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아직은 말이요...
게시물ID : readers_187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0
조회수 : 3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03 02:41:52

난 딸기우유가 싫소.
그렇다고 바나나우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단지 순수하지 못한 변질된 의미를 싫어하는 것일 뿐일지도.

결국 진열대에 오른 상품들을 무시한 채 생수 하나를 골랐지 뭐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하여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먼 미래의
내가 살아있는 한 이루어질리 없는 일인 줄만 알았소.

하지만 보시오. 나는 더 깨끗하고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해
600원이라는 돈을 내고 생수를 사먹는 아이러니를.
단돈 600원이 아까워서 생색내는 것은 아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버려진 편지 하나를 줍게 되었소.
그것은 한 노인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일종의 충고의 메시지였소.

긴 내용들 중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았소.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해가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요.

불헌듯 이발소 창문가에 비친 부시시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무엇이 유쾌한지 나는 소탈한 웃음을 지어보였지 뭐요.

사실은 아직도 열두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고래고래 소리질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보려는 개구쟁이인가 싶소.

하지만 사실은 곧 서른을 앞둔 번번한 일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늙어가는
사람들 중 하나의 불과한 것 같기도.

이상하게 코가 시린 것이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더니 안경에 서리가 끼더랍니다.
아직 내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건조한 나무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차디 찬 바람과도 같은데 어찌 따사로운 태양이 나를 비추는가도 싶소.
단지 내 눈을 부시게 만들어 그를 원망하는 것일지도.

봄이 시작되어 슬프다는 말은 채 봄을 맞을 준비도 안되어있는 나의 모습과도 닮았소.
그 말은 걷는 내내 나를 유혹하게 만들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봄은 아직 너무나 이르지 않은가 싶은데...

나는 남은 생수를 들이키고는 괜히 바닥에 내동댕이를 쳐봤소.
괜환 화풀이라 여겼는지 화들짝 놀란 누렁이가 나를 야속하게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요.

난 아무래도 겨울이 좋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밖에.
누렇게 떼 낀 스카프에 거위 털 가득한 두터운 점퍼를 입고,
혹시나 바람이 머리칼을 채갈까 꼭 죄여오는 모자를 뒤집어 씨운 채 말이요.
그것이 유리창을 비춰 본 나의 모습이었소.

언제나 태양은 뜨고, 지기를 반복하지만 오늘 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오.
나는 괜스레 몸을 감싸 안고는 가만히 추위를 느끼며 생각했소.

봄이여, 아직 오지 말아라. 아직은 아니란다.
겨울아, 아직 가지 말아라. 아직은 아니란다.

야속하게 떠나가는 세월의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원통할 뿐이요.
나는 딸기우유가 싫소.
그렇다고 바나나우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아니 어쩌면 우유가 싫은 것일지도 모르오.

아직은 말이요...

p.s.
난 딸기우유가 좋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