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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단편)정말 우리 엄마 맞아?
게시물ID : panic_978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곤한뒷목
추천 : 26
조회수 : 2976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1/29 01: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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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처럼 혜리, 수지와 파자마 파티 중 이었다.
 
- 얘들아, 늦었다 이제 자라.
- 엄마 조금만 더 놀고 싶은데. 조금만.
- 세리야. 엄마가 10시 넘어서 자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 키.. 키 안큰다고. 그래도 친구들 왔는데 딱 조금만 더요. 응응?
- 안돼. 어서 혜리하고 수지 배게랑 이불 챙겨주고 잘 준비해라. 누워서 이야기 하다 자면 되잖니?
- 네에...
 
나는 풀이 죽어서 마지 못해 대답했다. 엄마가 말한 바는 우리집의 법이다. 내가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다. 정말 우리 엄마 맞아?
주섬 주섬 혜리와 수지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셋이 주르륵 머리를 맞대고 누웠다. 우리는 죽은듯 조용히 기다렸다. 시계가 10시 10분을 가르킬 무렵 정확하게 열리는 방문. 엄마가 살짝 방문을 열고 자는지 검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 맞지? 울엄마는 이때 쯤 꼭 내가 자나 안자나 확인하고 간다니깐. 지금도 안자고 있었으면 또 잔소리 했을 걸? 내가 벌써 5학년인데 아직도 5살 아기 다루듯이 군다니까. 아 정말~ 혜리 너네 엄마는 늦게 자도 잔소리 안한다면 부럽다~
- 그래도 우리 건강 생각해서 그렇는 거지. 내 엄마는 나 신경도 안쓰는데 부럽다야.
- 부럽긴. 그러면서 설거지나 신발 빨래도 나한테 시킨다니깐. 5학년짜리가 설거지하고 신발 빨래하는 건 전국에 나 혼자일꺼야. 어쩔 땐 엄마가 어디서 나 줏어왔나 싶다니까. 정말 우리 엄마 맞아? 휴. 수지는 어때?
- 뭘, 엄마들이 다 그렇지.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들이 믿는 교육 방식을 우리한테 다 떠넘기려고 하자나. 할머니 얘기들어보면 엄마도 그렇게 안컷으면서. 참! 그러지 말고 우리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나 할까?
 
우리는 동시에
- 꺄아~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 재밌겠다.
- 누구부터 할까?
- 내가 먼저할께! 너네 머리 감을 때 귀신보는 법 들어봤어?
우리는 수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돌아가며 자기가 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했다. 파자마 파티는 이때가 사실 가장 재밌다. 무서운 이야기를 여럿이 나눠 공포를 희석하는 즐거움.
 
어느덧 시계가 12시를 가르킬 무렵 수지는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고 혜리가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했다.
- 세리야 너 아까 엄마가 네 엄마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랬지. 사실은 말야. 난 내 엄마가 가짜인거 같아.
- 꺄~. 무슨 이야기야.
- 그러니까... 휴. 내 느낌인데 엄마가 묘하게 바뀐거 있지? 딴사람은 모를거야. 엄마가 언제부턴가 나한테 신경을 안쓴다니까. 그리고 분위기도 뭔가 딱 말할 수 없는데 옛날하고 다른거 같아.
- 크큭. 너 예전부터 엄마가 너한테 신경안쓴다고 투털거렸잖아.
- 아니 그거는 옛날이고 요즘에는 진짜 차원이 다르다니까.
 
혜리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불꺼진 방안. 지나가는 초침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 지난 여름방학에 우리들 교회에서 수련회 2박 3일로 갔다 왔잖아. 그 때 우리 엄마도 놀러갔거든, 귀찮은 나 없다 이거지. 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내가 수련회 같다 오는날 엄마도 집에 돌아왔거든. 근데 여행에 돌아오고나서 엄마가 이상한거야.
- 그냥 여행같다 오고 나서 피곤해서 그런거 아닐까?
- 아 짜증부리고 이런 것은 나도 이해하지. 근데 이건 그런게 아니야. 엄마가 예전 일을 기억을 못한다니까? 예를 들면...
- 예를 들면?
- 아! 엄마가 나한테 무신경했지만 밤마다 자기전에 이 잘닦았는지는 꼭 확인했거든. 근데 여행갔다 오고 나서는 한 번을 나한테 양치 했냐고 묻지를 않는거야.
- 에이. 엄마가 이제 너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생각했나보지.
-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요즘 왜 양치검사 안하냐고. 근데 엄마가 자기가 왜 귀찮게 다 큰 쳐녀를 양치검사 하냐고 되묻더라니깐. 그래서 내가 그럼 지금까지 왜 했어라고 했지. 근데 엄마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거야. 처음엔 장난인지 알았지. 근데 엄마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어.
- 에이 설마 착각아니야?
 
혜리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더니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 이뿐만이 아니라니까. 그 전에는 내가 티비 소리 조금만 크게 높여도 시끄럽다고 노발 대발 했었거든. 내 평생 엄마가 볼륨 10을 넘는걸 보지 못했었는데 요즘에는 20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그래서 내가 왜 치사하게 엄마만 티비 크게 듣냐고 하니깐 자기가 언제 크게 틀지 말라고 그랬냐는 거야. 뭔가 이상하지?
- 으아 무서워. 이거 진짜야?
 
나는 무서워 이불을 머리까지 푹 뒤집어 썼다. 그때 나지막하게 들리는 혜리의 음성
- 너네 엄마도 우리 수학여행 갔다 왔을 때 놀러 갔다 오셨다고 하지 않았어?
- 응 아빠랑 나빼고 단 둘이 치사하게 여행갔잖아.
- 같다 오고 나서 이상한점은 없고?
- 당연히 없지. 아! 그러고 보니...
 
머리를 스치는 기억. 갑자기 그 때  방문이 확 열리며 엄마가 머리를 빼곰 내밀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 요 녀석들 늦게 자면 키 안큰다니까? 자는데 뭐가 이렇게 소란스럽나 했네. 지금 12시 다 된거 안보여?
- 미... 미안해 엄마.
 
엄마는 돌연 인자한 목소리를 하곤
- 으이그. 아가씨들 이제 진짜 주무셔. 내일 아침에 비몽사몽하면 밥 없을 줄 알아
 
 
 
2.
 
그날 밤의 혜리의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가짜 엄마.
 
왜 이렇게 찝찝한걸까 한참 고민해보니 얼마 전 부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인정머리 없는 우리 엄마였지만, 내가 같이 놀아달라는 부탁에도 언제나 흔쾌히 받아 주었던 엄마. 엄마와 나는 특히 [UNO]라는 카드 게임을 좋아했다. 한번 시작하면 우리는 적어도 열판은하곤 했다. 열판.
 
어두운 밤 부엌 불빛에 의지하여 가계부를 적고 있는 엄마의 등이 보였다. 나는 살짝 엄마 등에 매달리며 아양을 떨었다.
- 엄마 나랑 [UNO] 놀이 해주면 안돼? 응? 제발.
- 하하! 알았어. 근데 어떻게 하는 거야?
 
응 뭐라고? 처음에는 엄마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엄마가 어떤 게임인지 통 모르겠다고 하자. 내가 답답해서 그럼 설명해 줄께하니 엄마는 복잡한 게임은 싫다고 하며 나에게 티비나 보고 오라며 리모콘을 쥐어 주었다. 몇 일전 이 일이 장난이 아닌건가? 설마.
 
나는 시험해보기로 했다.
학원에서 돌아오고 집에 들어가니 '탁 탁 탁' 당근을 능숙하게 자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저 솜씨는 우리 엄마다.
 
- 엄마 있다가 밥먹고 나랑 [UNO]카드 놀이 해주면 안돼?
- 숙제는 다하고 물어보는 거야?
- 응 다하고 할께 응? 제발?
- 하하. 알았어. 대신 숙제 먼저 하고와.
 
그래 역시 우리 엄마다. 엄마는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요즘 학교에서는 누구하고 잘 지내는지. 학원에서 공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없는지. 그럼 그렇지. 그런데
 
- 그럼 하는 방법 정확히 알려줘.
- 응 뭐라고?
- [UNO]가 뭔가. 카드놀이.
- 어... 엄마 장난치는 거지.
 
그 때 내 눈에 비치는 치마 밑 엄마의 무릎.
- 어! 엄마 무릎에 흉터 어디갔어. 그 엄마 어렸을 때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다쳤다던?!
- 아. 그거. 그러고 보니 어디 갔더라. 진짜 안보이네. 그래. 흉터도 오래되면 살이 늘어나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거야. 잘 됐네.
 
엄마는 왼무릎을 매만지면 이야기했다. 왼무릎.
나는 뒤돌아서서 내 방으로 돌아가면 계속 생각했다. 왼무릎. 왼무릎.
 
분명 엄마의 흉터는 오른다리에 있었다. 분명히.
 
다음날 학교에서 쉬는 시간. 나는 불이나게 혜리를 찾았다.
- 혜리야. 이상하지 않아?
- 야아~ 소름끼친다? 너 지난번에 내가 이야기했다고 장난치는거 아니지?
- 아니라니까.
 
몇 번이고 혜리에게 장난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고 나서야 혜리가 주변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 오늘 학교 끝나고 학원갈 때 까지 시간있지?
 
 
3.
 
 
혜리와 나는 운동장을 서성이며 이야기했다.
 
- 안 그래도 사실 세리 너한테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었어. 다른 친구한테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보일까봐 얘기 꺼낼 생각도 못했거든. 나도 믿기지 않으니깐. 근데 세리 너라면 믿어줄까 싶어서.
- 무슨 이야기인데?
- 그 파자마 파티 지나고 다음날 저녁에 있었던 일인데. 내가 동생하고 장난치다가 유리 컵을 떨어뜨렸거든. 그래서 엄마한테 야단맞게 구나 싶었는데 엄마가 아무소리 없이 깨진 유리를 치우는 거야.
- 그래서?
- 나도 미안해서 엄마가 깨진 컵 줍는거 도와줬지. 근데 엄마가 유리 줍다가 살짝 손가락을 베인거야. 내가 분.. 분명히 봤어. 크진 않아도 검지 손가락에 1cm정도의 상처. 미안해서 내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래서 속으로만 죽었다고 생각만하고 날라올 엄마 잔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지. 근데 아무말 안하더라고 혼날 줄 알았는데.
- 그.. 그게 다야?
 
'후'하고 혜리가 나즈막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 그게 다면 이야기 꺼내지도 않았지. 문제는 다음날이야. 나도 그래도 엄마 딸인데 미안하잖아. 아침 밥 먹는데 자꾸 엄마 검지 손가락에 눈이 가더라고 근데 없더라고.
- 뭐... 뭐가?
- 상처. 분명 어제 다쳐서 있어야 될 상처가 없더라니까.
- 작은 상쳐여서 금방 다 나은거 아니야?
-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분명 약간 무언가 흔적은 남아야 하지 않겠어. 아무리 그래도 말야. 단 하루만에 그게 다 낫는다고?
 
나도 심각해졌다. 엄마의 흉터. 엄마의 유년기에 생긴 흉터가 왜 하필 지금에서야 딱 사라진 걸까. 타이밍 한번 기가막히게.
 
- 에고, 나 학원 늦겠다. 에이 설마 우리 착각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잖아. 나 먼저 간다.
갑자기 혜리는 밝게 말했다. 마치 자기가 착각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혜리는 바람처럼 빠르게 멀어져갔다.
 
 
 
4.
 
 
엄마에게 미안했지만 딱 한번 나는 시험해보기로 했다. 혜리처럼.
 
방법은 간단했다. 오늘은 엄마의 설거지 차례.
설거지 통에 여러 그릇속 식칼을 숨겨 놓는 것이다. 마치 암초처럼.
 
저녁을 먹고 나는 빈 그릇을 개수대로 가지고 갔다. 나중에 설거지하려고 치워 놓은 식칼을 설거지 통 바닥에 놓는다.
그리고 빈 그릇들을 그 위로 쌓았다. 물론 성공할지 안할지 나도 알 수 없다.
아니 마음 한켠에는 성공하지 않았으며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 별일 아닐꺼야.
 
이윽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얏!
 
엄마의 신경질적인 비명. 그리고 칼날에 벤 왼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
엄마 미안.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숨죽이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엄마를 의심했다는 미안함.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 ...나 
- 음. 으응?
- 일어나라고. 학교가게 밥먹어야지.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지난 밤 모든일은 꿈처첨 느껴졌다. 죄책감과 미안함에 악몽을 꾼 탓이다.
부스스 눈을 뜨고 엄마를 뒤 따라 방을 나서려는 찰나. 눈에 들어왔다.
 
 
말끔한 엄마의 왼손가락들.
어디에도 전날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5.
 
 
- 선생님 혜리 오늘 학교에 안 오나요?
- 혜리는 음. 그래 집에서 오늘 아프다고 전화왔어. 오늘은 학교 쉰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혜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가 아니었다.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한동안 혜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전화해도 받지 않는 친구. 무언가 잘못된 걸까?
 
나 또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지난친 나의 의심일까?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그래 가끔 나에게 지나치게 못되게 굴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 나의 건강, 미래에 대한 잔소리다. 잊고 살아도 괜찮은거겠지?
 
딸깍. 방문이 열린다. 그리고 들어오는 두개의 눈동자. 나는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엄마는 언제난 10시 10분. 내가 자는지 살핀다. 문제는 요즘에는 통 생각이 많아 잠이 잘 오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매번 이렇게 엄마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자는 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가고 나면 핸드폰을 살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오빠들 소식이라도 보는 것이 잠이 드는데 도움이 된다.
 
딸깍.
- 이 아가씨 봐라. 이럴 줄 알았어.
- 앗! 어... 엄마.
- 휴. 다음에 또 잠안자고 핸드폰 보는거 걸리기만 해봐. 핸드폰 일주일동안 금지할 꺼야. 늦게 자면 키안큰다고 했지. 빨리 핸드폰 끄고 자. 이따 엄마 또 와서 살펴 볼꺼야.
 
쿵. 세차게 닫치는 방문.
엄마는 10시 10분 이후로 여태까지 한번도 더 내 방에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오늘이 처음. 역시 무언가 잘못된걸까.
의심이 깊어졌다. 역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다음날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한 가지만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엄마다. 그럴리 없다. 나를 낳아주신 사람.
 
집에 돌아가니 한가롭게 티비를 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소파 팔걸이 위 리모콘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얘가? 잘 보고 있는데 무슨 짓이야.
- 엄마 나랑 [UNO]게임 해.
- 뭐라고?
- 지금 당장 나랑 게임하자고
 
눈 시울이 붉어졌다. 눈물때문에 엄마가 흐릿하게 보였다. 흐릿하게.
 
- 왜 학원에서 무슨일 있었어?
- 됐고 나랑 지금 당장 [UNO]게임해. 엄마 할 수 있잖아. 내 엄마라면 할 수 있는 거잖아.
- 얘가 무슨소리 하는거야?
 
마침내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 엄마는. 우리 엄마는. 카드 게임을 얼마나 잘 했는데! 근데 이상하잖아. 하는 법도 모른다고 하니까. 기억나? 엄마! [UNO]는 내가 8살 때 엄마가 숫자 가르쳐 준다고 알려준 놀이 잖아. 근데 어... 엄마가 모르면 안돼는 거잖아.
- 난 또 무슨 소리라고. 허 나 참. 알았어 미안해. 엄마가 요즘 바빠서 못 놀아줬다고 삐졌구나. 그래 당장 시작하자 그 게임. 가지고 와.
 
따스하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엄마의 품. 툭툭 나를 토닥이며 안아주는 엄마의 손길. 이 따스한 손길은 세상에 우리 엄마 한 분 밖에 없다. 엄마 미안.
나는 울음이 더 터져나왔다.
- 미안해 엄마 으 흑흑. 다시는 의심안할께. 사랑해.
- 에고 갑자기 닭살돋게 얘가 왜그래. 그래 그래 알았어. 엄마가 요즘 소홀했지 미안해. 그래도 엄마가 우리 세리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거 알지?
 
잠시 말을 멈추고는
- 이건 너하고 나하고 비밀인데. 푸흣 아빠보다 엄마는 세리가 더 좋다. 괜히 아빠한테 이야기 하지마.
- 엄마~
 
오래만에 엄마하고 나는 함께 웃었다. 친숙한 엄마의 속삭임
- 그런데 [UNO]게임은 어떻게 하는거야?
 
 
 
6.
 
 
딸깍. 방문이 열렸다.
방안을 가득 채운 기계음. 그리고 여러 기계에 둘러쌓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을 또각 또각 걷는 두개의 구둣발소리.
그들의 걸음은 한 여자 앞에서 멈쳤다.
 
[2018년 1월 29일 생. 박세리. 혈액형B형]
여자의 머리위 작은 모니터 액정에는 한 때는 활기찼던 그녀가 누군인지를 표시하는 환자 기록카드가 파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여러 기계 장비들이 불안정한 신호 음을 내고 있었다.
 
- 또 오류 난거야? 김간호사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오류가 잦아?
- 죄송합니다. 매일 체크한다고 하는데 휴. 근데 시스템이 너무 낡았어요 꽤 오래된 구형이니까요. 지금 신규환자들한테는 4세대 시뮬레이터 쓰잖아요. 식물인간들한테. 근데 이거는 너무 초창기 모델이라. 2세대니까요. 오류가 너무 잦아요.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이 그럼 또 리부팅 해야겠네. 환자 생명 정보 잘 확인하고. 바로 리부팅 시작하자고.
- 네, 알겠습니다.
 
환자 머리위의 모니터. 파란빛을 내는 모니터에는 어느 새 시뮬레이터 리부팅 중 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 박세리 환자 보호자?
-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올 시간 다 됐을 텐데요.
 
딸깍!
잠시 후, 그들의 뒤로 백발의 여인이 나타났다.
 
 
 
7.
 
 
한 때는 인기 많았을 법한 갸름한 외모를 지닌 백발의 여인은 다소곳하게 앉아 검은 안경을 낀 의사와 상담 중이다.
 
- 그래도 참 대단하시네요.
- 네?
- 박세리양 기록을 보니까 음 그러니까 벌써 30년 전이네요.
- 참 오래 되었지요.
- 그러니까 30년 전에 따님이 사고를 당하신 거네요. 따님이 타신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 운전으로...
- 네 교회 수련회가는 날이었어요. 그날 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찌나 조잘거리는 지. 그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더는 말을 잇기 힘든듯 백발의 여인은 눈물을 흘렸다. 주치의는 잠시 말을 멈쳤다가 환자 기록을 살피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살펴보니 법적으로 전혀 문제 없으십니다. 따님이 식물인간이 된지 30년이 지났고요. 현행법상 식물인간이 되고 20년 안에 한 번이라도 정신이 깨어나지 못할 시 의사의 동의하에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따님이 사용하신 식물인간용 시뮬레이터도 벌써 30년전 제품이라 오류가 자주 발생해서요. 계속 이 상태를 진행했으면 시뮬레이터를 조만간 새로운 시뮬레이터를 교체했어야 했을텐데요. 그럼 비용이...
- 우리 딸은 행복했을까요? 그 시뮬레이터 안에서요?
 
주치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환자 기록을 살폈다. 그리고
- 예, 물론 제가 감히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행복했을 겁니다. 따님은 그렇니까 수학여행 가던날 그 시절 그대로 지낸거지요. 물론 어머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머님의 뇌 기록과 따님의 뇌기록을 스캔하여 얻어진 정밀한 정보로 만들어진 세상이니까요. 그 속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계속 보냈을 겁니다. 계속. 더더군다나 따님은 그 날 같이 사고를 당했던 배혜리 환자 이수지 환자와 시뮬레이터를 공유하여 사용하셨네요? 그럼 시뮬레이터 속에서 나마 친구분들하고 같이 재밌게 지냈셨을 겁니다. 음... 이수지 환자는 5년전에 먼저 안락사를 하셨군요. 그리고 배혜리 환자는..
- 혹시 우리 아이가 시뮬레이터 속 세상. 그러니까 자신이 사는 세상이 가짜라고 의심하거나 그렇진 않았을까요?
-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따님이 쓰신 시뮬레이터가 많이 구형이긴 하지만 구형이어도 따님이 조금이라도 눈치채거나하면 오류 메시지가 송출되니까요. 그러면 다시 리부팅되어서 의심하기전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지요. 염려하지 않으셔도...
- 후. 그럼 제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이지요?
- 예 여기에서 동의서 작성해주시고요. 필요한 서류는 다 가지고 오셨지요? 마지막으로 힘드시겠지만 따님의 마지막을 함께 동행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여기 '안락사' 동의서부터 작성 부탁드립니다.
 
백발의 여인은 담담하게 사인을 하고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보고 있으라는 주치의의 말.
백발의 여인은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무언가 생각난듯 뒤돌아 물어본다.
 
- 근데 아까 무슨의미였나요?
- 예? 어떤?
- 제가 대단하다고 했잖아요. 못난 어미가 무엇이 대단하다고.
- 네. 아 이런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제가 시뮬레이터 담당의를 벌써 10년 넘게 근무하다 보니까요. 이런 저런일을 많이 보게 되서요. 어머님은 그러시지 않았지만 식물인간 환자 가족 중 대부분은 법정 의무기간만 채우면 금방 동의서 쓰러 오거든요. 직계비속의 경우 20년이니까 네 20년만 되고 딱 나타나시는 가족 분도 많아서요. 안락사 동의서 쓰러오는.
- 아 그런 의미셨군요.
 
방문을 조용히 닫는 백발 여인의 입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
.
.
 
 
 
정말 우리 엄마 맞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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