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많은 민주시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몇 되지 않는 정치인이다. 스스로 이제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하고, 그래서 그를 작가로 부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인식 속 그는 정치인이다. 아마도 <썰전>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썰전>에서 유시민은 언제나 시청자 아니 모든 시민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는 존재였다. 오죽하면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산 채로 잡아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겠는가. 이 말은 그를 총리나 장관으로 등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장 조금 해서 유시민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지 모른다. 게다가 <차이나는 클라스> <알쓸신잡> 등 티비 출연이 더 잦아지면서 그에 대한 인기는 끝을 모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 완벽했던 유시민에게서 흠 아니 실수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강경화 외교장관에 대한 경솔한 평가를 들 수 있다.
유시민은 아직 인사청문회를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장관에 대해서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국가 대사의 앞가림은 어떻게 하겠나”는 폄하발언을 해서 구설에 올랐다. 유시민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 말에는 뭔가 자연인 강경화를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노룩취재’가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언론이 균형을 잃은 비판이 넘쳐나던 때에 스스로 ‘진보어용’을 선언했던 유시민의 언행은 기대 밖이었다. 그래도 유시민이었기에 비난의 수위는 높지 않았다.
그리고 <썰전>에서 유시민은 다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전에 없는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번에도 역시나 12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되고, 13일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찾은 등의 급변하는 상황 전의 발언이다. 그래서 상황은 강경화 후보를 ‘경솔하게’ 그의 말에 따르면 ‘교만하게’ 비판하던 때와 무척 유사하다.
유시민은 추 대표에 대해서 “초선의원이 자기 생각대로 말했다면 몰라도 집권당 당대표의 임무는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당대표의 직분에 어긋나는 발언”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추 대표의 발언의 배경 혹은 전략적 의미를 차기 대선이나 내년의 서울시장 선거를 거론하는 대목에서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을 거론하는 타이밍과 행간에 악의가 읽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가 차기나 당장 내년의 서울시장에 출마할 뜻을 갖는 것 자체가 하등 문제될 것은 없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권력을 지향하고 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형준과 유시민이 이어간 추미애 서울시장 도전설은 추미애 대표의 미래에 도움을 줄 의도보다는 오히려 훼방을 놓는 것에 더 가깝다. 그것은 유시민의 추미애 비판이 단지 특정 사안에 국한된 것이 아닌 추미애 자체를 향한 공격이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추대표의 강경발언을 실컷 비난하고 그 이유를 서울시장 도전을 위한 포석이었다고 규정함으로써 추대표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저격한 것만 봐도 유시민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물론 그것조차도 역시 유시민의 분석과 전망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문재인 지지자들이 추대표를 비난한다는 것은 팩트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커뮤니티와 SNS 반응을 보면 적어도 문재인 지지층에서는 추대표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추미애 대표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합당, 복당 등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다는 믿음에 기인한다. 문재인 지지층은 어쩌면 자유한국당보다 국민의당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그 묘한 감정의 원근법에 의해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조중동보다 한경오를 더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예를 들 수 있다.
또한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찾아서 추경 참여를 끌어낸 것도 알고 보면 추미애 대표의 희생적 정치행위라 해석해야 한다. 야당은 줄곧 문 대통령을 인사정국에 끌어들이려 무던 애를 썼다. 아직도 자유한국당에서는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떠올리자.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현재의 야당이다. 거기에서 과반수가 되지 않는 여당 대표에게 야당을 끌어안을 정치력이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추미애 대표가 선택한 것은 국민의당 때리기였다. 실제로 대선조작은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 정치적 계산에 따른 야합이나 하라고 촛불시민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광장에서 그 고생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럼으로써 대통령을 끌어들이려는 야당들의 시선을 여당 아니 여당 대표로 바꾸게 했고, 청와대는 폼 나게 그런 야당을 다독이는 흐뭇한 풍경을 만들었다. 이래도 여당 대표답지 않은 것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