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게시물ID : phil_9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살결
추천 : 4
조회수 : 79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9/15 14:46:21
tumblr_navk5ftueO1tu6roho4_1280.jpg


인간이 마침내 미신적 종교적인 개념과 불안에서 벗어나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를 믿지 않고 또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을 때 그는 틀림없이 상당한 높은 단계의 교양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들중 몇몇은 형이상학에서 자기를 해방시키고 이와 같은 미신과 거짓의 역사를 거슬러 인류가 걸어온 거대한 발자취를 인식하게 될 때. 그러한 인식의 끝에서 한순간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갑작스러운 절경 앞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완전히 망가진 환자의 신체를 보고 차마 메스를 들지 못하는 의사와도 같이, 메스를 들려는 용기를 두려움이 압도하여 완전히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 앞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여 교회나 사원을 찾아가 자신의 구원을 요구하고 영혼의 영생을 통해 자신의 공적에 대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영혼을 영원히 구원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길만이라 생각한다. 이런 미신적 종교가 어처구니 없게도 거의 진실에 가까운 진리로 확실시 되는 것은 영속하는 거짓된 진리의 총합이 모든 회의의 폭풍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거짓된 진리의 영속성에 기초하여 영원한 업적을 쌓아 올릴 결심을 한다.


그렇다면 이 불안하고, 허약하며, 유치한, 이성의 오류에서 생기는 표상들로부터 벗어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모든 신학과 그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세계는 더 이상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여서, (이러한 선악의 개념은 오직 인간과 관련지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본질은 우리가 수많은 거짓된 종교와 예술로서 상상의 꽃을 피워 만들어낸 이미지와는 크게 다를 것이 분명하다. 염세주의적, 모욕적 세계관이나 찬미적 세계관을 탈피해 누군가 세계의 본질을 폭로한다면 그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불쾌한 환멸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사물 자체로서의 세계가 아닌 표상으로서의, 오류로서의 거짓된 세계야말로 그만큼 의미가 풍부하고 깊이가 있으며 경이에 차고, 행복과 불행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없는 삶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에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맥거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며 이렇다할 불평도 없이 삶을 견뎌내고, 단지 그렇게 함으로서, 단지 살아감으로서, 단지 존재함으로서 현재 자신의 삶이 가치를 지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로인해 사람들은 일생을 자신을 초월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 속에 갇혀 지내면서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기껏해야 희미한 그림자로 인정할 뿐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란 그 자신을 세계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타인에 대해 진지하게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가치에 절망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인류의 총체적인 의식을 자기자신 속에 파악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저주하며 쓰러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에게는 전체적으로 아무런 목표도 없으며 따라서 그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 거기서 위로나 의지가 아니라 절망을 발견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인간의 최종적인 무목표성을 보게 될 때 마침내 우리의 눈에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도 낭비되고 있음을 알게된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개개의 사물들이 우주만유법칙에 의해 스스로 낭비되어가고 있듯이, 바로 우리 또한 인류로서 낭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삶이란 파도 한번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모래성과도 같은 것인가? 그저 비진리 속에 머무르며 자신의 삶을 거짓된 위안으로 치장한 채 살아가는 체념만이 답인 것인가? 존재의 무의미함에 혐오를 느끼고, 미래나 미래의 행복에, 다가오는 정열에 조소나 모멸을 퍼부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결국 절망뿐이지 않을까? 아니, 나는 나의 인생을 이런 침울한 고민 속에 낭비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다 결국엔 남은 인생마저 낭비하는 어리석은 행동 뒤에 참회의 눈물을 흘릴 우울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단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어지러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낡은 동기가 오랫동안 계승되어 온 자질구레한 습관들로부터도 벗어나, 결국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있지만 마치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칭찬도, 비난도, 흥분도 없이 지금까지는 공포만 느껴야 했던 많은 것들을 마치 '연극'이라도 보는 듯이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과장을 탈피하여 더 이상은, 인간이 자연이 아니라든가 자연 이상의 존재라든가 하는 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은 채 언제나 확고부동하고 온화하며 진정 쾌활한 영혼으로, 교활한 함정과 갑작스런 폭발에 대한 걱정없이.. 오직 보다 잘 인식하기 위해서만 계속 살아갈 정도로 삶의 일상적인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 다른 사람에게 가치있는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인간.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떠도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인간. 그런 인간이 되는 것이 오직 내가 꿈꾸는 단 하나의 바람이다.



blackholedisk_cfa_960_(1).jpg


「모든 물질과 에너지와 모든 생명이 빅뱅이라는 얘기치 않은 우연에서 비롯되었어요.
 우주는 팽창을 하다가 언젠가 거대한 블랙홀로 수렴하게 되요.
 중력이 아주 강력해서 하나의 점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게되죠.
 그러다 마침내 중심조차 사라지면 시간, 공간, 삶, 사후세계도 없어요. 텅빈 제로죠.
 완벽한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고.
 그러니 생각해보면 괴로울 것도 없는 거죠.」

<제로법칙의 비밀> 중에서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