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듬해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선 전혀 다른 활약을 보였습니다.
-4회 대회 땐 경험이 있으니까 상대 투수들에게 잘 말려들지 않았어. 돌아보면 신용균이 참 잘 던졌어. 예선 일본전 때도 신용균이 완투해서 우리가 5대 2로 이겼거든. 해방되고서 일본에 처음으로 이긴 경기였어. 그것도 서울에서 말이지. 일본과의 최종전 때는 내가 좀 했지(웃음).
-좀 하신 정도가 아니라 승리의 수훈선수였습니다.
-내가 4번을 쳤는데, 1회 초 1사 3루일 때 주자를 희생플라이로 불러들였다고. 8회 초에는 박현식 선배가 볼넷으로 나갔을 때 내가 투런 홈런을 쳤고 말이지. 나 혼자 3타점 내고, 신용균이가 무실점으로 완투해서 우리가 일본에 3대 0으로 이겼어. 4년 전만 해도 우리가 일본에 1대 20으로 졌었거든.
-쾌거도 그런 쾌거가 없었겠습니다.
-암, 쾌거였지. 그때 정말 서울 시내가 난리도 아니었어. 나도 타율왕에 올랐고(주 : 23타수 9안타 타율 3할9푼1리).
청와대에도 불려가셨겠습니다.
-그땐 청와대가 없었지. 장충단에 최고회의 의장공관이 있었어. 거기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만났지. 그때만 해도 박 의장은 대통령 후보였어. 나하고 ‘딱’ 악수를 하면서 “이거 선거법 위반 아니지?”하면서 웃으시는 거야. 그때 내가 육군 소속이었는데 “부대로 황소 한 마리 보내주겠다”고 하시더라고.
-황소요? 부대로 황소가 왔습니까.
-보내주긴 뭘 보내줘. 거기서 끝이지(웃음).
그 애비에 그 딸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