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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시물ID : history_9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11/5
조회수 : 668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06/02 12:13:33

개인적인 측면에서 평양과 개마고원이 중국에 위치해있었고 더 나아가 근세 조선까지는 우리의 역사가 중국 대륙에서 이루어졌다는 현조님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가령 현조님은 후한서 동이전에 나오는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 동쪽에 있고 (1) 동쪽으로 바다에 닿는다. 북쪽으로 읍루, 부여, 남쪽으로 예맥(濊貊)과 접한다.


(1)개마(蓋馬)는 현(縣) 이름이고 현도군에 속한다. 그 산은 지금의 평양성(平壤城) 서쪽에 있다. 평양은 즉 왕험성(王險城)이다.'


을 사례로 드십니다만 동이열전을 더 살펴본다면 점점 이 기록을 주요한 근거로 살을 붙여나가는 위치 비정의 무리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동예를 살펴본다면 '예(濊)는 북쪽으로 고구려, 옥저, 남쪽으로 진한(辰韓)과 접한다. 동쪽으로 큰 바다에 막히고 서쪽으로 낙랑에 이른다. 예와 옥저, 구려는 모두 본래 조선의 땅이다.' 라고 합니다.


그 밑의 한을 살펴본다면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의 3 종(種)이 있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낙랑, 남쪽으로 왜(倭)와 접한다. 진한(辰韓)은 동쪽에 있는데 12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예맥(濊貊)과 접한다. 


변진(弁辰)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또한 12개 국이 있고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 모두 합해 74개 국인데 백제(伯濟)가 그 중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 호(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인데 각각 산과 바다 사이에 존재한다. 


그 땅은 모두 합해서 사방 4천여 리이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 있다. 모두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가장 크고 그 중에서 진왕을 함께 세워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삼한의 땅을 모두 다스린다. 여러 나라들의 왕은 원래 마한 혈통이다.'


중국에서 서해가 있던가요? 반도 지형 아니라면 나올수 없는 이야기이지요,


전한서를 살펴본다면 '조선왕 '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가 전성할 때로부터 일찌기 '진번','조선'을[사고는 전국시대에 연나라가 빼앗아 얻은 땅이다.] 침략해서 자기 나라에 붙여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었다. [사고는 '장'은 스스로 가로막다이다. 음이 량으로 바뀌었다.] 그 뒤에 진나라가 연을 멸하자 요동 경계 밖을 소속시켰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니 다시 요동의 옛날 요새를 수축하여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아[사고는 패수는 낙랑현에 있다. 음이 보개로 바뀌었다.] 연에 속하게 했다. 


연왕 '노관'이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은 망명해 달아났다. 그는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 밖 으로 나가 패수를 지나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 


여기에서 그는 차츰 진번조선 오랑캐와 옛날 연나라, 제나라에서 망명한 자를 모아서 왕노릇하고[사고는 '연','제'나라 사람이 망명하여 거하는 땅이다. 이에 진번조선의 오랑캐는 모두 '만'에 속했다.] 왕검에[이기는 왕검은 땅의 이름이다.] 도읍을 정했다.'


전한서의 기록상 왕검성은 요동의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역시나 중국 비정은 말이 안된다고 사료에서 입증하고 있지요,


구당서를 본다면 '고려는 부여로부터 나온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있으나 곧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으로서 경사의 동쪽 5천 1백 리에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쪽은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쪽은 말갈에 이른다. 동서가 3천 1백 리요 남북이 2천 리이다.'


라고 되어있으니 중국 대륙이 반도가 아니라면 있을수 없는 기록이지요,


또한 삼국시대 위의 사료인 위략을 살펴본다면 위가 고조선의 서방을 침공하여 사방 수천리의 땅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각종 사서에 기록된 위의 위치를 감안해본다면 역시나 중국에 평양성과 개마고원이 있을 확률은 거의 없어집니다.


고려사와 원사, 동사강목 등 역시 근세 조선까지 중국에서 우리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가령 여몽 연합군은 합포에서 출발하여 거제도를 경우해 대마도로 향합니다, 해류와 바람의 흐름상 거제도가 가장 빠른 해도인즉 중국에 합포를 비릇한 이러한 섬이 있던가요?


또한 2차 원정 당시는 강남군 10만을 대동하여 각각 합포와 원나라측 (제가 이 부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군요)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원나라는 어디에 있던가요?


또한 송나라는 어디에 있었으며 10만이나 되는 그나마 줄이고 줄인 병력을 상시 유지 관리 할수 있는 사실 그 몇 배에 달하는 병력을 항상 유지 관리할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지역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또 앞서 벌어진 대몽 항쟁과 남송과의 전쟁은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요?


결과적으로 현조님이 행하시는 고고학적 접근을 배제한 판단법에 근거하더라도 근세 조선 이후에야 한반도에서 우리의 역사가 이어졌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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