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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나의 방식을 온몸으로 쟁여둔다
게시물ID : lovestory_968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4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6/02/01 09:34:4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feature=shared

 

 

 

 

1.jpg

 

 

안이숲, 푸른 옹기




옆구리 모두 유통기한 하나씩 흉터처럼 찍혀 있는데

나는 나의 유통기한을 기억해 본 적 없다


할머니는 몇 대째 이어 내려오는 내 몸속 물이

씨간장이라고 명명해 주신 적이 있지만

씨가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 나이부터 서리 맞는 일을 배웠다


가끔 몸을 씻겨 주는 소나기를 피부에 새겨 넣기도 하고

바람이 전해주는 먼 곳의 이야기를 담아

씨의 근원을 만들었다

씨란 할머니의 그 윗대 할머니의 고함소리

한 번씩 뚜껑을 열 때마다 세상 모두를 달이고도 남을 만큼 짰다


꽃잎 하나 떨어지지 않는 날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일도 허기가 져서

무두질해 부드러워진 옹기 한 벌 걸쳐 입고 먼 섬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고

옹기를 반으로 뚝딱 잘라

양산을 만들어 쓰고 도시로 쇼핑을 나서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마트에서 파는 나의 짝퉁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으로 들은 이후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쌓인 짱짱한 나의 둘레

진짜는 진짜답게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법

나는 나의 방식을 온몸으로 쟁여둔다


훌쩍 성숙한 씨 간장 한 그릇, 따스한 봄이 퍼갈 때를 기다려

나는 나를 완성한다

 

 

 

 

 

 

2.jpg

 

 

이서영, 자기 앞의 돌




사람들이 돌 앞에서 노랠 부른다


이미 큰 소리를 얻은 사람들이 뭔가를 본 것처럼

정말 큰 돌이어야 해요 큰 돌이 응답할 것입니다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자기 앞에 있는 돌 중 가장 큰 돌에게 가 노래하세요


사람들이 큰 돌에게 몰려간다 더 큰 돌 차지하려 몸싸움한다

돌은 많지만 큰 돌 더 큰 돌 아주 조금이라도

큰 돌을 찾아서


돌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뿐

이리저리 사람들이 헤매다닌다


돌을 옮겨 다니며

그 앞에서 노랠 부르고 귀를 갖다 댄다


노래는 웅장하고 아름답고 더 이상의 소리가 있을까 싶지만

멈추지 않는다

다른 돌을 찾아서


어떤 사람들은 전에 만난 돌 앞에서

다시 노랠 부른다 전에 만난 줄도 모르고


돌은 아무 말이 없다

 

 

 

 

 

 

3.jpg

 

 

이해존, 자존감




그렇다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투렛증후군이 튀어나와

더 이상 노래를 이어가지 못하는 가수를 위해

떼창이 노래를 이어준다

마이크를 쥔 채 멍하니 바라본다

감동적일 수만은 없는


불수의적 움직임

이런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순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중요한 순간에만

유독 도드라진다


아주 작은 구멍의 기미가 찾아오고

터진 둑처럼 무너져 내린다

수면이 평평해지기까지 휩쓸려간 후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듯

진흙 범벅인 마음이 오히려 평온하다


당신과 마주할 때

고여 있는 어둠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내 몸을 내가 부리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아무도 모르게 주워 담는다

 

 

 

 

 

 

4.jpg

 

 

김수목, 카슈가르에서 한나절




한 사람이라고 해두자

짧은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짧은 사랑의 기억이라고 해두자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마을

소륵국 카슈가르에 도착하여 너를 만났지

백년 찻집에서 홍차를 마셨고

알툰올다 식당에서 양갈비를 먹었지

그저 먹기만 했지

너를 만나기 전에 먹은 양고기보다

그때 더 많이 먹었을 거야

향비묘도 가지 않았고

구시가지도 걷지 못했어

사진 한 장 남기지도 못했네

유적지는 사라지고 바자르도 사라지고

오직 너 하나 한사람만 남았지

예약된 티켓을 한 손에 쥐고

너는 쿠차로

나는 우르무치로

카슈가르에서 한 나절이 그렇게 다 지나간 거야

짧은 사랑은 여기서 끝났지

기억도 여기서 끝나야겠네

 

 

 

 

 

 

5.jpg

 

 

박이도, 초가지붕 위의 박꽃




담장 키를 웃자란 해바라기

저 혼자 적막강산 빈 뜨락을 지킨다

식구들은 다 어디 갔나

뜨락엔 고요한 평화의 숨소리


초가지붕 위의 박꽃

외로이 이슬에 젖어

내 님의 눈썹 같은 그리움

초승달만 꿈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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