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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틀이 없다
게시물ID : phil_9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의소리
추천 : 2
조회수 : 84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9/14 20:30:13
 일방적 교육과 그 방법으로 편협하게 추종하고 있거나, 스스로의 성찰이 아닌 책이나 수업에서 가져다 외우는 식의 철학만을 따르는 추종함의 끝에 과연 참된 철학의 목적이 있을까? 불교의 종파인 교종과 선종의 차이를 보면. 교종은 권위와 교리를 중요시하며 선종에 비해 소극적인 학문의 탐구를 지향하지만 선종은 권위를 부정하고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는 적극적인 학문의 탐구를 지향한다. 한마디로 교종은 정답은 다 책에 있으니 책만 보라하는 것이고 선종은 책은 이제 그만보고 스스로 생각 좀 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둘의 중요도 차이는 원인과 결과처럼 어느 한쪽에 우열을 두기에는 잘못이 있다. 그저 집에 들어가려면 출입문을 지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진정한 철학함의 끝에 닿기 위해서는 문(스스로의 생각, 깨달음)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고 대단한 생각들을 많이 배우는 것도 즐겁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을 해보거나 다른 별개의 생각을 해보는 것만이 자기철학을 정립하게 해준다. 스스로 하는 생각만이 나를 만든다. 배움의 기쁨이 단순한 일차원적인 정보교환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정보의 분석, 비교, 수정을 통한 창조 또는 발견의 기쁨으로 나아가야지 철학이 아닐까 싶다. 
 이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대륙법계는 현재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형식으로 모든 법은 무조건 글로써 명문화된 형식을 갖춰서 씌여있어야 하며, 국가가 국민의 보호에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하며 국민의 권리를 앗아간다. 그에 반해 미국이 쓰는 영미법계는 법에 있어서 판례를 중시하고 절대성보다는 융통성을 가지며, 국가는 국민에게 권리를 주며 책임을 지게 한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정당행위, 긴급피난 등의 자력구제의 인정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좀 과장해서 보면 이러한 법계의 성격의 차이가 국민 전체의 성격과 가치관을 좌지우지하게 된다고 볼수도 있다. 대륙법계는 빠르게 변하는 현대에서 융통성을 가지기가 힘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아예 변화를 거부하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고, 또한 국가의 보호하에 개인의 권리를 가져감으로 인해서 개인의 행동과 때에 따라선 생각까지 소극적으로 만든다. 필자의 사고가 워낙 삐딱하기만 해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법계의 안좋은 점만 보이지만 각 법계가 극단에 다다랐을때의 문제의 회복성과 변화가능성을 본다면 지금의 현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이상의 비교처럼 나는 교종과 대륙법계보다 선종과 영미법계를 선호한다. 내 워낙 자기중심적이고 글을 잘 못써 전달력이 부족해 글의 이해를 전적으로 읽는이의 이해력에 비중을 두게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철학은 틀림없이 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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