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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도 받아주나요...?
게시물ID : readers_96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맛사
추천 : 6
조회수 : 45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0/27 02:32:06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쓴 김에 이쪽에도 올려봅니다 ㅎㅎ...
여담인데 등장인물을 서양인으로 하면 왠지 문체도 영어 번역풍이 되어버린다는ㅠㅠ...
제목은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  *  *

크게 한 번 침을 삼키고, 눈을 감은 채 긴 숨을 내뱉는다. 찰은 '인류 최초'라는 거창하기 그지없는 타이틀을 조금 기울어진 왼편 어깨에 이고는 연구원을 다시끔 응시했다.

"정말 안전한 겁니까?"

"이론 상으론 완벽합니다."

실험자에게 가장 해선 안 될 말 순위권에 들 말이군.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찰은 다시끔 그 허옇게 떠있는 방을 창 너머로 불안하게 넘겨보았다.

"아, 저, 그게,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안전상의 문제를 모두 포함하여, 과학적, 윤리적으로 모두 문제 없다는 뜻입니다. 과학에서 '완벽'이란 말이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종사하는 제가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론 상으로, '완벽'합니다. 또……"

내용과는 반대로 조급하게 내뱉는 듯한 어조에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져 가고 있는 참이였지만, 찰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이제와 돌아가 보았자 좋을 것도 없겠지. 그래, 죽거나 혹은 벌거나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아 물론,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였지요. 그러나 말입니다, 목적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그 길을 가는 도중에 얻을 수 있는 것들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세의 연금술처럼 말입니다. 세계 대전의 참상은 끔찍했지만, 그래도 그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루었는지 아십니까?"

주절주절대는 연구원의 입에서 '그러니까, 잘못된 과오는 어쩔 수 없으니 거기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에 좀 더 주목하자는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이 나오기 직전에 대답함으로써, 찰은 겨우내 다음으로 진행될 수순을 알 수 있었다.

"아, 됐습니다. 알았으니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아, 아……네. 그러니까, 당신을 구성하는 분자를 흩뜨려트린 다음, 그 분자가 가진 정보들을 순간적으로 모두 스캔해서……아니, 일단 방으로 들어가셔서 차례로 나오는 안내를 따르시면 됩니다."

일일히 그 과정을 설명하려던 연구원은 중간 쯤에서야 찰의 질문의 요지가 그것이 아니였음을 알아차리고 옳은 답으로 고쳤지만, 애석하게도 그 말은 찰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분자를……뭐라구요?"

물어도 자신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임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구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그러니까, 결합상태를 확인한 뒤 분자를 흩뜨리고, 그 정보를 모두 스캔한 뒤 임의의 위치에 존재하는 분자들을 스캔한 정보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겁니다."

일부러 못 알아 듣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친절한 설명. 그러나 단어 단어들을 떼어 곰곰히 생각해 보면 모두 쉬운 단어들인 편이였기에, 찰은 적어도 그가 자신을 속이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물론 구성하는 분자들이 거기에 없다면 실험이 실패하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론상으론 완벽합니다.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입자, 그러니까 원자, 원소, 분자, 전자……사실 원자 안에 다 포함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모든 입자들은 도착 예정 지점에 이미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그것을 제로나인, 그러니까 0.0000000001 나노미터 급의 오차로 재배열할 기술 또한 갖추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안전상의 이유로 전신마취 또한 고려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마취를 하면 스캐닝에 필요한 자세 교정을 위한 고정대가 필요하고, 또 고정대가 있으면 그 고정대까지 스캐닝 및 재배치의 대상 안에 들어가서 실험 비용이 수십배나 뛰기 때문에……"

찰은 무어라고 따지려다 곧 실험 비용이라는 단어에 말을 삼켰다. 돈, 돈. 돈 때문에 여기에 왔건만 돈이 내 안전을 잡는군. 하긴, 그 안전을 팔아서 얻을 돈이니 별 수 없다.

"알겠습니다."

"아,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나중에 안내에도 나오겠지만, 당신은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이 멸균 작업 후 탈의 과정을 거치고 그저 방에서 T자 자세를 취하시면 됩니다. 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그림처럼 말입니다. 이왕이면 그림처럼 옷도 벗어주시면 좋지만 싫으시다면 실험복 또한 준비되어 있으니 문제 없습니다. 실험복의 전이 또한 완벽하게 성공한 이력이 있구요. 테세우스─아니, 저희 기계는 완벽합니다."

그러고 보니 방 위에 조그맣게 써져 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 이름이 테세우스 입니까?" 별, 이젠 기계에도 이름을 붙이나.

"과학자들은 사실 애같은 구석이 있거든요. 이렇게 멀쩡히 잘 만들어진게 고마우니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멋진 그리스 영웅의 이름을 본따서요."

멋쩍은 듯 웃어보이는 과학자를 보자 괜시래 기분이 풀려간다.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사람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비춰보였기 때문일까.

"실험복, 어디 있습니까?"

풀린 마음이 얼굴까지 올라오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팔을 꼭 어깨 높이까지 쭉 벌려 글자 그대로 'T'모양을 만든 찰의 모습을 비추는 유리창 너머로 두 명의 연구원이 서 있었다.

"이거 완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네요."

그 중 훤칠한 키에 눈이 큰 연구원이 말했다.

"예수는 무슨."

"왜요, 과학을 위해 희생하는 아름다운 모습 아닙니까."

"염병, 예수가 희생을 돈 받고 하디? 저건 그냥 돈으로 산 모르모트야."

"돈을 받긴 했죠. 예수가 아니라 유다였지만."

눈썹을 움찔하다 콧잔등을 쓸며 내려간 안경을 고쳐 쓰며, 반댓편의 연구원이 대답한다.

"그래, 그래서 저 놈은 예수처럼 희생당하고 유다처럼 죽을 운명에 처했지."

"네?"

"봐, 스티브. 저 기계 이름이 왜 '테세우스'인줄 알아?"

스티브는 파일첩을 책상에 내려두며 어깨를 으쓱한다.

"알 게 뭐에요, 만든 인간들이 자신이 그리스 신화에 깊은 조예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였나보죠. 원래 과학자란 족속은 끔찍한 놈들 아닙니까? 어떤 인간은 자기가 발견한 단백질에 소닉 헤지호그라는 이름도 붙이던데요. 뭐, 그래도 헤라클레스가 아닌 게 어딥니까? 아니면 오리온, 아니면 아킬레스."

"그래, 흥미로운 생각이야. 충분히 가능성 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더 그럴듯하게 끔찍한 생각이 있거든."

"오, 역시 선배님은 훌륭한 과학자의 귀감이세요. 저도 과학자로써 더욱 정진하기 위해, 선배가 생각하신 그 끔찍함을 조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명백백히 비꼬는 투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런 태도에 익숙한지, 안경을 낀 연구원은 '테세우스'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을 곁눈질로 훑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티브, '테세우스의 배'라는 말을 아나?"

"오, 크리스 선배님! 만약 제가 그런 걸 알았다면 제가 당신의 선배였겠죠. 분명 음침하고 거짓부렁 가득한─끔찍한 신화 속 말장난일테니."

스티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투로 눈 앞의 복잡한 기기를 향해 팔을 뻗었다. "나 참, 왜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까."라며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고.

"테세우스라는 영웅이 있었지. 미노타우르스라는 황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괴물을 무찌른 인간."

"……그거 꼭 얘기 해야 합니까?"

"들어 보라고. 너도 끔찍히 좋아할 걸. 내가 보기엔 네 놈도 이미 과학자거든."

"아, 예, 예. 계속 하세요. 그렇다고 맞장구는 기대하시지 마시구요."

"그래서 테세우스라는 영웅은 그 괴물을 죽이고는 배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온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 배를 영웅의 배라고 추켜 세우며 보존하고. 풍파에 판자가 썩으면 뜯어내서 새로운 판자를 박아 넣는거지."

비록 '설명을 부연한다'라는 역할을 썩 잘 해내진 못했으나, 크리스는 나름대로의 손짓을 섞어가며 설명해 나간다.

"자, 그럼 이 하나의 판자가 교체된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라는 이야기지. 그게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한다면, 판자 두 개를 교체하면? 세 개는? 넷, 다섯, 여섯……전부 바꿨다면? 태세우스의 배라고 불리웠던 그 배의 판자가 모두 바뀐 뒤에도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뭔……."

눈썹을 역동적으로 구부러뜨리며 어이없다는 듯 내뱉는 반응.

"뭔 얘깁니까 지금?……이건 개인적은 견해입니다만, 그 얘기보다 뜬금없이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선배가 더 끔찍한 거 같은데요."

"이게 이유야."

"예?"

"이게 저 텔레포트 기계의 이름이 '테세우스'인 이유라고."

크리스가 버튼을 누르자, T자 자세를 하고 있던 찰의 몸이 서서히, 정말로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찰은 마치 뿌연 아지랑이처럼, 신기루처럼, 안개처럼 서서히 흩어져가는 것이었다. 분해, 전송, 재조립. 실험은 성공적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얼이 나간 듯 천천히 스티브의 입이 벌어졌다.



"허어, 이럴수가……제 예상보다 훨씬 재미없네요."

"재미 없나?"

"네. 차라리 집에서 심슨 가족을 보는 게 더 재밌겠는데요. 거, 저 인간과 순간이동 하기 전의 인간이 물질적으로 다르다면 또 어떻답니까? 피차 저 인간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건 우리인데요. 제 아이팟에 기스가 갔다고 아이팟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그래, 근데 아이팟의 생각은 다르겠지."

"알 게 뭡니까, 친구한테 '내 아이팟이야!'라고 했을 때 '그렇군!'라는 답이 돌아오면 되는 거죠."

크리스는 다시끔 안경을 고쳐 썼다.

"역시 넌 최고의 과학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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