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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살인사건 - 죽음을 연출한 사진작가의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964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99콘
추천 : 19
조회수 : 7609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7/11/16 23:21:25
이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잔인한 내용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지말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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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청산가리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독극물로 살해하는 방법은 흔한 살인 방법중의 하나지만 
이번에 소개해드릴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피해자에게 독극물을 피해자게에 먹인 후 
서서히 죽어가는 순간을 사진을 찍어 죽음의 과정을 연출했다는 것이죠
살인의 방법보다도 과정때문에 해외언론에도 소개되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던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1983년 1월 서울의 구로구( 현 금천구) 호압산의 어느 별장에 근처에 놀던 아이들이
낙엽더미에서 나체의 20대 여성의 사체가 발견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시신이 실오하기 하나 걸치지않은 상태였던 탓에 시신을 발견한 사람의 증언으로
누가 마네킹을 갖다 버린줄 알았다고 합니다.
 
사건발생 3일 뒤 밝혀진 피해자는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던 김 씨(당시 24세)였습니다.
부검결과 특별한 외상과 저항의 흔적이 없었고 위에서 치사량의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이 발견되  
숨진 김 씨의 사인을 시안화칼륨에 의한 중독사망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특별한 외상과 저항의 흔적이 없고 위에서 치사량의 청산가리가 발견된 점을 들어
치정에 얽힌 면식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고 경찰은 수사를 진행합니다.
처음 경찰은 피해자 김 씨의 거주지 성남에서 구로구까지 이동 동선을 파악하는데 집중하지만
그녀가 무슨 이유로 거기까서 사망했는지 밝히는데는 실패합니다.
경찰의 조사결과 김 씨는 경제적 이유로 평소 알고지내던 미용재료상의 소개로
11월에 서울 가락동의 한 퇴폐이발소에서 보조 면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업주의 증언으로는 업소에서 실명을 쓰지않고 예명으로 부르기 때문에
숨진 김 씨의 본명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일한지는 한달 정도 되었는데 가게에서는 "진 양"으로 통했는데
일하는 동안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는데 출근한지 한달 쯤 되던날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워낙 사람의 이동이 잦은 업종이라 업주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했지만 경찰은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하고 시신을 나체로 유기한 점등을 고려해
치정에 무게를 두고 숨진 김 씨를 자주 찾았다는 단골손님들을 용의선상에 두고 하나씩 불러 조사를 합니다.
그 중에서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한 손님이 있는데 김 양을 자주 찾았다는 이야길 업주에게 듣습니다.
업주가 말한 사람은 이동식(당시 42세) 본업은 보일러 배관공이지만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11회의 수상 경력과 개인전을 연 적도 있는 아마추처 사진작가 쪽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이 이동식의 집에 찾가 진 양 (사망한 김 씨)과의 그녀와의 관계 등 통상적인 질문 몇가지를 합니다.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였을 뿐이고 진 양이 마음에 들어 자주 찾아갔었다고 대답하는 이동식 에게
형사가 이동식에게 당신의 사진을 좀 보고 싶다며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찍었다며 말한 사진을 내놓은 사진이 하나같이 기괴했습니다.
사진들은 시체가 아니라 연출된 사진이라는 설명이 있긴했지만
사진의 주인공들은 모두 나체의 여성이었고 피흘리고 칼에 찔리고 상처나고 목을 멘
잔혹한 죽음의 순간들을 찍은 사진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사진들을 접한 적이 없는 형사들이 기괴한 사진들에 둘러싸여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이동식은 형사들의 눈을피해 사진 한장을 벽과 가구사이에 밀어넣어 숨기려는 찰나
형사한명이 그 장면을 포착합니다.
 
이동식이 숨기려 했던 사진에는
여성 한명이 긴부츠와 치마를 입고 얼굴은 흰천으로 가린채 낙엽위에 누워있는 사진 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동식에게 사진을 빼돌린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이동식은 사진의 주인공은 전문 모델을 고용해 찍은 사진인데 사진이 마음에 들지않아 사진과 필름을 폐기했는데
실수로 한장이 남았고 괜한 의심을 사기 싫어서 숨기려했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경찰에서도 이동식이 김 씨를 직접적으로 죽였다는 증거가 없기에 증거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중
평소 이동식의 사진을 현상해주던 무허가 현상소를 찾게됩니다.
현상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동식에 대해 한결같이 수상한 사진을 자주 맡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직원은 범죄현장검증 사진을 현상하러 오는 경찰로 생각했다고 진술합니다.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이동식을 잡긴 했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않아 난관에 부딪히던 찰나
숨진 김 씨의 동거남이 등장하는데 이동식이 숨기려 했던 사진의 주인공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입고 있는 옷과 구두 체형등을 봤을때 숨진 김 씨가 맞다는 증언을 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일 뿐이라 주장하던 이동식은 진술을 번복합니다.
숨진 김 씨와 자신은 내연관계이고 김 씨가 자신에게 집착이 심했는데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버리고 자신과 함께 다른곳으로 가 함께 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동식은 부인과 3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만약 자신의 제안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부인과 가족에게 알려 가정파탄을 내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당해
가정을 지키기위해 어쩔수 없이 사진촬영을 가장해 김 씨를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동식의 주장을 언론에서 김 씨와 이동식이 연인관계였다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내기에 바빴습니다.
내연녀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인 죽음을 찍는 사진작가라는 기사제목과 내용은
언론과 사람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소재였을겁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숨진 김 씨라고 지목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한 김 씨의 동거남이
이동식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또 이동식의 거짓말도 탄로가 나게 됩니다.
 
치정에 얽힌 살인으로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거짓말이었던 거죠
 
그렇게 거짓말이 들통난 이동식은 진술을 완전히 엎어버리고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숨진 김 씨는 업소에서 처음 만난것이 맞고 김 씨가 숨지던 날 사진촬영을 한것은 사실이지만 
촬영이 다 끝난 후 김 씨를 돌려 보냈다. 그 뒤로 김 씨와 연락이 되지않아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모델이 필요했고 김 씨는 돈이 필요했을 뿐 내가 김 씨를 죽일이유가 없다
김 씨가 죽었다면 사진촬영이 다 끝나고 그뒤에 일어난 일이기에 자신은 억울하다며 말을 바꿉니다.
어려가지 정황과 이동식의 집에서 나온 사진을 증거로 이동식을 압박하던 경찰이
이동식의 작업실에서 숨진 김 씨가 찍힌 필름을 발견합니다.
 
필름에는 숨진 김 씨가 나체로 누워 있는 사진과 옷을 입고 있는 21장이었는데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사진전문가가 수사팀에 합류해 사진분석을 하는데
이동식은 김 씨와 헤어진 후 김 씨가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이 찾아낸 필림에서는 주변의 갈대와 낙엽 등의 모습을 볼 때
숨진 김 씨가 이동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때 이동식이 숨진 김 씨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촬영했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몸에 난 명지털이 사후 서서히 눞는 다는것을 이용해 김 씨가 찍힌 사진을 한장 한장
사진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몸에난 명지털 모양을 확인 합니다.
확인결과 숨진 김 씨의 몸에 난 명지털이 사진마다 일정하지 않은것으로 확인되고
이것으로 이동식이 김 씨가 숨져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는 걸 입증합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산가리가 발견이 됩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의 말에 따르면 이동식은 전과 3범으로 그동안의 경험(?)으로
수사관들을 다루는 법에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말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담당하는 형사들 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합니다.
자신의 범죄행위 일체가 드러나자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경찰의 조사결과 이동식이 평소 다니던 업소에서 김 씨를 만났는데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했고
김 씨에게 누드 모델을 하면 꽤 많은 돈을 모델료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김 씨가 숨지던 그 날 야외촬영이라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미리 감기약을 먹어야 된다며
미리 준비해간 캡슐에 청산가리를 넣은 감기약을 김 씨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김 씨가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숨진 김씨의 옷을 벗겨 다시 사진을 찍고는 낙엽으로 덮어 유기했던 것이죠
 
그렇게 그의 모든 죄상이 밝혀지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이동식을 검거하고 사건이 연일 대서특필될 때 
수사팀으로 낯선 사람이 찾아와 이동식이 범인이라며 자신의 누나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수사팀을 찾아온 그 사람은 바로 이동식의 전 처 방 씨의 남동생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으로는 당시 8년 전 낯선 이가 찾아와 누나는 지금 일본에 거너가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말며
누나가 기모노를 입고 있는 사진주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누나를 본적이 없다며 진실을 밝혀줄 것을 부탁했지만
수사팀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사팀도 이동식의 여죄를 캐내려 노력했지만 
전처를 죽였다고 말한곳 어느곳에서도 전처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가지고 노는 이동식에게 경찰도 지쳐갈 무렵 해외에서도 크게 이슈가 된 이사건을 
국가의 이미지에 크게 신경을 쓰던 군사정권에서 곱게 볼리 없었습니다.
빨리 사건을 덮으라는 압력때문에 수사팀은 이동식의 여죄를 캐내지는 못합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주장을 빌리자면 이동식의 집에서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일기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21명의 희생자가 더 존재 할 수도 있다고 말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4년 뒤인 1985년 5월 27일 그의 사형이 집행됩니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청산가리는 당시 보일러 기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약품이었는데
이동식의 본업은 보일러 기사였습니다.
그가 사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한 사진공모전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닭을 찍은 사진을 출품했는데
그 사진이 입상하게 되면서 부터 입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늘 신선하고 충격적 사진을 찍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동식은 성과 죽음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는데 
후처 또한 모델로 삼아 온갖 기괴한 사진을 찍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연출했다는 것 때문에 사건은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는데
카더라에 의하면 이동식이 사망후 그가 찍은 사진중 일부는 해외에서 아주 비싼 값에 거래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사건...
군사정권의 압력으로 조기종결되지않고 계속 수사를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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