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방금은 아니고 몇 시간 전이지만...ㅎㅎㅎ
일이 있어 저희 집에 며칠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외갓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제가 핸드폰으로 보던 글에서 '가래나무 열매'라는 말이 나와서 할머니에게 여쭤보았습니다. 가래 열매를
직접 본 적이 있으시냐구요.
할머니는 물론 있다며, 가래 열매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 때 일입니다. 두 분이 함께 산을 가는데, 산길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더랍니다.
대추만한 크기에 초록색 열매가요.
할머니는 처음 보는 열매라, 할아버지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가래지." 하시더랍니다.
먹는 거란 걸 알고 맛을 보니, 산길에 피곤한 참이라 그랬는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래요.
할머니는 집에서 기다리는 손자 손녀 생각이 나서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꺼내 가래를 주워 담으셨답니다.
애들 맛보여주려고 허리를 수그리고 하나라도 놓칠까 조심조심 담으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줍다 보니 할아버지는 저 앞으로 멀리 가 계시더래요.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쫓아가려고 서둘
러 비닐봉지를 쥐고 열심히 뛰어가셨습니다.
그렇게 가는데 옆에 참나무 둥치가 보이더래요. 뛰기 힘들어 그 둥치를 짚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손이 공중에서 휘청하더랍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몸이 붕 뜨고, 할머니는 그대로 크게 넘어지셨습니다. 넘어지면서 보니 방금 전까지 분
명히 있던 참나무 둥치가 온데간데없더래요.
설상가상으로 넘어지면서 다른 나무에 몸을 부딪혔는데 거기 벌집이 있더랍니다. 순식간에 할머니는 벌
떼에 휩싸이고, 온 몸을 벌에 쏘였습니다.
온몸이 퉁퉁 부어 신발이 안 들어갈 정도가 됐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맨발로 산을 내려
가셨습니다.
하도 많이 쏘여 정신이 몽롱한 중에도 그 가래열매 담은 봉지가 계속 생각이 나시더래요. 넘어지면서 놓
쳐서 다 쏟아져버리던 게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리더래요. 애들 주려고 담은 건데 그걸 뺏어가나 싶어 하늘
이 야속하기도 하고, 내가 산짐승들 먹을 것을 다 뺏어가서 천벌을 받나 싶기도 하셨답니다.
할머니는 그 후로 5일 밤낮을 끙끙 앓으셨답니다. 가게를 하셨으니 앓아눕지도 못하고 벌에 쏘여 퉁퉁 부
은 채로 계속 일을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는 그전까지 손발이 시리고, 자주 붓고, 조금이라도 차가운 데 닿으면 저리셨었대요. 한의원에서도
약을 네 재, 다섯 재는 지어야 낫는 병이라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계셨답니다.
그런데 벌독이 가신 이후로는 손발 저림이 싹 가셨답니다. 의원에서도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요.
할머니는 손을 죔죔 주먹쥐어 보이시면서, 이것 보라고 아직까지 멀쩡하지 않냐고 자랑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가 벌을 잡아다 봉침을 놓겠다고 몇 번이고 벌을 잡아오셨는데
그 후로는 한번도 할머니처럼 병이 싹 낫는 일은 없으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잡아온 벌이라 그런 거라고, 산에서 사는 야생 벌이라 효과가 있었던 거라고 그러십니다.
하지만 저는 손녀라 그런지, 산신령이 할머니에게 감동해서 참나무 둥치로 변해 약이 되는 벌침을 맞게
해주신 거라고 믿고 싶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