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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게시물ID : phil_109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0
조회수 : 6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3/15 10:07:51

한국은 '세계유일'이라는 타이틀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는 참으로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지요.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었던,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난 뒤에도 존재하는...
그렇기에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표현하자면 이런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국가, 민족, 인종을 초월하여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수가 없게 되겠지요.

'신'을 믿는 종교에 관해서도 참 웃긴게.
그것도 자발적으로 기독교 종교를 믿으며 전파한 유일의 나라...

세계 격변기를 함께한, 사회적 성장도 이륙해낸 민주주의 국가(비록 반쪽이지만).
공식적으로 세계의 유일 분단국가로 남아있으며,
6-25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낸, 
동시에 어느 동네를 가던 손쉽게 교회를 찾을 수 있는 나라.
(참고로 제가 사는 동에는 불과 한 블록 사이에 교회가 3개나 있으며, 작은 교회들은 샐 수가 없더군요.)

19세기 중반, 최초의 신부인 이대건 신부를 기점으로 아마도 종교혁명으로 봐야하는 것이 맞을까요?
사회적인 변화를 일궈냈다고 보는 평가가 분명히 있으니까.

그 중심에 가장 큰 가치인 '반항' 그것에 대하여 말이죠.
탄압, 억압, 핍박 속에서 작게나마 외침을 하였던,
어찌보면 한국 사회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종교가 20세기 들어서 변질되어 그들만의 리그인 즉, '권력'에 기생하기 시작하여
제국주의에, 독재정권에 적극 찬양하였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정착하여... 
더욱 거대해진 사실을 실감하게 되니,
열셋이란 어린 나이에 종교를 부정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들의 시점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먼저 '신'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오히려 이용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머리를 내려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의 행동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간혹 이 방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만 할 이야기는 많으니 일단 우선순위에서 제외되고 있을 뿐이지만.
다큐 영화 쿼 바디스를 보고서야 문득 이 거대한 시나리오를 만들 수만 있으면이란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는데,

몰락하는 인간과 신성과의 만남을 십자가의 교차로 표현한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가짜 목자로써 십자가를 등에 업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이것을 설명하자면 아주 긴데, 사람들이 허무에 빠져 우왕자왕할 때,
종교란, 교회란 바로 이것을 해소시켜주는 유일무일의 기회가 되어버립니다.
약물중독에 마약중독, 알코올중독에 이르는 수많은 중독 사례를 벗어나기 위해
'신'중독에 빠지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부터 현 세대까지 사실 '중독자' 아닌 사람은 얼마 없죠.
그때나 지금이나 각박한 현실을 외면할 수밖에, 그리고 어영부영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세상은 그런 것 같아요. 아웃 포커스로 초점을 흐리게 만들고 보고 싶은 것만 초점을 맞추어 강조하는 사진처럼 말이죠.

이것을 나는 도망자심리로 보는데,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망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며, 그것을 필두로 우리는 그걸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성장이라 부르며, 그것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라고 부르곤 하더군요.
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편적이냐 아니냐를 두고서의 갈등이니깐 뭐.
아무튼 나는 이 말을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말이죠.

특히 타락했을 때(범죄자) 또 인과에 의한 죄의식에 빠졌을 때에도 우리는 교회를 찾아가 구원을 바랍니다.
(하필이면 왜 교회일까? 서방 국가도 아니며, 대중종교는 불교가 가장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시작은 좋은 의미이나, 중간은 잘못되어가고 있으니, 그 끝은 올바른 것을 다시 잡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도 소개됐듯, 그들(자칭 목자들)은 신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자가치유'합니다.
신은 모두를 용서해주시거든. 그리고 누구 하나 차별할 것 없이 구원해주시거든. 
이 말은 종교인들에겐 미안하지만, 곧 신이 죽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 속에서 피해보는 것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허황된 거짓이더라도 남이 보기엔 헛된 희망이더라도, 
본인들에겐 진실된 희망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위에서 말했듯, 목자도 양들도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문학에서 제3, 제2의 그리고 서술자의 입장으로 표현했지만 
그것이 아닌 제1의 입장으로써 우리가 그들이 되어 그들을 표현하자면 무엇이 어울릴까요?
어떤 단어를 붙여놓아도 어울릴 뿐더러,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말밖에.
사실 그것이 살아가는 거라고 인정하게 되면은, 이곳이 생지옥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거든요.
그게 우리의 모습이고, 태초부터 악한 인간의 본성이었다고 말이죠.

'네가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나도 같을 거라는 생각 하지 말라.'
그럼에도 우리는 거짓말할 궁리를 하고, 쾌락을 찾아다닙니다.
타협점은 결국, 세분화 시켜서 나누는 것 뿐.
돌이켜보면 모두가 거기서 거긴데 아이러니 합죠.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평화를! 
그러나 실상은...
하늘에는 추악한 거짓만 남았고, 땅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상에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아마도 변명을 하고 있거나 혹은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고 하여야 할까.

그리고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건 오직... 굳건한 믿음 뿐일까요?
나는 이것을 깨버리고 이겨보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만한 것을 찾지 못한 것 같네요.
다른 의미로 전에도 말했지만, 긍정의 힘으로 억지 미소를 짓는 것 뿐일까요?

순수하게 종교를 믿고 종사하며, 긍정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하니,
오히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의아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정말로 미친 놈에게는 안 미친 사람들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나 봅니다;;
내일이면 다시 정상인으로 둔갑해야 하는 내가 밉기도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지나가리라고 바라고, 느끼기만 하여서는 안되는데 말이죠.

쓰고 싶은 말들도 해야 할 말들도 참으로 많은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정말이지 하루 24시간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일반 사람인 나로써 살아가야 하고, 또 다른 나로써 살아가야 하니 바쁘기 그지 없습니다.

p.s.
생각해보니 내가 종교를 부정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런 심리때문은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신이 구원해준다는 일말의 믿음을 부정한 것으로 출발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호막 삼는 행동 말이죠.
돌이켜 상황을 떠올려보면, 딱 우리 가족들이 그랬었거든요.
뭐 완벽함을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지만, 나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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