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미스테리한 산행
게시물ID : panic_780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똥꼬아범
추천 : 22
조회수 : 2948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3/04 15:46:00
이 이야기는 제가 실제로 겪은 실화이며 100퍼센트 사실이지만

약 20년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므로 약간의 추임새가 끼어들었을 수 있습니다.

때는, 나라 안이 시끄러운 92년쯤 됐습니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저는 매일같이 들판에 누워 술로 쪄들어 갔었죠. 낮에는 숙취해소용으로 

강의 듣고 술 좀 깨고 오후가 되면 동아리실에 모여서 학습과 집회 얘기로 한나절을 보내다가

해가 떨어지면 삼삼오오 모여서 천원짜리 쐬주집에 가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흔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때 잡힌 가죽가방은 엄니가 입학기념으로 사주신 것인디...


여튼, 그 해 가을에 선배와 저는 단 둘이 지리산 종주를 위해서 산으로 떠났습니다.

무료해진 심신과 정내미 떨어지는 현실에서 잠시 도망가고 싶었겠죠.

선배는 꽤 산을 잘 타는 나름 전문가였습니다. 지리산도 한두번 가본 분은 아니죠.

코스튼 종과 횡입니다.

약 7박 8일 코스로, 뱀사골에서 시작하여 천왕봉을 찍고 백무동으로 내려와

다시 진주로 내려가 대원사계곡으로 올라가 천왕복을 찍고 노고단을 지나 구례 화엄사로 끝내는

코스였습니다.

젊을 때는 산타고왔소할만큼 산을 타는데 자신이 있었기에

종으로 횡단은 아무 문제없이 마치고 남원에서 여관 잡아 장기 한 판 두고 하룻밤 자고

다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바라본 지리산의 광경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까마득히 높은 산 밑을 가로지르는 한 점 속의 나... 이래서 지리산, 지리산 하는구나...

여튼, 이 신기한 경험은 대원사 계곡에서 야간산행할 때 발생합니다.

진주에서 다시 대원사로 출발한 우리는 오후 늦게 산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9월 말쯤으로 기억되는 가을 바람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죠.

특이하게도 대원사 코스는 초반에 완만한 산길이 계속 나옵니다. 타박 타박 걸어가는데,

해가 뉘였뉘였 떨어지더군요. 바람이 솔~ 솔~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어둑한

숲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산길 주변은 온통 작은 산대나무로 가득차 있습니다.

산행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산에는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여러 표식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산악회 회원들이 묶어놓은 리본들이 있는데요, 초행길일 경우 거의 리본에 의지해

산을 타게 됩니다. 그렇게 그렇게, 뉘였뉘였 떨어지는 해를 뒤로 하고 우리는 산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이미 해는 떨어져서 목표지점인 치밭목산장까지 감이 안잡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오르니 갑자기 오솔길이 넓어집니다. 발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나길래 보니

거미줄처럼 물줄기들이 흐르고 있네요.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선배를 불러 세웠죠.

정신을 좀 차리고 앞을 보니 우리 앞에 보이는 풍경은 거뭇 거뭇한 안개 속에 쌓인 엄청나게 큰 늪지대같은

풍경이더군요. 선배는

'뭔 산에 늪이 있냐~'

한마디 뱉드만 랜턴으로 주변을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설상가상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합니다. 정말 을씨년 스러운게 이런거구나 느끼게 비가 오더군요.

시간은 저녁 여섯 시가 좀 넘었을 겁니다. 우리는 그 거대한 늪지대를 질척질척 저벅저벅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앞쪽 바위에 이정표가 있더군요. '치밭목산장' 000m 라 페인트로

써 놓은 사람만한 바위였습니다. 우리는 안심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놈의 늪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겁니다. 비는 부슬부슬 계속 와서 거의 우리는 생쥐꼴이 되었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목적지는 나오지 않고~

그러다가 어디서 사람들 소리가 들립니다. 꽤 많은 사람들의 소리였는데요, 하하 웃는 소리도 나고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도 나고 해서, 형님과 저는 이제 살았구나. 하고 걸음을 재촉했더니

전방 한 2-3백미터 앞에 밝은 불빛이 보이더라구요.

산장이구나!

생각한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불빛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무렵,

우리는 까무라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유~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싹~)

불빛이 있던 그 자리에는 정말 커다란 바위만이 떡 앞에 놓여있더군요. 그리고 동시에 들리는 소리들도

쥐죽은듯이 싹 사라졌습니다.

'씨O ㅈ태따!'

선배는 낮게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뒤로 돌아서 미친놈들 처럼 랜턴을 밝히고 길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헤메다가, 우리는 다시 한번 뒤로 나자뻐질 뻔 했습니다.

아까 그 이정표 바위, 그 바위 앞에 다시 온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산 중턱에 있는 늪지대를 만나 길을 잃고 두 시간 동안 한바퀴를 뱅~ 돈 겁니다!

이게 뭐여, 어떻게 된 것이여~ 이미 눈물 콧물에 비범벅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들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시간이 한 저녁 8시쯤 됐습니다.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발목에 찰 만큼 물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선배와 나는 한국어로 Fuck Fuck 해대며 다시한번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현미경 관찰하듯이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드디어 치밭목 산장을 올라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동시에 폭우가 쏟아집니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우리들은 치밭목 산장에서 그 비오는데 미친놈들처럼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 들어가 덜덜 떨다가 깨닫습니다.

- 야. 여기는 산장이고, 지금 폭우가 쏟아지는데 여기서 우리 뭐하냐~

그리고는 몸만 빠져나와 산장으로 들어가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니, 기절했겠죠--;


다음날 산의 날씨는 청명한 가을 날씨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어제 있었던 그 그로테스트하며 불가사리한 일들은 서로의 마음속에 꾹 담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천왕봉에 올라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의 등산객들이 조용히 얘기하네요.


'야~ 너 그거 아냐? 

몇 년 전 이맘때 산악회 회원 몇 명이 대원사 계곡에서 감쪽같이 실종됐는데, 그림자도 못찾았데..'

'정말이냐?'

'건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 귀신에 홀리는 사람이 많은가봐~'




100프로 팩트입니다. 에고, 아직도 소름끼치네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