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 18년동안 한번도 흘려본적 없는 코피를 쏟아요.
이유없이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워요. 음식을 먹었다 하면 체하고.
엄마한텐 절대 말 못해요. 아프다고 하는 순간 난리날거에요. 공부하지 마라 당장 병원가봐라 며칠 쉬어라.
쉰다고 쉬는 걸까요 그게. 고삼한테 휴일이 어디있을까요. 몸은 쉬어도 머리는 못한 공부만 생각하고 있을 텐데.
생리때도 아닌데 쓸데없이 감정 기복은 왜이렇게 심한지 노래듣다 울고 책읽다 울고
남들 다 겪는 거라고, 나만 힘든게 아니라고, 언젠간 다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하려해도 전혀 도움이 안돼네요.
알아요. 분명히 이것도 과거의 일로 지나가고 말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저한테는 이게 현실인걸요.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아주 많겠지만, 남보다 덜 힘들다고 힘들지 않은건 아니잖아요.
평생 잘했다 기특하다 소리만 듣고 자라서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내가 내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게될까봐 너무 무서워요.
우리 엄마한테 부끄러운 딸이 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요.
다들 날 그렇게 평가하겠죠. 쟤 공부 잘하는줄 알았더니 고작 저런 대학교나 들어갔다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커요.
그 기대치가 강요나 억압으로 돌아온다면 차라리 반항이라도 한번 해볼텐데
다들 그냥 묵묵히 날 주시하고만 있어요. 그게 더 부담스러워요.
난 왜 첫번째일까요. 첫째라서 이쁨도 제일 많이 받고 누릴것도 다 누려놓고
이제와서 부담스럽다느니 싫다느니 하는것도 이기적인거겠죠. 그래서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어요.
그동안 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굉장히 높았는데
지금의 난 뭐 하나 특별한 것도 잘하는것도 없는 평범한 여자애 같아요.
엄마 혼자 세 남매를 키우고 있으니, 가정형편도 안좋아서 사교육도 못받고, 운좋게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해도 입학은 장담 못해요.
그 비싼 등록금을 누가 다 대겠어요. 재수는 절대 꿈도 못꾸죠. 대학 졸업 후에 바로 취직해야 해요.
제가 성인이 되면 국가 지원금이 끊기거든요. 동생들 대학 보내려면 악착같이 벌어야겠죠.
자존심도 강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해요.
친구들은 다 나랑 똑같은 수험생이고
제가 성적가지고 고민한다고 하면 다들 배부른 소리라고 해요.
담임선생님이랑은 전혀 공감대가 없고
아는 언니 오빠들은 다 좋은 대학교 다니고 있으니 오히려 기만 죽을것 같고
가족들한테 말하느니 차라리 혼자 힘들어 하는게 몇배는 더 나을것 같아서
익명의 힘을 빌려 여기에나 썼네요. 이 긴글을 누가 다 읽을거란 기대도 않지만
혹시나 한분이라도 다 읽으셨다면, 죄송해요. 저때문에 당신까지 우울해졌을것 같아요.
그냥 열아홉살짜리 세상 모르는 여자애 배부른 푸념 들었다고 넘기세요.
또 코피 나네요.
다시 공부하러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