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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즐거운 낮술
게시물ID : soju_9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2
조회수 : 115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7/30 17:13:41


제가 한잔했어요 게시판을 찾을 줄이야. ㅎㅎㅎㅎㅎ..


글쓰며 사는 놈이지만 지금 담배가 다 떨어졌으므로 음슴체로 갈게요.


중학생 때, 나님은 정말 게이를 방불케 할만큼 졸졸 따라다니던 형이 한 명 있었음.


아, 우리 집 이야기부터 하겠음.


나님은 집 가계도가 무척 복잡한데, 일단 최씨라는 것부터 밝히겠음.


최씨집안 장손임. 친척만 30명이 넘었음.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부터 어른들에게 의해 술을 배웠음. 제사지내면 꼭 우리집에서 지냄.


다 지내고 제삿밥 먹을 때마다 술을 받음. 장손이니까 어려도 딱 한잔만 받으라고 ㅇㅇ...


작은 아버지가 대표로 주시는데, 그거 한잔 받아먹고 나니 다른 분들도 자기들이 주는 것도 받아먹으라고 아우성을 침.


당시 우리집은 술을 직접 빚어서 마셨음. 막걸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면 도수가 끝내주는 놈이었음. 어릴 때 술 다 빚고 남은 찌꺼기, 술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건 안비밀.


어쨌든 나님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술을 배웠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임.


사실 지금까지의 집안 이야기는 내가 형을 만나면서 미성년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셨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훼이크.


내가 그 형을 중학생 때 만나면서부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됨. 구구절절한 사연은 제외하고


고등학교 때, 그 형이 내게 술을 주었음. "마셔도 되겠냐?" "네." 어릴 때부터 마셔와서 그다지 거부감은 없었음.


당시 형은 백수였음. 사실, 형은 현대제철로 별 탈 없이 갈 수 있는 황금의 찬스가 있었지만 척추골절로 못가게 됨.


그래서 다른 일을 구하기 위해 죽어라고 면접 보고 이력서 넣고 하던 중이었음. 백수라서 돈이 없었을텐데도 내게 너무나도 잘해줬음.


먹을 거? 기본임. 내가 그 형 덕에 알게 된 맛집만 30곳이 넘음.


인생의 조언? 쉽게 말하면 그 이전까지는 찌질이의 대명사였던 내가 그 형의 조언대로 행동하니 "현명한" 이미지로 변신해 있었음. 날 보며 쑤군대던, 혹은 '멍청하다'며 겁나게 괴롭히던 개씹양아치새끼들이 어느 순간 내게 머리를 조아림. 그러함. 난 이제 드디어 '멍청한 놈' '찌질한 놈'에서 벗어나 있었던 거임. 물론 지금까지 만나는 부랄친구들 사이에선 여전히 둔하고 바보 같은 부처님인건 비밀


그 형이 내게 해준 말 중에 가장 가슴 찡한 게 있음. 내가 그 형에게 이런저런 도움받고 조언 얻고 얻어먹은거, 합치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움. 아니, 내가 느끼기에 이건 도저히 내가 평생 갚을 수 없는 걸 그 형은 내게 주었음. 말하자면 리미트가 무한대로 수렴함.


근데 형이 내게 해준 말은 오히려 무한대가 아니라 0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했음.


"내가 너한테 뭔가 보답을 바라고 이러는 것 같냐?"

"네?"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정말 나중에 너가 정말 힘들어서, 소주 한병에 새우깡 하나 들고 와서 술 한잔 하자고 말하는 거. 너가 당장 나가서 연락 끊고 한 30년 뒤에 나와서라도 날 찾고 술 한잔 하자고 말하는 거. 그거 하나야."


그러함. 형은 내게 큰 걸 바라지 않았음. 나는 그 동안 받은 게 너무나도 커서 그걸 어떻게 다 갚지 하고 어린 마음에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 형은 그걸 다 알고, 오히려 내게 바라는 건 소주 한병이면 된다고 함. 소주도 필요 음슴. 그냥 찾아오라고 함. 


저 말 듣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음. 이제껏 이런 형을 본 적이 음슴으로...


여차여차 해서 형과 즐겁게 지내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잠시 사이가 틀어지게 됨.


난 어쩌면 형한테 받은 것조차 못 갚고 그대로 연락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임. 


한 2~3주 간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연락을 드렸음. 형이 해준 말을 믿고.


"형, 한잔 해요"

"ㅇㅇ"


대답이 너무나 흔쾌해서 솔직히 무서웠음. 만나서,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약 한시간동안 소주만 주거니받거니 함.


그렇게 헤어짐.


그게 한 달 전 일임.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내가 다시 전화를 드렸음. 한잔 하자고.


역시나 흔쾌히 수락하심. 이번에는 꼭 이야기해야지.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 형과 다시는 연락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형에게 받아온 걸 보답할 기회 정도는 달라고 빌어야지 하고 결심함.


만나자마자 형은 나를 끌고 둘이서 자주 갔던 순대국집으로 데려감.


순대국 두개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을 시켰음. 


밥보다 소주가 먼저 나와서, 형이 내게 한 잔 따라주심. 난 최대한, 정말 예의를 다 차려서 정성스럽게 받고, 술 따라드림.


그리고 내가 결심을 말하려는 찰나!!!!!


형이 먼저 입을 염.


"다 알아 임마."


순간 눈물이 핑 돌았음. 난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말없이 미소만 지었음.


"솔직히, 그 때 일은 정말 많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그동안 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한 건데, 결정적으로 너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했음.


"근데 말이다. 너가 그대로 연락도 않하고 멀뚱거렸으면 난 더 실망했을거야. 너가 먼저 연락해줬으면 그걸로 된거야."


난 정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함. 그 날 처음으로 눈물젖은 빵...이 아니라 눈물 젖은 순대국을 먹음. 형은 맛이 예전같지 않다며 툴툴거렸는데 난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순대국이었음. 그날 형과 2차로 전집 가서 막걸리를 들이부었음.


그렇게 눈물로 화해함. 약 2주전 일임.


그리고 오늘!


형이 날 점심에 불러냄.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자마자 곱창이 뙇!!! 막걸리가 뙇!!!!!!


평소 국순당만 마시던 우리 둘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장수막걸리를 마심. 가게에 장수막걸리 밖에 없었으므로[....]


곱창이 너무 쫄깃하고 맛깔나서 둘이서 막걸리만 6병이나 마심......지금 정신이 알딸딸함...


형은 휴가 내서 목요일까지 쉰다고 함. 나님은 내일 과외가는데........


이번 주 목요일에는 참치집 가기로 했음. 그 날은 내가 내기로 함.


담배 한보루 더 사야 되는데 참치집 가야 돼서 못 삼....나님 너무 슬픔....


그러나 참치먹을 생각에 기분 좋음! 슬펐다 좋았다 내가 취하긴 취했나봄 헿헿ㅎㅎㅎㅎㅎㅎㅎ


다섯 줄 요약 :


1. 스승님같은 형이 한 명 있음.

2. 형괴 친하게 지내다가 사이 틀어짐.

3. 먼저 연락해서 화해함.

4. 오늘 함께 곱창 집에서 낮술했음

5. 막걸리는 장수막걸리, 소주는 참이슬 후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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