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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자작 소설 올려봅니다.
게시물ID : readers_97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맛사
추천 : 3
조회수 : 3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1/04 10:29:21

친구가 '남자가 투신했다'라는 주제로 단편을 써봐라! 라고 과제를 던져줘 써 봤습니다 ㅎㅎ 역시 단편은 재밌어요...

좀 짧은 감이 있긴 하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  *  *


남자는 투신했다.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은 마치 영원처럼 그의 망막에 새겨져간다. 위와 아래가 뒤집혀, 하늘에 땅이 있고 땅에 하늘이 있는 시계(視界). 하늘위 땅에 자동차가 달리고, 땅에 위치한 하늘 안에서 날갯짓하는 새들의 수 조차도 헤아릴 수 있을 듯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갔다.


이윽고 위아래 뿐만 아니라 앞뒤도 뒤집혀, 과거와 미래가 자리를 맞바꾼다. 떨어지고 있던 현재는 어느샌가 모습을 감추고, 떨어져 갈 미래는 마치 옛날 일처럼 느껴지며, 그의 앞으로 과거가 펼쳐진다. 자살을 결심했던 기억. 아무도 자신을 잡아주지 않았던 기억.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던 기억. 너무나도 힘들었던 기억. 몸과 함께 그의 기억도 점점 깊은 곳으로 떨어져간다.


날 그렇게 쪼아대던 그 상사, 두 다리 뻗고 자고 있을까. 내가 죽으면 그 얼굴 한 번 볼만 하겠다. 요전에 대판 싸웠었으니, 녀석은 내 비보를 듣고 평생 찝찝히 살아갈 테다. 그러게 애초부터 잘 했어야지. 내가 이러고 있는 건 네 탓도 있으니 말야. 놈이 어깨에 평생을 이고 갈 그 책임과 부담을 상상하니 통쾌하면서도 어째선지 가슴이 아릿하게 느껴졌다. 희한한 웃음을 살며시 띄우자니 바로 기억은 다음 상대를 향했다.


그래, 중학교 때 옆 자리조차 앉지 못했던 그 첫사랑의 얼굴로. 말도 변변찮게 붙이지 못하고, 손을 잡기는 커녕 눈도 몇 번 마주쳐 본 적 없던 그 여자아이의 바알갛던 얼굴이 떠오른다. 이렇게 허무하게 갈 바에야, 얼마 전 만났을 때 고백이라도 할 것을. 사실 난 널 좋아했어, 라고. 언젠가 자리를 바꿔 네 뒷자리에 앉았을 때, 심장이 너무 뛰어서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고 말해볼 것을. 그 풋풋했던 감정이 서서히 피어오르며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갔다.


아, 어머니. 죄송합니다. 당신의 아들은 그렇게 강하지가 못했나 봅니다. 모진 세상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혼자 바득히 살기에는 너무나도 큰 곳이였나 봅니다. 한 명, 한 명이라도 제 편이 되어줬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도요.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서 제 편을 들어줬다면 말입니다. 제 편이 한 명도 없는 세상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기억은 그렇게 짧은, 그래서 자세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 비추고는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제 막 달리기를 떼어 무릎이 까져가면서도 바보같이 웃던 그 시절, 수학문제를 못 풀어 혼난 뒤 몇 번이나 베게를 적셨던 그 시절, 좋아한단 말을 못해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던 그 시절, 친구가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시절, 세상 만사가 모두 내 적이 된 듯 했던 그 시절, 낙심했을 때 아무도 손을 뻗어주지 않았던 그 때, 빌딩 건물에서 눈물조차 말라 건조한 눈빛으로 여명을 바라봤던 그 순간, 그리고 그 빌딩에서 떨어지는 지금.


그제서야 위와 아래, 앞과 뒤는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급하게 원래의 형(形)을 취했고, 순간이 영원이듯, 영원은 순간으로 다시 탈바꿈해 간다. 그리고 남자는 생각했다.


'살고싶다.'


콰득.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며 남자였던 물체는 새빨간 흔적을 땅 위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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