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손병하 기자] 이번 주 중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박지성의 이적에 관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박지성의 이적에 따른 찬-반 양론이 뜨겁다.
ⓒ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난 1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홈페이지에 '박지성, 유나이티드 선택했다'(Park: I Choose United)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적료가 최소 400만(약 74억) 파운드에서 최대 600만(약 110억) 파운드까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박지성의 이적을 구체화했다.
또 박지성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FS 코퍼레이션의 이철호 사장도 "맨체스터 구단이 우리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 계약 조건에 합의했으며 구단 간의 이적료 협의만 남은 상태"라고 밝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저지를 입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물론 스포츠, 특히 유럽 축구 시장에서의 이적과 관련한 루머는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과장과 포장이 심하고 혼탁해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박지성의 이적을 둘러싼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와 맨체스터를 비롯한 잉글랜드 언론들의 발표들을 보면 특별한 돌발 변수가 없는 이상 박지성이 축구 종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될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해도 좋을 듯싶다.
위기의 맨체스터,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거칠고 힘이 넘치는 리그라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그것도 반니스텔루이, C.호나우두, 루니, 스콜스, 페르디난드 등의 초호화 스쿼드와 최고 명문 구단을 자랑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왜 박지성을 원하는 걸까?
지난 시즌 프리미어의 자존심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확실히 '위기'를 느껴야만 했다.
첼시는 무리뇨 감독의 영입과 과감한 선수 보강으로 지난 1954/55 시즌 이후 무려 50년 만에 리그 우승을 했고, 리버풀은 04/05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불안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는 대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세리아의 자존심 AC 밀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을 한단계 올려놓았다.
이런 다른 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는 최대 라이벌인 아스날에 마지막 시즌 타이틀인 잉글랜드 FA컵마저 내주며 그야말로 철저히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지난 03/04 시즌에도 무패행진의 아스날과 돌풍의 첼시에 이어 리그 3위를 차지하며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체면을 구겼지만 FA컵에서만큼은 우승을 차지하며 무관의 수모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그마저도 차지하지 못하면서 침울한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다.
베컴과 베론의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맨체스터는 지난 2년간 웨인 루니와 C.호나우두, 앨런 스미스, 클레베르손 등을 영입하며 젊고 빠르고, 근성 있는 팀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베컴과 베론 긱스가 보여주었던 효율적이고 수준 높은 패싱 게임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루니와 C.호나우두 등 맨체스터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는 공격진은 반 니스텔루이와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면서 팀 컬러마저 혼돈 속에 빠져있다.
더군다나 로이 킨, 긱스, 페르난디드 등 기존의 노장 스타들은 물론이고 새로 영입한 유망주들도 저마다의 색깔만을 위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어, 맨체스터라는 하나의 팀플레이는 좀처럼 경기에서 찾기 어렵게 됐다.
현재 맨체스터에서는 화려한 드리블과 높은 득점력을 갖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선수보다는, 팀을 위해 궂은일을 맡을 선수가 더 필요하다. 추락하고 있는 맨체스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금씩 낱알이 되어가고 있는 팀워크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한 맨체스터의 두 젊은 공격수와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의 늪에 빠져 있는 기존 선수들 모두에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절실한 것이다. 노장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탐내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박지성의 가치는 거짓없는 성실함
잘 알려진 대로 박지성의 심장과 폐활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볼에 대한 성실한 움직임은 그에게 다소 부족한 볼 키핑과 슈팅 능력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을 만한 수준이다. 그리고 측면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드, 여기에 수비형 미드필드까지 어느 위치든 소화할 수 있는 박지성이란 카드는 퍼거슨 감독에게 분명 매력적이다.
또 박지성의 성실하고 경이롭게 뛰어다니는 플레이에는 어떤 색깔로든 덧칠이 가능해진다. 케즈만과 로벤, 롬메달 등의 이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아인트호벤이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 모습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박지성이란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독이 원하는 전술에 최적화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박지성인 것이다.
젊고 빠른 축구로 전환을 꿈꾸고 있는 맨체스터는 박지성이란 하얀 도화지를 바탕으로 그 위에 그들만의 새로운 팀 컬러를 그려 넣을 수 있다. 지금까지 맨체스터가 질 높은 패싱 게임으로 리그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압박과 스피드라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적응을 수행해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자존심 강한 정상급 선수들을 융화시킬 수 있는 헌신적인 선수가 필요하다.
충분히 유망한 스타들이 많고 리그 정상급의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는 맨체스터가 박지성이라는 다소 생소한 동양인을 원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박지성이 현재 맨체스터의 색깔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맨체스터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최상의 해결책이 박지성같은 성실하고 거짓 없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박지성은 맨체스터의 변화에서 구심점이 될 만한 충분한 능력과 가능성을 지녔다.
아직 박지성이 새롭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저지를 입고, 올드 트래포드 구장에서 환상적인 드리블과 함께 멋진 골 세리모니 할 수 있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그것도 축구종가며 자존심인 잉글랜드에서 한국인 축구선수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고, 맨체스터의 그 광적이고 냉철한 축구팬들이 이구동성으로 박지성의 영입을 원하고 있는 현재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가슴 뛰는 일이다.
이번 이적이 성사될 경우 박지성은 새로운 환경과 낯선 선수들 그리고 언어, 문화의 새로운 장벽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텃세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끝없는 모험과 도전으로 후회 없는 선택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스승인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로 날아가던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평발을 극복하고 축구 선수가 되었고 1년이라는 기나긴 부상 공백을 이겨내고 아인트호벤의 중심이 되었던 것처럼, 또 한 번의 도전을 훌륭하게 이겨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적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박지성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데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다가올 시즌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올드 트래포드든, 필립스 스타디움이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