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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시절에 가위눌린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34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파찌개
추천 : 11
조회수 : 145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3/01 02:55:16
나는 엄청나게 건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약해서 비틀거리는 사람도 아니다. 평범한 건강을 지녔기 때문일까? 나는 가위에 눌려본 평범한 경험이 딱 한 번 뿐이다.  

어디에선가 겁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귀신 이야기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약점 쪽에 호기심이 더 많다는 말인데, 이 말을 믿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내 최대 약점은 못생김인데, 나는 어떻게하면 조금 더 못생길 수 있을지 궁금하지도 않고, 못생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일본에서 나는 기숙사에 살았었다. 기숙사 건물은 정말 엄청 낡은 건물이었는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어떤 일본인이 임종을 맞았을 확률이 정말 엄청 높아 보였다. 

같이 유학와서 기숙사에 사는 형들과 농담으로 '방 벽을 손으로 살살살 문지르면 건물이 간지러워서 꿈틀거리다가 무너질 수 있으니 함부로 벽에 손을 대지 마라' 라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었으니 가히 그 낡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본에 가기 전에 내심 귀신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겁은 겁나 많은 주제에 귀신이 그렇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귀신을 보게되면 어떨까?' '너무 놀라면 근육들이 이완된다는데 귀신을 봤을 때 지리지 않을 수 있으려나?' '귀신이 왜 옷을 입고 있지? 옷도 영혼이 있나?' '일본 귀신이 내가 외국인인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등등의 부풀어 오른 호기심을 안고 건너왔지만 반 년이 지나도록 귀신은 커녕 귀요미 일본여자 한 명 마주치기도 너무 힘들었다.  

당시 나는 지각을 숨쉬듯 해서, 학사경고 비슷한 것을 받은 상태였다. 한 번만 더 지각을 하면 한 학기가 날아갈 판이 되었지만, 이미 한 마리의 야행성 짐승이 되어버린 나는 매일 06시에나 억지로 잠에들었다가 12시에 간신히 일어나곤 했다.  

어쨌건 귀신은 커녕 귀신 옷자락도 구경못하는 시간이 6개월 가량 지속되었다. 가위에라도 눌려볼 심산으로 미이라 포즈로 잠을 청하기도 여러번 이었다. 하지만 일본 귀신들은 죄다 '샤이 고스트'던지 아니면 외국인을 심하게 꺼리던지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나는 '섬나라라 음기가 많긴 개뿔' 이라며 귀신을 보는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귀신을 잊어갈 때 쯤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새벽동이 터올 무렵 아침체조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그러다가 잠을 깼는데 새끼발가락은 커녕 눈꺼풀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나에게 허락된 시야라고는 머리 위에 걸려있는 수건의 끝자락이 전부였다. 

예상치 못한 일에 내 심장은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야, 왜 몸이 안 움직여? 평소 올바르지 못한 자세 때문에 척추가 중추 신경계 다발을 짓누르다 결국 신경계가 뭉텅 잘려나갔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갑자기 내 방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컥 열렸다. 

나는 눈동자만 간신히 돌려서 문께를 바라보았다. 내 심장은 250bpm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같이 학교를 다니는 형이 서 있었다.  나는 뭔가 말을 하고싶었지만 모든 신경계가 자율신경계라도 된 것인지, 근육들이 도통 뇌의 명령을 받아들일 생각을 안 했다. 그 때 형이 말했다. 

 "야, 지금이 몇신데 아직도 자? 12시 45분이야. 나 먼저 간다?"  

그리곤 문을 쾅 닫고 사라지는게 아닌가? 수업은 13시였다. 유학이 한 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만 더 지각하면 학기가 날아가기에, 내 마음은 다급해졌다. 난 온 힘을 상체를 일으키는것에 집중했고, 어느 순간 몸이 갑자기 움직였다. 나는 마치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상체를 제로백 8.7초 정도의 속도로 일으켰고,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아픈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형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외칠 생각으로 방문을 거의 부수다시피 열었다. 하지만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형이 문을 닫고 사라진지 2초도 안 지났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욱 더 의아한 상황이었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팬티바람으로 형의 방 문을 두들겼다.  약간의 소음 뒤에 문이 열렸고, 형의 모습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도 잠에서 막 깨서 팬티바람으로 문을 연 것이었다.  

두 한국인 유학생이 팬티바람으로 눈을 비비며 마주보는 꼴사나운 장면이 4초쯤 이어졌다.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학교.... 학교 가신다고.... 학교 가셨잖아요. 방금."
"무슨 소리야..... 니가 문 두들기는 바람에 일어났는데....."  

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 또한 영문을 모르겠어서 눈쌀을 찌푸렸다. 형의 방에 걸린 시계는 그제야 막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왜 이리 일찍 깨우고 그래......" 

형이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분명히 형이 서 있었고, 11시45분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괴기현상도 쏟아지는 피로와 잠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잠 때문에 판단력이 퇴화한 상태였기 때문일까, 나는 괴현상 때문에 두렵기는 커녕 '와, 아직 2시간을 더 잘수 있네' 라는 생각에 오히려 살짝 기뻤다.  난 그렇게 침대에 누웠다. 

2시간 정도 흐른것 같았는데, 다시 괴기현상이 날 덮쳤다. 내 몸은 메두사와 아이컨텍이라도 한 것 마냥 굳어있었고 또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도 형이었다.

"학교 안 가냐? 수업까지 10분 남았어. 먼저 간다."  

나는 이번에도 얼추 비슷하게 반응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비몽사몽간에 문을 열었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형 방 문을 두들겼다. 

 "왜 또......"

형은 또 다시 팬티바람으로 문을 열었다. 

"형 학교.... 아니, 방금 학교 갔잖아요."
"뭔 소리야..... 왜 이래 너. 미쳤니?"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시계바늘은 날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 10시 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이제서야 어렴풋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천하장사도 닫히는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못한다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괴기현상이 발생했다. 

 눈이 딱 떠지고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어김없이 문이 벌컥 열렸고, 예상대로 형이 서 있었다. 

 "빤쓰바람으로 사람을 두 번이나 깨우더니 정작 지는 아직도 자고있네. 너 이제 지각 하면 안 된다며. 나 먼저 간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게, 이번엔 레알이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몸뚱이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형이 자전거를 끌고 기숙사 철문을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몸뚱아리가 왜 주인 말을 안 들어 쳐먹고 반기를 들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 다시 어느 순간 갑작스레 몸이 움직였고, 나는 또 다시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복도에서 팬티바람으로 세면도구를 들고 방을 나서던 형과 마주쳤다. 내가 입을 열었다.  

"형..... 학ㄱ....." 
"지금 일어났어, 지금 일어났다고, 이 새끼야."  

형은 짜증을 내며 목에 걸어뒀던 수건을 채찍마냥 휘둘렀다. 나는 그 때까지도 잠이 덜 깨서 내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속절없이 수건채찍을 맞았다. 10시 12분의 일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형은 내가 7분 동안 두 번이나 방문을 두들기는 바람에 잠이 다 달아난 상태였다고 한다.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아서 뒤척이다 '그냥 일어나야겠다' 고 마음을 먹고 세면실로 가던 도중에 또 다시 나와 맞닥뜨렸던 것이다. 

 나도 잠이 다 달아나서 세면실로 향했고 나는 내 괴기현상을 형에게 서술했다. 우리는 학교에 갈 때까지 이게 가위에 눌린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토론을 했고 결론은 '가위가 맞긴 한데 영 이상하다' 로 내려졌다.  

유학기간뿐만 아니라 평생을 통틀어 겪은 가위는 저게 전부였다. 그렇게 군대 문제로 1년 만에 귀국하게 되었고, 제대 후 다시 건너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상병이 되자 후쿠시마가 폭발했다. 나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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