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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게시물ID : readers_186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0
조회수 : 3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2/27 02:17:02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64N3n

조용히 눈을 감는다. 깊숙히 코로 숨을 들이쉰다. 
산 속 특유의 청아한 냄새가 느껴진다.
깊게 마신 숨을 내뱉는다.

눈을 뜨자 그가 내게 물었다.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애써 꽉 붙들고 있는 손을 놓으라고 힘조차 주지 않자,
자연스레 체중은 낭떠러지쪽으로 쏠려버린다. 
애처롭게 휘날리는 그의 육신은 오직 나에게만 의존하는 상황.

소나기다.
하나 둘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간다.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겠어?"
나는 대답한다.
이상하게 놓고 싶지 않았다. 더 꽉 붙잡았다. 그러자 빗방울이 우리의 손을 강타한다.

"그렇죠? 우리 내기하나 해요."
그는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다른 팔을 하늘을 향해 뻗으며 금방이라도 날라갈듯 펄럭여보인다.

"내기?"
힘에붙이자 남은 손까지 동원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라온 빨간우산 하나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래요. 재밌는 내기야."
바람에 몸을 맡긴 그처럼, 우산도 바람에 몸을 맡기며 서서히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낸다.
기어코 펼쳐진 날개를 보이며 하늘을 향해 날라간다.
순간적으로 우산을 잡아든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 몫까지 행복하게 사는 거야."
우산을 든 손이 바람에 젖혀진다.
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래도 어림없다.

"그래, 하자."
환하게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보이는 그는 스쳐가는 빗방울들 덕분에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나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온전히 날아갈 준비를 마친 듯, 그는 내게 놓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게. 그럼 내가 이기는 거잖아?"
살짝 미끄러지는 손, 이제는 놓아야 할 때인가 싶어 미끄러지게 살짝 힘을 풀었다.
알아챘는지 손과 내 얼굴을 번걸아 쳐다 본다.

"만약... 진다면?"
서서히 미끄러진다. 얼마 뒤면,  그는 바람과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가겠지.
얼마나 날 수 있을까? 20초? 30초? 아니 어쩌면 더 오래 날 지도 모르겠군.

"그럼 당신이 내 몫까지 평생 행복하게 사는 거지."
손아귀로 겨우 붙들고 있지만 이것도 잠시다.
얼마 뒤면 아주 잠시 날다가 어디론가 고꾸라질 것이 분명하다.
곧 나는 내기에서 이기면,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내 난 그를 놓아주었고, 그는 빨간 우산과 함께 하늘을 훨훨 날아가버렸다.
곧이어 폭풍이 내려치고, 두터운 안개 속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내기에서 이겼다.
그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나를 뒤이어 줄지어있는 무리들처럼, 나는 이곳에 죽으러 왔다. 

다음차례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다가와 짜증스럽게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내기에서 이긴 것 아니요?"

줄지은 사람들도 오랜 기다림에 짜증을 호소했다. 나는 오히려 그 남자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도 내기를 합시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자,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들 몫까지 행복하게 사는 거요."

곧 폭풍이 멈추고 다시 안정을 찾은 세상의 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흑색 구름들 사이에서 빛나는 태양의 옆모습이 우리를 비춘다.
그에게서 손이 떨어지자, 사람들의 탄식소리도 점점 멀어진다.

그들 중 분명히 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리라 믿었다.
이 내기는 당연히 내가 진다.
먼저 내기를 제안한 남자와 나의 몫까지 합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난 조용히 바람에 몸을 맡기고 두 눈을 감았다.
어디까지 날 수 있을까?
그 남자는 어디까지 날았을까?

그리고 눈을 떴을 떄, 멀리 보이는 내기에서 이긴 남자는 다음 사람에게 제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난 아래를 쳐다보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난 산 속 어딘가에 고꾸라진 채로 죽어가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전혀 외롭지 않았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갈 때였다.
무언가가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궁금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물음이었다.
곤두박질 친 저 남자도 다른 사람과 내기를 했을까?

// 브금듣다가 써놓은 글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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