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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할 것인가, 욕설을 할 것인가 ?
게시물ID : phil_96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의소리
추천 : 0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9/08 22:25:59
주관적으로 사소한 일에서부터 객관적으로 중요한 일까지 
우리는 다양한 사건,사고의 원흉이 됬던 사람들을 용서 했거나, 용서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단 용서에 대한 나의 기본적 생각은 이렇다.
'용서는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죄)를 저질렀으면 그대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되고, 당사자 또는 제3자들이 용서를 해주어도 절대 그것을 받아서는 안된다.
저질러진 죄의 피를 담을 구원은 없다.
이 의견은 용서를 받는 사람의 입장이고 이 글의 논점이 되고자 하는것은 용서를 해주는 사람의 입장이다.

용서를 해주어야 하는가?

내 핸드폰을 훔친자 혹은 내 전재산을 훔친자, 내 반려견을 죽인자 혹은 내 반려자를 죽인자, 내 팔에 멍을 입힌자 혹은 내 팔을 잘라 버린자, 밖에서 치고 들어오는 자 혹은 안에서 썩히고 있는 자, 무관심한 자 혹은 위선적인 자, 무조건 비판하는 자 혹은 무조건 낙관하는 자, 무지한자 혹은 아는척하는자, 들. 등등.

1. 용서해도 될 것은 무엇이고,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용서 대상의 행위)
2. 용서해줘도 될 사람은 누구이고, 절대 용서해주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용서 대상)
3. 누군 용서해도 되고, 누군 용서해선 안되는가? (용서하는 주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인권을 가장 중요시 하는 현대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10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수사의 원칙 또는 사형폐지논란 등이 현대인들의 인권이 얼마나 존엄을 가지는지 보여준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특권만으로 우리는 엄청난 권리와 복지를 누릴수 있게 됬다. 
'네 원수까지 사랑하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처님의 자비 등. 과거에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았든 수많았던 위인들은 평등과 사랑을 외쳤으며 존경스럽게도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그들이 옳았을까? 사후세계의 관점과 개인의 내적 평안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용서가 옳았을 수 있었겠지만 현실을 본다면 잘 모르겠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건 자연법칙처럼 당연시 되지만 용서와 회개는 상당히 별개의 문제로만 보인다.
 용서받아야할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벌이라는게 외적인것이 아니라 내적인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책 해야한다는거다. 타인이 주는 벌이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외적인 것, 타인이 주는 벌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내리는 벌이여야만이 참된 의미가 있고 진실된 개선의 방향을 가진다. 
 그렇다면 잘못을한 사람이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그 사람이 백날 사죄를 하거나, 모든사람이 합당할 만한 용서의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진정 바뀌었다고는 그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당사자도 자신이 진짜 바뀌었는지 모를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우리의 생각 또한 시시각각 변한다. 어제는 사랑을 부르짖다가 내일은 이별을 외치기도 한다. 현재의 내가 어느때의 어느사건으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또는 지금의 내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가 맞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르기에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알려는 성찰을 반복하거나 포기한다. 이렇다고 보면 우리는 과연 누굴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와같은 생각으로 나는 용서를 해주는 것은 용서를 받는 것과는 상반되게 무조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의 대상이 현재 바뀌었는지 안바뀌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인간은 계속 변화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용서의 대상이 남은 여생을 살아가면서 과연 용서를 받았을 때와 받지 않았을 때의 영향 끼침이 어느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를 봐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형법의 형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규정한 범법의 현실을 알려주고 직시하게 해주어야할 제3자의 불과 같은 역할과 부처의 자비로움처럼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주는 물과 같은 역할이 섞여야 따뜻한 세상과 사람을 만들어가리라 생각한다.

욕설을 할 것인가, 용서를 할 것인가?
무엇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해지는 밤바바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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