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 결산을 끝내서 그나마 아주 근소하게나마 쌓였던 업무가 없어졌으므로 음슴체.
스물 일곱.
친구들은 해외여행이다, 연애다, 스펙 쌓기다 바쁠 때에 나는 운명 같은 남자를 만나 운명 같이 결혼했음.
3년을 가까운듯 먼듯 같은 회사 내에서 지내던 남편에게 언제부터였을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는 감정이 생겨
두달을 쫓아다니다시피 썸아닌 썸 연애 아닌 연애를 하다가, 지금은 내 인생 0순위 보물인 아들이 생겼고
나와 남편은 망설임 없이 결혼을 준비, 14년 5월 18일. '5.18 민주화 운동기념일' 이라는 뜻 깊은 날에 나는 결혼을 했음.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경외심도 들고
너무도 사랑하던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얼떨떨하고 행복하던 날들이었음.
그러나 그런 마냥 행복한 감정이 얼마 가지는 못했음.
결혼은 역시나 현실이고.
점차 불러오는 배를 보며 나는 내 인생이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음.
(임신한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똑같이 겪는 감정인 것 같음. 뭔가 특별한 불행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낳을 때 고통스럽지는 않을까 등등의 그런 평범한 불안함)
남편은 무뚝뚝하면서도 한 편으론 자상한 남자였지만..
항상 업무가 바빠, 같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따로 출 퇴근을 해야 했고 집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음.
심지어 임신 6~7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쯤 갑작스레 닥쳐온 조산기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2개월이나 먼저 휴직을 내야 했고
나는 마음껏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하루종일 집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신세가 됐음.
병원에도 2주 정도를 입원해 있어야 했고, 바쁜 남편으로 인해 병원에서 조차 나는 혼자 있어야 했음.
그때가 결혼하고 2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임신은 2월, 결혼은 5월)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조금씩 쌓여가던 서운함, 원망, 미움 등의 감정들이 점점.. 마음 속을 뚫고 나오려 하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음.
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던 임신부들의 남편은 퇴근 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와 와이프가 먹고 싶다는 것도 사들고 오고..
열악한 병원 환경에서 고생한다며 다독여주기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늘 혼자 숨죽여 울어야 했음.
퇴원한 후에도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가 없었고
맨 밥에 김을 싸먹거나, 집에 사둔 씨리얼에 우유를 말아 떼우거나 하기 일쑤였음.
친정과 신혼집의 거리가 1시간 내외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엄마에게 이런 나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가 않았음.
딸 시집보낸 부모님은 늘 죄인과 같은 마음이라는데...
누구보다 소중한 딸이 임신까지 해서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 엄마가 마음 아파할 게 뻔해서 였음.
남편은 늘 늦었음.
일이 바빠서, 회식이 있어서, 업체 미팅이 있어서..
그 와중에도 아무리 늦은 저녁에라도 내가 먹고 싶다는 게 있으면 사다주는 남편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독이며 버텼음.
그리고 남편이라고 임신한 와이프.. 그것도 조산기 있는 와이프 두고 늦게 귀가 하는 일이 맘 편하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음.. 아이를 낳고 아기가 50일쯤 될 무렵까지도 나는 그랬음.
정말 많은일이 있었음.
처음 임신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육아를 하는.. 약 8개월~9개월의 시간동안
여기에 나열 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음.
남편 친구들의 시어머니도 시키지 않는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과 같은 텃새와, 상처가 되는 말들.. 무심한 남편.
나는 상처를 받아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인데도
참고 참다가 ~해서 힘들다 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이라곤 너가 나이가 어리니 (남편과 저는 7살 차이) 너가 좀 더 다가가려고 노력해봐라..
그 친구들은 내가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조차도.. 아기 낳고 내가 먼저 연락을 안했단 이유로 뒷말을 하던 친구들이었음.. (여자 두명)
조리원에 있을 때에도 남편은 바쁘단 핑계로.. 주말을 제외하고는 평일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음.
나는 그래서 방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음..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신생아실 소독이 있어서 항상 아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와 있어야 했는데..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남편과 다정하게 아이를 데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산모들을 보며..
나는 늘 방으로 돌아와 아들을 안고 서럽게 울어야 했음.
조리원에서 퇴원을 한 이후에도 육아와 집안일은 모두 내 차지였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하고 참 미련스러움..
출근하는 남편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두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기 혼자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했고..
낮 시간에도 시어머니 조차도 아기가 잘 때 같이 좀 자라고 하셨지만 난 그러질 못했음..
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이 집이 더럽다고 타박할까 두려워서. 좀 더 안락한 공간에서 쉬게 하고 싶어서. 미련스러웠음 정말.
그렇게 애써봐야 상대방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그땐 몰랐던 것 같음.
그렇게 아들이 50일이 될 때 까지 나는 버티고 또 버텼음..
그 와중에도 남편은 평일에 약속이 있으면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고, 미팅이나 회식이 있으면 또 늦게 귀가하고...
그러다 드디어 내가 터졌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야기 했음.
나의 상황,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힘듦, 나의 마음 상태.
그때의 내 상태는 당장이라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애기 키우고 싶은 심정이었음..
시도때도 없이 상처입히는 남편의 친구들.. 늘 일에만 집중하고 나에게는 관심도 없어보이는 남편..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나날이었음.
이야기 하고서도 처음엔 잘 받아드리지 못했음. 돌이켜보면 내 잘못임.
남편은 이미 너무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었던거였음. 내가 혼자 알아서 지내는 것에.. 잘 따라가 주는것에.
거의 5개월을 싸웠던 것 같음. 싸운다는게 서로 언성을 높히고 모진말을 내뱉으며 싸우는게 아니라
나의 상황과 나의 마음을 남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싸웠음.
내가 받은 상처들과 힘듦을 남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우린 늘 싸웠음.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백분토론과 흡사하다고 했을 거임.. ㅋㅋㅋㅋ
1월에 복직한 후로는 신경정신과도 다녀야 했음.
조절되지 않는 분노와, 우울감..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오는 자살충동.
남편 얼굴만 봐도 화가 났고.. 시시각각 지난 시간들에 대한 아픔이 고스란히 떠올라 살인충동에까지도 나는 시달려야 했음.
남편이고, 남편 친구들이고.. 정말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 십번은 했던 것 같음.
그렇게 약 4개월 가량을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남편에게 못된 소리도 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음..
그냥 어느 순간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인생을 불쌍하게 만드는건 남편도 남편 친구도 아닌 나 자신이란 생각이 들었음..
그 때부터 회사 근처 헬스장을 등록해서 운동을 시작했고.. (몸이 지쳐 있으면 마음도 지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과의 사이가 틀어질까 여전히 꺼내놓지 못한 말들을 담담하게 꺼내 놓았음.. 난 당신 친구들 만나고 싶지 않다고.
친구들 만나고 싶으면 밖에서 만나라고. 당신 친구들과 당신이 연을 끊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집으로 끌고 들어와서 만나고, 나에게 그들과의 인연을 억지로 노력하라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주변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음..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던 기억들도 점차 희미해지고, 자살충동도 완전히 사라졌음.. 남편 친구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음.
오히려 남편 친구들이 불쌍했음. 남의 인생에 그렇게 오지랖을 떨고, 감놔라 배놔라 참견을 하며 사는 그 피곤한 인생들이.
그렇게 여름이 왔음.
아직까지,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음.
(남편 여러분.. 와이프가 임신했을 땐 그냥 정말 나 죽었소.. 하고 떠받드려 주세요. 그 은혜 평생 안잊을겁니다.)
임신했을 때 서러웠던건 죽을 때 까지 잊히지 않는다더니 정말 관에 묻힐 때 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음.
하지만 나는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괜찮아 졌음.
더 이상 지난 일이 생각난다고 해서, 미칠듯이 화가 난다거나 우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괴롭지가 않음.
정말.. 먼 옛날의 이야기 처럼 아, 그땐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듬.
요즘은 오히려 행복하다는 생각도 다시 들기 시작했음.
더불어 그때의 내가 참.. 바보 같았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음.
지나고 나면 다 별 일 아닌 건데 왜 그렇게 그 일들에 매달려서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괴로워 했었는지.
하지만 사람이 다 그런 것 같음.. 겪을 때는 이 상황이 지나가지 않을 것 같고.. 이 상황을 돌이켜 보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고..
물론 지금도 힘든 순간들이 있음.
그러나 그 힘든 순간들을 나는 버틸 수 있고 이겨낼 수 있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겼음.
비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 처럼 1년여의 시간동안.. 나는 거세고 힘든 폭풍우와 태풍을 맞으며 단단해진 것 같음.
그냥..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친구의, '너 요즘 많이 안정되어 보인다' 라는 말을 듣고 주저려 봄..
그리고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이 시대 유부녀님들께 힘을 주고 싶어 주저려 봄..
사람이 살고자 하면 못 살 이유는 없는 것 같음.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래, 한 번 해보자. 다 덤벼라' 라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내다 보면..
그 하루하루가 뭉쳐서 정말 값진 경험과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 보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음.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은게 있음..
사람은 어려운일이 닥치면.. 그 일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음.. 본능적으로..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을 조금만 다르게 먹어도.. 그 일이 조금쯤은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 같음...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