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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피해를 당했을 때 적극적인 대처가 미흡했던 과거를 떠 올리며 본의 아니게 범죄자가 되어 버린 사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실화입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닥친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피하지 마세요.
한국을 떠난 지도 강산이 한 번쯤은 족히 바뀌는 시간이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 잊고 싶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저의 바보스러움과 한탄스러움에 종종 기억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저는 91학번이며, 93년 11월부터 96년 1월까지 무려 3번의 겨울과 숫자상 4년이라는 햇수(실 복무는 26개월입니다.)를 군에서 체험한 소위 [선택받지 못한 아들]입니다.
그리고 당시 거주지는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90번대 번지였으며 십여 년 가량 논현동민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논현동이라는 동네가 워낙 넓다보니 1~100 번지까지는 '논현1동', 101번지 이후로는 '논현2동'으로 행정구역상 분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려도 무안 주지 마세요. 저는 행정가가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흔히 논현동이라면 부자 동네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자릿수나 앞 번지수 대에서나 존재하지 제가 살던 190번대의 뒷 번지수는 아주 평범한 서민일 뿐입니다.
물론 꼬딱지만 한 집이라도 있다면 나름 가난한 서민은 아니겠지만, 오랜 시간을 한 동네에서 굴러먹어도 땅 한 점 없고 오로지 살아온 환경에 익숙해져 다른 곳으로 떠나지도 못하는 저로서는 적어도 강남공화국의 혜택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문제는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예비군 훈련은 제대한 해의 인원을 묶어 다음 해부터 1년차로 편제합니다.
운이 좋으면 12월 31일 제대하여 하루만 지나도 예비군 1년차가 되거나 혹은, 운이 나쁘면 1월1일 제대하여 다음 해부터 예비군 1년차가 되니 단 하루 차이로 예비군 짬밥 1년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저는 군에서 새해를 맞이한 탓에 예비군이 되려면 1년을 더 돌려야 하는 전형적인 잉여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입대하던 날은 학교 수업일수 3분의 2에 걸리는 날이라 하루만 더 늦게 입대했어도 2학기가 인정되어 제대 후 새로운 학기를 준비할 수 있었겠지만 저의 2학기는 입대 하루 차이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참 복이 지지리도 없었지요...
그렇게 어느덧 97년 11월, 저는 뉴질랜드에서 8개월째 장기체류 중이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의 소식인즉,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라고 몇 번이나 동사무소에서 다녀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무지한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달 못 해준 채 잊고 계셨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라?
저는 분명히 출국 전에 직접 동사무소 동대에 찾아가 장기부재에 대한 신고를 마치고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었을까요?
'내 신고 내용이 누락된 모양이구나.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엔 비싼 국제전화비를 부담하며 논현 제2동대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 잘 설명하고 현재 국외에 장기체류 중임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잘 처리해준다는 대답과 함께 문제는 그렇게 끝난 듯 했습니다.
IMF와 맞물린 98년 초, 금전적인 문제로 급거 귀국하였고 상황을 봐서 다시 출국하려고 준비 중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길에서 불심검문에 응할 때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공개수배 중이니 경찰서로 바로 가잡니다.
평생 처음으로 차갑고도 묵직한 은팔찌를 차보게 되는 경험도 했습니다.
다행히 학생 신분임을 확인하고는 금방 풀어주고 귀가를 시켰습니다.
제가 만일,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무직 상태였으면 어떡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인하여 동대에서 저를 고소 고발한 상황으로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입니다.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저는 동대에 신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생겼을 때 이 또한 수정하고자 성실히 노력했었습니다.
동대장과의 면담에서 이 사건은 부당하니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요청하고 또 사정했습니다.
그로 인해 출입국 사실 증명서와 같은 증빙 서류를 준비하고 장기 해외체류로 인한 [당해년도 예비군 훈련 면제대상]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동대장이라는 사람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취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고소를 취하하게 되면 본인의 진급에 불리한 점이 무엇이고 불이익에 대한 걱정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결론은 제가 즉결심판으로 벌금 몇 만원만 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종내는 그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려지는 행정적 처분을 고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걱정하고 또 연예인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아버지뻘 되는 동대장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그것이 또 가정에 영향을 미치고 또 일 처리가 미숙한 공익이나 상근 예비역에게 내려질 무거운 처분......
게다가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출국해야 하는 문제들......
며칠 뒤 법원에 출두하여 벌금10만원을 얻어맞았습니다. (몇 만원이면 된다며? ㅠㅠ)
제 뜻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묻어 버리기로 했습니다.
추가로 전과 기록은 남지 않되 10년동안 경찰데이터에 저의 병역기피 사건(?)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행불상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저는 이 일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왜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어야만 했나!]
그 때 당당하게 '나의 결백'을 주장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깊은 회한의 한숨이 밀려옵니다.
다시는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할 지언정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면 결단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봅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논현 제2동 동대장.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주지 말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