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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불면에 관하여 - 1
게시물ID : panic_974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이켜지다
추천 : 8
조회수 : 54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2/26 05: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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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아니, 왜? 어떤 점이 힘들었어? 내가 다 들어줄게. 누가 야단치는 사람이 있었나? 나는 아직 김선생 다른 데로 못보내. 지금 다른 데로 가봤자 고생만 할거야. 아직 실력이 부족해. 여기서 좀 더 실력 쌓아야지."

"저도 제가 부족하다는거 압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일해도 실력이 쌓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후 3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일합니다. 추가 수당도 없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수업하지도 못합니다. 방학은 더 힘들어요.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 퇴근입니다. 그래요, 힘든 것은 좋습니다. 뭐 아직 젊다면 젊으니까 고생한 만큼 보이지 않는 실력이 쌓아지고 있을거라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요, 힘든 건 둘째치고 이래저래 눈치보면서 일하는게 힘들어요."

"김선생, 누가 선생을 눈치보게 만든단 말인가... 왜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원장님, 솔직히 저도 사회생활 좀 해봤다면 해본 사람입니다. 원장님 좀 너무하시네요. 원장님은 앞에서는 허허 하면서 너털웃음 지으시고 뒤에서는 부원장님, 실장님, 교무부장님들로 군기 잡으시잖아요? 고등부는 교재연구도 해야하니 힘들다고 말씀드렸는데 시수가 35타임에서 상의도 없이 40타임으로 늘었더군요. 시수를 원장님 결재 없이 통과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다 알면서 그냥 저임금에 쓰시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이렇게 답하시겠죠. '아니, 난 김선생이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역량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었는데 힘들었다면 내가 판단을 잘못했네.'하면서 저의 역량부족으로 넘기시겠죠. 애초에 일이 상의도 없이 진행된다는게 힘들다는걸 말하는겁니다."

"김선생,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었구만. 오해일세. 그리고 나 또한 바로 그걸 말하고 싶은거네. 우리 학원이 여기서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시간표를 변경해서 적응하는 능력이야. 우리 학원 시간표가 평균 두 달에 한 번씩 바뀌는거 선생님들한테 큰 부담이 된다는거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유동적인 시간표로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네"

"저는 그 시간표 변동이 왜 당사자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그러면 또 시간표에는 선생님들의 이익이 반영되는 부분이니 어쩌니 하면서 기분 나빠 하시겠지요. 악역을 맡으시는 다른 간부 선생님들께서요. 저는 다른 세상도 있을거라 믿습니다. 여기서 떠나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일해주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내가 설명해줌세."

"다른 이유가 뭡니까"

"... 자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예?"

"우리가 지금 어디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네"

"당연히 원장실이지요."

"잘 둘러보게"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문에 손잡이가 보이는가"

"손잡이는 여기에... 아니, 문이 어디에..."

"여기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구만..."

"무슨 말입니까?"

"설명하자면 좀 길어... 벌써 천장이 지워지기 시작하고 있구만..."

"이게 도대체..."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네... 안 그러면 김선생 또 잠에서 깨어나고 말걸세"

"잠에서 깨다니요? 무슨 말입니까?"

"일단 여기로 따라오게 작은 뒷문이 있구만"

"원장실에 뒷문이... 아니... 정말로 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단 따라오게... 사실 나는 원장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네일세. 자네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네. 술, 약 등 여러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자네의 불면증을 낫게 할 수가 없었어. 결국 문제는 자네가 받아들이지 않는 무의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네. 오늘은 정말 힘들게 겨우 잠들었는데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자네의 힘든 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원장으로..."

"무슨... 그렇다면... 믿기지 않지만... 당신은 또 다른 '나'라는 뜻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약간 드라마틱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쨌든 빨리 따라오게. 그대로 있다간 다시 잠에서 깨어버릴걸세"

"...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겁니까?"

"자네의 근본적인 문제를 만나러 간다네"

"무엇인지 추측되는 것이 있습니까?"

"아직은... 없네. 자네도 모른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언가라는 단서는 추측할 수 있지만...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눈을 떴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무덤덤한 듯 일어났지만, 표정은 그대로지만, 뭔가... 억울하고 서러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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