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TV 뉴스에서 서해 5도에 주민대피령이 내렸다는 소식과 함께 주민들이 대피하는 모습이 나올 때였다.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마 서울에 대피령 떨어져도 사람들은 '그러시든가' 하고 있을걸. '북한이 절대로 전쟁하지 않을 것', '그런 일 있겠어?' 하면서."
희한한 나라다. 제 땅덩어리에 폭탄이 떨어졌는데도, '동요'가 크지 않다. 아침에 큰 낙폭을 보인 주식시장은 오후 들면서 바로 회복세를 보였고, 인천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극장에서도 관객 수에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확신, 우리 국방력에 대한 믿음,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힘에 대한 확신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그저 개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바람보다도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는' 민초들이 공포에 떨며 눕기 시작한다면, 그야말로 나라가 '공포의 도가니'가 되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낙관과 태만한 상황 인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남이 제 살점을 베어가는데도, 손발이 잘리고 있는데도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건 낙관이 아니라, 태만이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권은 태만도 아니고 고의적 파업을 벌인다. 23일 북한 공격이 전해진 후, 연합뉴스에는 '여야, 北 포격에 충격… 도발중단 한목소리 촉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전혀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민주당의 반응은 이랬다. "북한의 도발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민주당은 어떤 경우든 무력 도발행위와 비인도적 행위에 반대한다." 반대한다? 우리 군인이 죽고 민가(民家)가 박살이 나 불바다가 되는데, 그런 행위에 '반대한다'는 게 고작이었다. '반대한다'는 '자율고 확대에 반대한다' '무상급식 축소에 반대한다' 같은 맥락에서나 나오는 말이지, 포탄이 떨어져 제 나라 국민이 피 흘리고 죽는데 나올 말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잘나고 고급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이제 제1야당, 민주당은 인격자들의 집합체다. 그러면 이 민주당이 언제나 그렇게 성자(聖者)같은 말을 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자기네 당 의원들이 체포되자 당 대표는 의원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 권력으로 죽일 때, 그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손이 됐다", "저들의 비열함을 용서하지 말자, 한몸이 돼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살인행위·전쟁행위엔 점잖게 '반대'하고, 돈 받은 혐의를 받는 제 당 의원 옹호에는 비분강개한다.
이 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4시 30분 긴급 최고위원회회의 도중,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북한 민간 시설 포격 규탄. 즉각 중단 촉구하며 정부 확전하지 말고 민간인 피해방지 및 대책 강구할 것 촉구합니다." 이 글로 유추한다면,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화두는 국민의 생명권 보장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이명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대통령 역시 '확전하지 말라'는 발언의 진위 논란에 휩싸였었다. 용기·의지·책임감… 이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슨 다른 계산이 있었을까. 아이에게 이 일들을 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