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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게시물ID : phil_10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1
조회수 : 7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14 07:40:45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혹은 내가 굴복당하거나.

분노와 증오, 원망섞인 시기는 활력을 돋게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즐거움을 얻으며, 이후에 지금과 같은 행복을 얻으리란 환상이 남아있다.

무언가에 대적한다는 것, 반항한다는 것은,
마음에 쌓인 괴리감이 터져버렸기에, 용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는, 마지노선을 지나친지 오래인.

쉽게 두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복수의 대상을 남에게, 그리고 자신에게하는 사람.
부정의 주체가 누구이냐를 놓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 복수가 끝난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삶을 끝낸다면, 진정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을까?

여기에 오류가 하나 있다면, 전제 조건이 이후에도 내가 느끼기엔 '산다'는 전제를 두고 있어서,
고통을 끝내지 못하겠다는 비겁한 상상력을 발휘하곤 하기에 그렇다고 본다.
그렇다면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인가?

그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란,
최소한의 틀 안에서 다른 잣대를 빌려와 일부 해소하는 것이다.
법으로 응징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

삶은 고통스럽다는 것엔 변함이 없지만, 
이러한 것들을 그냥 '희망'이라는 독약을 마시며 넘겨버리기에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후회는 언제든 뒤돌아보면 돌아갈 수 있는 문과 같다.
하지만 그 문을 들어가면 결국 고차원의 방처럼, 
위치만 다를 뿐이지 놓여진 선택지는 같다.

전쟁을 끝내는 또 다른 방법은 어찌보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선택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적당히 나를 죽이면서, 적당히 남을 죽이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
이것은 어차피 '도망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경계를 쳤을 뿐이다.
다른 틀을 빌려와서 보호막을 치는 정도랄까.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출구는 사랑.. 희망... 그런 것으로부터 얻는 '긍정' 밖에 없다.
모든 것을 긍정해버리는 거대한 에너지, 웃음을 짓게 만드는 원인.

결국엔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은 두 가지 뿐이다.
고통받으며 살아가던가, 고통을 일찍이 끝내던가.

남의 죽음을 보는 것은 몹시나 끔찍한 일이지만,
내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가 해주었던 말이 이토록 깊은 뿌리를 내렸다.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
하지만 고통스러우면서 그것을 외면하고 '희망'을 들이키기엔 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이를 불문하고, 어느 사람이나 겪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지만서도,
나도 가끔은 이조차도 부정하며 거짓된 미소를 지으며 위안을 삼으려곤 한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란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웃어도 행복해지진 않더라^^ 

결국 기억될 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반항했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했었다.'

삶이란 전쟁과도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끝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시작되었는지가 나는 가장 의문인데...
세상은 그것에 관심이 없는 모냥이다. 
너무 어떻게만 바라는 세상이 좀 얄밉기도 하고...

아... 또 두서없이 글을 썻나봄...
정리도 재대로 안된 생각들을 정리하다보니 에이씨....
할 말은 많은데 피곤해서 생각은 안나고.
잠은 들기 싫은데 잠은 오고.
아침이 밝는 것은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아침을 맞아야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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