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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래요, 일단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군인들이나 다른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니죠, 아니죠. 당연히 그런 곳에는 사람 하나 더 들어가는 게 좋겠죠.
그런 말들을 그냥 따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구요? 당연히 당신 가족들은 좋은 노동원이자 좋은 식량원이니까요.
거짓말이라구요? 무슨 웃기는 소리를. 저 바쁜 사람입니다.
자, 이것저것 잘 따져보세요. 저 소리 들리시죠?
(먼 발치, 희미하게 경보 방송이 되풀이된다.)
늘상 들리는 소리라구요? 아니죠, 흑색 경보라는 게 안 들리나요?
저 첫 날, 이 세상이 무너진 그 날 말고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초위험한 순간이라구요.
벌써 이틀이 지났는데도 이 빌어먹을......오케이, 내가 말실수를. 이 어두컴컴한 날씨는 풀리지 않았다구요.
붕붕, 날갯짓도 계속 들리고. 지금 당신이 있는 이 지하실이 안전할지는 몰라도, 언제까지 버틸까요? 음식은 충분한가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마 음식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나를 보여주려는 듯.)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 건 저기 저 돌아다니는 강도분들한테 보여주면 딱 알맞을 것 같네요.
물론 이 날씨에 밖에 돌아다니는 인간 강도가 얼마나 있냐, 그건 잘 모르지만요.
그래요, 그래요. 완고하시니 제가 좋은 소식 하나를 들려주지 않을 수가 없군요. 나쁜 소식이려나?
저 세 블록 떨어진, 원래는 아름다운 푸른 지붕이 인상적인 2층집을 아시나요? 예, 그 부부랑 꽤 괜찮은 사이였다구요.
그럼요, 그럼요. 좋은 사람들이었죠. ‘그것’들이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숨소리를 느끼고 땅을 헤집기 전까지는요. 거짓말이라구요? 나 참, 한 번 확인해보세요.
(사진, 땅이 갈아엎어진 푸른 지붕의 집.)
아무튼 저를 보세요. 이 날씨, 이 날갯짓 소리, 부스럭 거리는 행복한 바깥을 유유히 걸어다니고도 살아 있는 모습.
오, 이제야 눈치채셨나요? 저는 어지간하면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저처럼 무사히 빠져나오셔서,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은닉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선생님. 특별 가격에 모시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야 없죠.
값을 못 치러서 못 가는 고객들이 수두룩한데 선생님은 충분히 값을 치룰 수 있지 않습니까?
오케이......당장 출발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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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나? 희귀한 경험이지.
배가 아프거나 고플 때 꼬르륵 거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지만 조금 달라. 그건 내 육체가 내는 소리가 아니니까. 빌어먹게도.
아이들은 아직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나는 부모가 떠난 지하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
보통 이런 상황이면 울거나 난리를 칠텐데 말야. 저렇게 순진하게 나를 바라보고 놀아달라거나,
엄마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으면 아무리 나라도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세일즈맨이었어. 이 달의 굿맨,
그러니까 실적이 가장 우수한 직원에 무려 열 세 번이나 오른 뛰어난 인재였다고.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짓은 그저 물건을 파는 것 뿐이야.
안전하디 안전한 은신처와 무사히 갈 수 있는 통행권 비스무리한 것. 그리고 그 값을 받아낸 것 뿐이라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그 곳은 안전한 곳이니까. 하지만 다 말해준 것도 아니야......
있잖아, 보통 사람들은 이 괴물새끼들을 본 적이 없어. 만약 마주친다면 십중팔구 뒤지거나 뭐 그러니까.
그리고 아주 살짝 살짝 목격한 바로는 커다란 벌레새끼들 같다더라.
무슨, 옛날 웹툰에 나오는 것처럼 거대한 벌레들처럼 생겼대.
그런데 그 외견 때문일까? 편견을 가지고 있다더군. 지능이 떨어진다는 식의. 굉장히, 굉장히 멍청한 생각이야.
이 아이들의 부모가 향하는 곳은 실제로 안전한 곳이긴 해. 하지만 정말로 안전한 이유는 딱 하나야.
저것들이 제 값-솔직히 말할게. 사람을 파는 거야.-을 치룬 인간이라는 걸 인식하고 건드리지 않는 거야.
전세계 인구 4분의 1을 먹어치우고 나서 이것들은 고민을 한 것 같아.
갈수록 인간 개체 수는 줄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점점 영리해지고. 그렇다고 이 별미를 포기할 생각도 없으니까 색다른 방법을 모색한 거지.
썅. 그러니까 나 같은, 원래는 등가죽이 찢기면서 뒤질 새끼들도 살아 있는 거야.
아, 온다. 와. 내가 할 일이라고는 벽에 바짝 붙어 등짝을 보여주는 것 뿐이야.
그러면 저들은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내 등을 한 번 보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보거나.
내 등은 사각사각, 이상한 소리를 낼 거고 저들은 동포의 냄새를 맡고 날 건드리지 않아. 그리고 떠나는 거야. 나는 살기 위해서 계속 물건을 팔겠지.
값은, 뭐. 보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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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입니다! 보다시피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되어 있는 옴니버스로 구성했습니다...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