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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리뷰(스포)
게시물ID : movie_415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ksow12
추천 : 1
조회수 : 16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18 07:54:13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버드맨으로 기억된다. 감각은 실존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그를 버드맨이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그 자신으로 사랑받지 못한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이곳에 없어. 존재하지 않아. 이곳에 없어. 그는 사랑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곳에 없다. 감각은 실존을 동반한다.
버드맨은 끊임 없이 그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중얼 거린다. 분장실은 냄새가 나고, 그의 현실은 비참하고, 살찐 칠면조 마냥 그의 몸뚱어리는 망가져 있다. 그가 가장 사랑 받았던 시기는 1992년 그가 버드맨이었던 때였고, 헐리우드식으로 비참했을 때였다. 그래서 버드맨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살아남아 있다. 그는 가장 사랑받았었기에, 사랑받는 것은 실존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실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버드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리건은 한번도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고 한 적이 없다. 그의 가장 큰 열망은 버드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가 되려는게 아니라 그의 딸인 샘의 말처럼 관심 받으려고 버둥거리는 한물 간 배우일 뿐이고, 관심받기 위해 애쓸 뿐이다. 그는 한번도 예술가가 되려고 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사실 그런 면에서 비평가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감독인척, 배우인척, 예술가인척 하고 있을 뿐이다. 버드맨의 말처럼 사기꾼이다. 그는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그를 찾는지, 무대가 얼마나 자기를 빛나게 해줄 것인지만을 신경쓸 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예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노튼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진짜 세상을 즐기라고. 이 무대위에 진짜인건 닭다리 하나 뿐이라서 차라리 이 닭고기와 연기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 그려져 있는 우로보로스의 문신을 새기고 있다. 그에게 진짜란 가짜이고 가짜란 진짜이다. 그는 진짜 세상을 보라고 관객에게 말한다. 그 진짜 세상은 그가 연기를 하고 있는 연극이다. 그는 연기하는 도중 진짜로 '하자고'한다. 그는 계속해서 발기부전 이었다. 그는 자신을 마이크라 부르지 말라며, 자신을 멜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그건 정말 real 같을 거야.' 노튼은 연극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에게 실제라는 것은 연극이다. 그는 연극 안에서 실제가 된다. 하지만 이 말은 결국 모순일 수 밖에 없다. 연기가 아무리 real 같아도 그건 삶을 흉내내고 있는 가짜이다. 그건 결코 real 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연기가 real 해져도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연극이 진짜 real이길 바라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 그에게 연극의 삶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이다. 나머지 삶은 진짜 삶을 위한 여분의 삶일 뿐이다. '진실이 가장 흥미롭다' 그는 샘과의 게임에서 항상 진실만을 고집한다.

'네 머리에서 두 눈알을 꺼내 내 두개골에 박아넣고, 거리를 둘러보겠어. 내가 네 나이 때에 그랬던 것처럼'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이다. 그 나이때에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은 실존을 동반한다.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실존을 불러온다. 그의 낡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진부하고 단조롭다. 그렇기에 그는 욕망없는 발기 부전이며, 무대에서 모든지 할 수 있다. 그는 무대가 진짜이길 원한다. 가짜가 진짜이기 원하지만 결코 진짜가 되지 못한다. 그는 가짜 속에서 진짜가 된다. 진짜 세상에서 자신은 가짜이다.

 샘은 리건에게 말한다. 당신은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는 잊혀진 배우일 뿐이라고. 그가 팬티만 입고 브로드웨이 길을 걸었을 때, 그를 찍은 동영상은 히트를 친다. 샘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는 순식간에 유명해 진다. 샘은 말한다. 아빠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파워고 권력이라고.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신화나 서사에 만들어진 문화들이 지금은 만화 캐릭터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리건은 바르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말을 돌리다 옆의 여기자의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자신의 얼굴에 새끼돼지 정액을 주사했다는게 사실인가요?' '리건 부인했다 라고 적죠'
연극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버드맨4 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듣던 일본인은 '버드맨4' 라며 소리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버드맨, 가쉽, 만화 캐릭터, 헐리우드 영화, 그리고 리건,
연극, 롤랑 바르트, 서사시, 신화, 예술, 그리고 마이크

이쯤되면 이야기는 조금 확실해진다.

리건의 전 부인은 말한다. 당신은 늘 존경과 사랑을 헷갈려 했었어.

리건은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는 사랑받고 싶다. 리건은 사랑과 존경을 헷갈려 한다. 그는 존경받고 싶어한다. 사랑받고 싶어한다.
'이 지구상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에게 버드맨은 벗어나고자 하는 과거가 결코 아니다. 그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한적도 없다. 그는 존경받고 싶어한다. 진정한 예술가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늘 헷갈려 했다. 그는 사랑 받고자 했다. 그에게 버드맨은 그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에는 버드맨이 된다.

 코를 쏜 리건이 얼굴에 붕대를 하고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버드맨의 부리같아 보인다. 그는 상징적으로 버드맨이 되었다. 버드맨이 전 세계에 사랑받았던 것처럼 그는 온 세상에 사랑을 받는다. 세상은 그의 무사한 회복을 기원하며 꽃을 바치고 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을 보여 주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 비평가에게 존경받는 감독이자 배우가 되었다. 그는 완벽한 버드맨이 되었다. 그렇기에 더는 그는 버드맨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완벽한 버드맨이 되었다. 온 지구의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향기를 풍기던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코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비평가에게 술집에서 자신의 연극을 망칠 거라는 말을 듣고 비난한다. 당신은 이 꽃이 뭔지도 모른다고. 무언가 라벨을 붙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꽃의 향기를 맡을 수도 없는 버드맨이 되어 버렸다. 그는 죽으려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리고 해파리가 쏘는 통증을 느끼고 바다에서 빠져 나왔다. 죽으려고 한 순간에 삶을 지속하게 만든건 지독한 고통이었다. 감각은 언제나 실존을 불러온다. 그리고 해파리가 바다에 죽어있다.

해파리는 리건이다. 리건은 해파리다. 사실 이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 을 발휘한건 리건이 처음이 아니다. 그건 해파리에 의해 먼저 이루어 졌다.
그가 죽으려고 바다에 들어갔을 때, 해파리는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 으로 인해 리건의 목숨을 살린다. 그런 해파리가 바다에 널부러져 죽어있다. 해파리는 리건이다. 리건은 해파리다. 그리고 이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이라는 라벨은 그가 그렇게 비난 하던 비평가에 의해 자신의 행위가 정의 된 것이다.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살시도. 그것들은 단지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는 이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으로 인하여 죽지 않고 살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버드맨이 되었다. 더 이상 버드맨은 필요하지 않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그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이다. 그렇기에 사실 리건은 비평가를 비난할 수 없다. 자신의 삶에 라벨을 붙이려고 노력한 건 사실 스스로 였으니까 말이다.
감각은 실존을 불러온다. 그는 사랑받는 다는 감각 없이는 실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사랑받는 삶으로 라벨 지어진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꽃의 향기조차 바로 맡을 수 없음에도. 그는 사랑받는 삶을 산 사람이다. 그가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은, 진짜 피를 가짜인 연극 무대에서 흘린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극은 더 이상 가짜가 아니게 되었다. 더 이상 버드맨이 허구가 아니게 된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드맨은 진짜가 아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닌다. 버드맨은 새가 아니다. 버드맨은 결코 새가 될 수 없다. 새는 진짜다. 버드맨은 가짜다. 그는 버드맨이 되었다. 그는 붕대로 만든 부리를 벗는다. 더 이상 버드맨이 되고 싶지가 않다. 그는 더 이상 가짜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드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들려오는 부드러운 음악을 음미하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진짜인 새가 살고 있는 하늘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건 진짜 삶이다. 샘은 그런 리건을 웃으며 바라본다. 휴지 한장은 인류 전체의 역사이다. 삶은 그만큼 허망하다. 그런 샘이 리건을 보고 웃는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리건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무엇이 훌륭한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가 아니다. 그것이 긍정되었다는 것만을 우리는 샘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리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샘에게 긍정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리건의 선택이 옳았든 틀렸든. 그는 샘에게 긍정 되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버드맨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단지 영화 내에서만 말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영화내에서 풍기는 음악을 직접 듣고, 그것이 실제하고, 영화와 연극 가짜와 진짜라는 수 없이 다양한 프레임 속에서 그것은 현실과 관객에게 까지 뻗쳐 나간다. 이 영화가 가장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에서 나온다.  그건 마치 영화가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 을 현실의 관객에게 일으키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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