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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를 헤치며 복귀한 탈영병이야기
게시물ID : panic_784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같은내술
추천 : 18
조회수 : 4190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03/16 12:54:09
흔히 이등병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전남의 화학학교. 하지만 교육생 신분으로 입교한 이등병한테나 파라다이스라는거고 근무하는 기간병들에게는 교장은 넓디넓은데 인원은 적어서 어우 눈이라도 한 번 왔다하면 새벽부터 삽들고 제설작업하다보면 어디서 공병학교 아저씨들이 '구레이다' 몰고와서 제설작업 대신해주고, 전남이라 여름 땡볕이 사람을 죽일 기세인데 이와중에 전투체육하자는 미친놈들이 있던지라 차마 일사병에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별 수 없이 찬바람 드나드는 실내체육관에서 농구하고, 최후방에 무슨 간첩이 출몰한다고 언덕배기에 경계근무를 돌리는지... 이와중에 저녁에 졸린데 근무서는거 힘들다고 소원수리 긁은 미친놈도 튀어나오고 이걸 보고 개깜놀한 윗분들이 '아니 군인이 경계근무가 힘들다는게 말이 되는가!' 라는 질책과 함께 수송부에 전화해서 밤에 근무지 이동할때 k111 타고 가라고 차량지원해주고... 생각해보니 기간병에게도 파라다이스 맞음. 심지어는 부대 내에 영사기 돌아가는 극장도 있어서 주말마다 영화도 보고 그랬음.

뭐 그래봤자 업무량 그 자체는 교육&지원부대답게 적지않은 편이라서 본부중대쪽은 매일매일 야근이었고 내무부조리도 있었던지 탈영병도 있었고 그해 가을에 본부중대 근무 중에 뛰쳐나간 일병인가는 그해 겨울이 되어도 잡히지가 않았으며 교도중대(조교들이 속한 중대) 행정반 PC 가 386 에서 한방에 펜티엄 90 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잉여가 된 386 이 조교연구실에 기증되어 하릴없는 말년병장들의 삼국지머신이 되어주고 또 한메타자 베네치아가 멱살로 이어지는 훈훈한 전우애로 연성되다가 어느 휴일, 한가해진 행정병이 베네치아에 넘사벽의 기록을 세우고 독수리타자로 아웅다웅하던 중대원들 단체로 기죽이고 뭐 이런저런 궁상맞은 일상이 계속되던 겨울이었음.

그날 새벽은 눈이 겁나 내렸는데 이 눈이 그냥 소복히 많이 내린게 아니라 눈보라로 휘날렸음. 그때 1 층에서 불침번서던 수송부 이등병이 막사 밖 짬견이 미친듯이 짖어대길래 무슨일인가 싶어서 나가봤다고 함.
참고로 그 짬견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앞발을 내밀 정도로 상냥한 발바리였는데 희한하게 사복입은 사람만 보면 미친듯이 짖어대서 묘하게 군바리놈들의 사랑을 받던 녀석이었음.
하여간...
그 짬견이 미친듯이 짖어대는 방향을 보니 어?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이 서있더라고.
근데 서있는 행색이 묘해.
아무리봐도 야간순찰나온 일직사령이나 사관 분위기는 아님.
자세히보니,
어? 그 탈영병?
아니 이게 뭔 일인가 싶어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기가막힌 일이었음. 아니 새벽에 부대에 복귀한다는것도 웃기고 위병소는 어떻게 통화했으며 위병소를 통과했는데 어떻게 연락이 없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쟤는 탈영병인데 이런식으로 복귀가 가능한가...
그렇게 불침번 이등병이 어버버하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 탈영병이 거친 눈보라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지더라 함.

그날 아침, 의외로 그런 사연은 빨리 전파되는 군대라서 막사 인원의 90 % 가 그 일을 일조점호 이후에 즉시 알게되었고 다들 '어린 놈이 꿈을 꾸었구나.' 로 결론을 내린 이후 그날 오후 새로운 소식 하나가 전파되었음.

'탈영병 수사 종료. 오전에 자택에서 목맨 시체로 발견'

그리고 추가로 알려진 사실은 그 불침번이 탈영병과 조우한 시각이 자살시각과 거의 유사.

이게 두어번 전해들은 얘기가 아니고 그때 당시 내가 그 부대에 근무하고 그 소식을 직접 전해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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