재민 정서와 무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락없었다. 방송 시청자들은 이 부분만 봐야 했다.
총선이 두 달도 안 남았다고 했다. 패색이 짙어 지리멸렬한 야당을 상대로 얼마나 크게 또 폼 나게 이겨줄까 고심하던 새누리당 내 분위기는 ‘싹’ 사라졌다. 대구에서 생수병 대병을 맞고 돌아온 당 대표에게 한 당직자, 안녕을 묻기도 전에. “대표님, 여의도연구원 총선 여론조사 자료가 나왔습니다.” 데이터를 받아들었다. “한 군데도 이기는 지역구가 없는 거야? 혹시 새정치연합하고 헷갈린 거 아닌가?” 이런 민망한 질문 후 침묵이 흘렀다.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머쓱했으니까.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응답률이었습니다. 75%입니다.”
다시 청와대로 가자. 국무회의 석상.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사태가 터지지 마자 바로 도망쳤다고요?” “네.” 모처럼 이 같은 소식에 화색이 묻어 있었다. ‘반전의 모멘텀’이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그리고 쏟아진 말. “방송이 정권책임론을 말하면 곤란하지. 방송통신위원장, 방송사에 연락해서 핀트를 잘 맞추라고 하세요. 핵심은 도망간 발전소 직원들 아닙니까. 그리고 발전소 운영주체가 누군가? 한전? 아, 한국수력원자력이라고? 국정원장, 한수원 사장 혼외자식 없는지 살펴보세요.” “청와대가 방사능 누출 사태를 어떻게 막나. 안 그래? AI도 정권책임, 세월호도 정권책임, 종북이 아니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지.” “각하, 눈물의 기자회견 한 번 해주시지요. 민심을 다독이고... 다가올 선거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안정 의석도 확보하고…….”
총선 5일 전, 부산, 울산, 경남양산을 제외한 전국에 새누리당 당직자, 국회의원, 당원들이 1인 유세를 펼친다. “도와주십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거리마다 플래카드에는 대통령이 눈물 사진이 실린다. 그리고 다시 받아든 여론조사 결과, 당 대표는 아무 말 없이 씩 웃고 만다. 이때 당 홍보기획본부장에게 전화가 온다. 콜백이었다. “아, 본부장, 내일 출범하는 당 개혁 기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쇄신위원회? 아니라고? 그러면 혁신위원회? 그것도 아니면, 아, 변혁위원회... 좋아요. 당신은 정말 최고의 선거홍보전문가야! 하하하…….” 사고 발발 후 50여일. 이 정도면, 위기 상황을 반전하기에 충분한 골든타임이다. 새누리당에게는.
이 글은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프레시안 기고문 ‘핵발전소 ’펑’, 해운대 30분-부산시 90분이면 초토화’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356
2016년 2월 27일 일요일 새벽 1시 25분.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야음을 깨는 요란한 경보음이 당직실을 뒤덮는다. 당직자. 당황하지만 황당하지는 않았다. 시점을 특정할 수 없으나 이미 예견된 사태라고 직감함 때문 아닐까. 당직자는 전화기를 들고 있다. “블랙아웃 상태입니다.” 상대쪽 즉 원자력위원회 당직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상태가 심각하다. 정전 상태다. 원자로마저 전기가 안 들어가고 있다. 15분이 지났다. 2012년 2월에도 전기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12분으로 그 사달은 그쳤다. 한 달 동안 숨겼어도 별 문제가 없었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지금은 속수무책이다. 정전 후 20여분 뒤 1시 45분. YTN 속보가 뜬다. “고리원전 정전 신고 들어와.” 술자리를 함께하던 원자력위원회 소속 사무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엿본 YTN 기자의 특종이었다.
장면은 청와대 비서실장 침실로 넘어간다. 눈을 채 못 뜬 비서실장은 여러 번 바닥을 두들기다가 전화기를 잡고서는 얼굴에 댄다. “누군데 야밤에 전화야?”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실세 비서실장. 새벽 2시 반 전화기로 들리는 그 목소리는 영락없는 팔순 앞둔 노파의 것이었다. 상대는 YTN 보도를 보고 전화한 청와대 야간 당직자. 목소리는 다급해야 한다. “실장님, 이제 한 시간 남았습니다.” “뭐가?” “이대로 한 시간 안에 전기가 돌지 않으면 핵 연료봉이 녹기 시작합니다. 노심 융용이라고…….” “어려운 말 하지 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만 말해!” “후쿠시마처럼 되는 겁니다.” “뭐?” 한동안 말문이 막혀 있던 비서실장 입에서 끝내 나온 말.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야.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가동할 일이야. 그쪽으로 연락해.”
다시 고리원자력본부. 당직실에는 전화벨만 요란하게 울린다. 그러나 명절 중 휴업으로 철시한 매장의 모습 그대로다. 직원들은 모두 발전소를 떠났다. 아니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기술이 모자라 세 조각을 붙여 만든 ‘용접 원자로’를 무한히 쓰다가는 언젠가 파국을 만날 것을. 원전 전문가들이 실종된 현장에 구급차, 소방차가, 10분 뒤 방송사 중계차가 도착했지만 방법이 있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2시간이 경과했다. 그렇게 새벽 3시 반이 됐다.
“펑”
그래, 그랬다. 후쿠시마 원전이 수소 폭발할 때도 저 폭연이었다. 저 흉물을 어떻게든 가동하려고 들인 3000억 보수(補修) 비용이 아까운 게 아니다. 저 폭발이 미칠, 계수할 수 없는 파괴력, 이게 문제다.
“네, 알겠습니다.”
새벽 3시.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불야성이 됐다. 아파트마다 불이 켜졌다. 한쪽에서는 토하듯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 방송사가 긴급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작업복 차림의 총리가 나왔다. “국민 여러분, 고리 원전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고, 가동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관계 방재 인력을 총동원해 사태 수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주민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앞으로 이어질 정부의 안전 대책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한 젊은 기자 하나가 담화 중임에도, 아직 발언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끼어든다. “가동 중단 사태가 아니지요. 폭발 사고가 났는데요.” 총리는 노려보는 것만으로 답을 대신했다. 기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가 “정확한 경위를 밝혀주십시오”라는 추궁이 토해진다. 그러자 총리, “가만히 있어요!”라며 일침을 놓는다.
곧 이어진 방송뉴스. “검경은 전담팀을 구성해 원전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세력과 개인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했습니다.” 조용한 수도권과 달리 영남권은 미명부터 ‘동란’ 그 이상의 상태다. “고리원전 사고 대책본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가 흐르는, TV가 켜진 빈 집이 수두룩했다. 공중에서 부감(俯瞰)하니 고속도로 입구로부터 수km의 장사진이 연출된다. 국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은 초봄이라 해는 8시나 돼야 떴다. 청와대 관저 주변. “아직 취침 중이십니다. 보고서는 계속 방안으로 드렸습니다만.” PK는 이미 아수라판이 됐지만 7시간 가까이 대통령 주재 회의는 없었다. 잠시 후 관저에서 대통령이 나온다. 그리고 꺼내는, 사태 발생 후 첫 일성. “부산은요?”...가 아니다. 아주 건조한 어조였다. “정전되면 발전기로 전기를 가동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전(發電)하기가 힘듭니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대통령 앞에 나타난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이미 방사능이 부산 전역에 번졌다고 합니다.”
아뿔싸. 바람이 초속 4미터 강풍이 불던 밤이었다. 고리발전소에서 방사능은 기장군을 20분 만에, 90분이면 부산 울산 전역을 덮는다 했다. 정말 그랬다. 그렇다면 이 사고로 이주 및 접근 금지 조치를 취해야 할 지역의 반경은 얼마일까. 체르노빌 당시, 소련 정부는 반경 30km의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켰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조차 체르노빌의 6배에 해당하는 세슘 량이 검출됐다고 한다. 앞서 후쿠시마와 같은 타격이라고 했다. 고리 원전으로부터 40km면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폐허의 땅이 된다.
울산 인구 120만. 경남양산 인구 30만. 앞서 부산 인구를 350만이라 했던가. 합해 500만이 살던 터를 버려야 한다. 언제나 귀향이 가능할까. 수 년 수 십 년 정도가 아니다. 수 백 년 후에나 자연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똑같은 사정의 후쿠시마가 그러하니. 120년도 못사는 인간에게 있어 그렇다면, 부산 울산 경남양산은 살아서 못 돌아간다는 점에서 명왕성과 다르지 않다.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보자. 대통령 찬양 기사로 즐비한 한 보수 인터넷 신문에는 “고리원전 방사능 누출 사건 이상해, 북한 소행일 수도”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다. 물론 이내 뭇매를 맞고 삭제된다. 문제는 부산 울산 경남양산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특히 노약자, 장애인들 중 독거자들에게 도시 탈출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아침, 눈을 뜨고서야 사방천지가 대통령 대신 방사능이 지배하는 지역, 무법질서임을 비로소 알게 된 시민도 상당했으니 말이다.
사중오중 방호복을 입고 사고 지점으로부터 40km 떨어진 밀양을 시찰한 대통령, 대구실내체육관으로 피신한 부산 주민들을 향해 가는 중이다. 이보다 앞서 두 달도 안 남은 총선 탓인지, 새누리당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대통령께서는 지금 사고 현장에 방문 하셨어요”라며 구원자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 같은 정신 나간 드립은 없었다. 상황이 그만큼 위중했기에. 곧 이어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피란민들의 비난과 욕설이 난무했다. 간신히 수습되자 대통령은 “안타깝고 애가 타고 참담하겠지만 수습 소식을 기다려주기 바란다”며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 어디선가, 저간의 맥락 및 이재민 정서와 무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락없었다. 방송 시청자들은 이 부분만 봐야 했다.
총선이 두 달도 안 남았다고 했다. 패색이 짙어 지리멸렬한 야당을 상대로 얼마나 크게 또 폼 나게 이겨줄까 고심하던 새누리당 내 분위기는 ‘싹’ 사라졌다. 대구에서 생수병 대병을 맞고 돌아온 당 대표에게 한 당직자, 안녕을 묻기도 전에. “대표님, 여의도연구원 총선 여론조사 자료가 나왔습니다.” 데이터를 받아들었다. “한 군데도 이기는 지역구가 없는 거야? 혹시 새정치연합하고 헷갈린 거 아닌가?” 이런 민망한 질문 후 침묵이 흘렀다.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머쓱했으니까.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응답률이었습니다. 75%입니다.”
다시 청와대로 가자. 국무회의 석상.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사태가 터지지 마자 바로 도망쳤다고요?” “네.” 모처럼 이 같은 소식에 화색이 묻어 있었다. ‘반전의 모멘텀’이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그리고 쏟아진 말. “방송이 정권책임론을 말하면 곤란하지. 방송통신위원장, 방송사에 연락해서 핀트를 잘 맞추라고 하세요. 핵심은 도망간 발전소 직원들 아닙니까. 그리고 발전소 운영주체가 누군가? 한전? 아, 한국수력원자력이라고? 국정원장, 한수원 사장 혼외자식 없는지 살펴보세요.” “청와대가 방사능 누출 사태를 어떻게 막나. 안 그래? AI도 정권책임, 세월호도 정권책임, 종북이 아니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지.” “각하, 눈물의 기자회견 한 번 해주시지요. 민심을 다독이고... 다가올 선거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안정 의석도 확보하고…….”
총선 5일 전, 부산, 울산, 경남양산을 제외한 전국에 새누리당 당직자, 국회의원, 당원들이 1인 유세를 펼친다. “도와주십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거리마다 플래카드에는 대통령이 눈물 사진이 실린다. 그리고 다시 받아든 여론조사 결과, 당 대표는 아무 말 없이 씩 웃고 만다. 이때 당 홍보기획본부장에게 전화가 온다. 콜백이었다. “아, 본부장, 내일 출범하는 당 개혁 기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쇄신위원회? 아니라고? 그러면 혁신위원회? 그것도 아니면, 아, 변혁위원회... 좋아요. 당신은 정말 최고의 선거홍보전문가야! 하하하…….” 사고 발발 후 50여일. 이 정도면, 위기 상황을 반전하기에 충분한 골든타임이다. 새누리당에게는.
이 글은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프레시안 기고문 ‘핵발전소 ’펑’, 해운대 30분-부산시 90분이면 초토화’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