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면, 많은 인간 군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저를 무척 힘들게 한건 독선과 아집입니다.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며, 다양한 학습과정을 거치고 경험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 가치관에 대한 변수는 선천적인 부분에서,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사건들을 겪고 나름대로의 해석과 주변의 조언을 참고하며 차곡차곡 쌓아가게
됩니다.
그러한데..
보통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집이 생겨나더군요. 이야기에서 열려있는 대화가 나아가질 못하거나 벽에 막힌듯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아집을 갖고있는 이들은, 비교적 높은 40대~50대 이상에서 드러나는데, 연령대와 성별, 경제수준, 지식수준, 환경등의 것들의 구분 없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과, 초등학생이거나,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자신만의 틀린 지식적 기반의 아집을 가진 경우도 있고, 한 가족전체가 우물안의 개구리같은 지식을
갖고 아집을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과 부딪혔을 때의 저 자신에게서 나오는 독선입니다.
수승화강이 잘 되지 못하여, 주관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서 아집을 부리는 것은 꼭 이겨야만하고, 납득시켜야만 하고, 틀린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하는
그런 못된 마음입니다.
아집중에서도 상위 5% 이내의 우수한 등급의 사람을 대하게 되면, 나 스스로도 상위 5%에 드는 독선적인 언행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아주 치명적입니다. 오히려 어릴땐 이런 부분이 고민스럽지 않았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잘못인건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젠 독선을 부리는 제 자신의 모습도 보여지네요.
계몽과 선동의 차이에 대한 글이 먼저 있었습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고, 바른 말이지만, 독선의 늪에 빠진채로 입술을 열어 말을 내 뱉는 저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가 계몽을 하는 것인지, 선동적 동기를 가진 것인지 햇갈리기도 하네요.
어찌보면, 계몽, 교육, 선동 모두 어떤 것을 목적을 갖고 전달하는 것인데, 같은 대상을 밑에서 보느냐, 옆에서 보느냐, 위에서 보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니, 저 자신의 독선적 모습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조금씩 냄새가 나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최대한 열어놓고,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 하여도 수승화강을 생각하며 몇번이고 되새겨 내 뱉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