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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토박이가 광주에 처음 가봤을 때의 이야기 (스압)
게시물ID : sisa_5802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wanhearts
추천 : 18/2
조회수 : 1262회
댓글수 : 66개
등록시간 : 2015/03/07 12:54:29
98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수능을 치고 난 겨울이었으니까.
 
PC통신으로 알게 된 친구를 만나러 제 생애 처음으로 지리산을 넘어 광주를 가봤었습니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러 광주의 중심 번화가인 금남로로 갔었는데 처음 받었던 인상이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와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좀 빈약하구나 싶은 느낌. 밥을 먹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금남로, 충장로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게 뭔가 좀 ... 있어야 할게 없다?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었습니다.
 
맥도날드가 없더군요.
 
그게 뭐가 그렇게 놀라운거냐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의 눈에는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친구에게서도 계속 광주 오면 많이 낙후되어 있다고 느낄 것이다 라면서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그 사실을 자각하니까 확 느낌이 오더군요. 왜냐하면 그 당시 대구 동성로에는 맥도날드 점포가 2-3개 정도 되던 시절이었거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 중 반미감정이 높아서 광주에는 맥도날드가 없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근데 가던 도중에 기차 어느 역에 서서 한참을 안 가고 기다리는 겁니다. 철로가 단선이라서 마주오는 기차를 보내느라고 기다리는 거였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복선으로 철로가 깔려있는 영남권에서는 뒤에서 따라오는 새마을호를 먼저 보낸다고 잠깐 기다리면 기다렸지 마주오는 기차 때문에 서서 기다린다 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밤 기차를 탔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암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에 전라권을 두루두루 여행을 해봤었는데, 광주나 여수, 그리고 군산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공단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더군요. 구미, 포항, 울산, 대구 등에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규모 국가 산업단지가 즐비한데 말입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어째서 선거만 하면 몰표가 나오는지. 
 
 
그리고 친구가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한 책을 한 권 줬습니다. 어느 미국인 침례교 목사가 민주화 항쟁의 발단부터 흘러가는 과정에 대한 모든 것을 소상히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광주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며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98년 그 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해. 대구에 사는 어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이고 빨개이가 대통령 됐데이'
'인자 대구하고 다 망하는거 아이가?'
'저 전라도 놈들 쳐우는거 봐라 저거'
 
 
저는 참.. 제 고향의 어른들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참말로 탐욕스럽데이.. 그마이 받아뭇으면 다같이 잘 살구로 전라도 쪽에도 양보 좀 하고 그라이소. 구미도 그렇고 포항도 그렇고 저마이 발전했으면 인자 전라도 사람들도 좀 잘 먹고 잘 살아야 할꺼 아임니까 예?! 아저씨들이 입만 띠면 김대주이 저 빨개이 섀끼가 나라 다 말아묵는데이 칼 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지는 압니까?!!
 
..라고 했다가 동네 어른들에게 따귀도 맞아보고, 집에 와서도 부모님에게 호된 야단을 맞고 그랬더랬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무개 집 큰아들이 빨개이 물 들었다 카더라 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요.
 
 
두서없이 길기만 한 글을 써제꼈습니다만, 15년 전 스무살때부터 지금까지 제 생각은, 그리고 괴이하기 짝이 없는 사상을 지닌 전라도 혐오증 종자들에게 항상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같이 좀 잘 먹고 잘 살자, '
 
참새 코딱지 절반만한 나라가 남북으로 갈린 것만 해도 문제인데, 정치하는 사람들의 간계에 빠져서 이제는 동서로 갈리기까지.
 
더 이상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너도나도 다 같이 잘 먹고 잘 수 있는 방법을,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민하고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누군가에게는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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