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의 야구인] 8년이 걸린 ‘두산 유격수 김재호’ 기사입력 2015.06.22 오후 04:50 최종수정 2015.06.22 오후 05:03 637폰트 작게 폰트 크게 그라운드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두산 유격수 김재호(사진=두산)
# 김재호. 두산 유격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8년. 기자는 한 방송사에서 김재호와 처음 말문을 텄다. 이전에도 구장에서 김재호를 보긴 봤다. 그러나 가벼운 인사를 나눌 정도였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었다. 방송사의 한 연말 프로그램에서 김재호를 봤을 때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두산 선수 김재호입니다.”
그의 소개는 증언대에 선 사람처럼 짧고 명확했다. 그는 방송 때도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언뜻 들으면 이상할 게 없는 소개였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와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선수들은 대개 ‘두산 유격수 김재호입니다’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름 앞에 포지션을 언급하게 마련이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두산 선수 김재호입니다’는 당시 김재호의 팀 내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소개일지 몰랐다. 이유가 있었다. 그해 김재호는 오랜 기다림 끝에 112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2004년 두산 입단 후 2007년까지 2군과 상무에서 활약한 김재호는 어떻게든 2008시즌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다행히 이해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김재호는 261타수 65안타 타율 .249, 출루율 .318, 장타율 .330, 1홈런, 21타점, 12도루로 나름 분전했다. 물론 200타석 이상 유격수로 출전한 KBO리그 선수 9명 가운데 김재호의 타격 성적이 논 온밭의 까마귀처럼 대단히 돋보이는 건 아니었다. 도루를 제외한 다른 타격 부문은 전부 리그 유격수 중하위권 수준이었다.
여기다 같은 팀 유격수던 이대수가 타율 .284, 출루율 .341, 장타율 .373, 1홈런, 22타점으로 선전하며 김재호의 활약은 더 빛을 내지 못했다. 실제로 이해 대중이 더 주목한 두산 유격수는 김재호보단 이대수였다. 무엇보다 김재호는 손시헌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입대 전까지 두산 주전 유격수로 뛰던 손시헌은 군 복무를 마치고 2009시즌부터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었다.
‘덜 알려진 이름’과 ‘확실하지 않은 주전 자리’ 그리고 ‘돌아올 강력한 포지션 경쟁자’가 더해지며 아마도 김재호는 본인을 자신 있게 ‘두산 유격수 김재호입니다’라고 소개하기 어려웠으리라. 당시 김재호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환한 미소 속에 감춰진 ‘2인자의 아픔과 설움’ 같은 걸 느낀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재생 0:37 일반화질 고화질 HD화질 # 2009년.
손시헌이 두산 주전 유격수 자리로 돌아오자 김재호의 팀 내 입지는 ‘확’ 줄었다. 그는 2012년까지 4년 동안 손시헌의 백업 유격수로 활약했고, 이 4년 동안 한 번도 200타수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김재호를 가리켜 “수비는 좋으나 타격은 시원찮은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라 부르며 “손시헌이 버티고 있는 한 김재호가 주전 유격수가 되는 건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야구전문가들 가운덴 그의 표정을 보며 ‘투쟁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당시 한 야구해설가는 “김재호는 허슬 플레이를 해도 ‘실실’ 실책을 범해도 ‘실실’ 안타를 쳐도 ‘실실’ 삼진을 당해도 ‘실실’된다. 직업야구선수라면 그라운드에서 지금보다 더 엄격한 표정으로 플레이할 필요가 있다”며 강한 어조로 ‘스마일맨’ 김재호의 변화를 촉구했다. 당시 한 두산 코치 역시 “실책을 범하거나 삼진을 당했을 때 좀 분하고, 억울하단 표정이 있어야 하는데 (김)재호는 그때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재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자칫 ‘저 친구 왜 저렇게 건방져’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2013년이다. 그해 김재호는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경기와 타석에 등장했다. 타격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데다(그해 그의 타율은 .315였다) 손시헌의 부진이 겹치며 출전 경기수가 많아진 덕분이었다. 당연한 이유로 많은 이가 포스트 시즌에서도 김재호가 맹활약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선 타격 부진으로 손시헌이 더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김재호는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다 2차전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다. 주전 3루수 이원석과 2루수 오재원이 연달아 부상으로 쓰러진 까닭이었다. 김재호는 5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표정과는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김재호는 “동료 선수들이 멀쩡한 상태라면 제가 출전하는 게 기쁠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당연히 기쁠 리가 없죠. 그저 두 선수 공백을 최선을 다해 메워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김재호는 부상으로 쓰러진 오재원을 언급하다가 “(오)재원 이형이랑 꼭 한국시리즈 반지를 함께 끼기로 약속했는데…”하며 길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물론 이때도 김재호의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김재호의 이야기를 저 멀리서 그의 표정만 보고 판단한다면 또 한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당시 구장에 있던 한 야구인은 김재호를 바라보며 “프로야구에서 누군가의 슬픔은 누군가에겐 기회다. 쟤 봐라. 저렇게 좋아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미소 속에 숨겨진 그의 중압감과 동료애를. 김재호는 자신의 약속대로 동료들의 공백을 메우고자 수비에서 맹활약했다. 비록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패했지만, 많은 야구인은 김재호의 명수비를 보며 ‘손시헌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올 시즌 타격에서도 눈을 뜬 김재호. 그는 올 시즌 6월 22일 기준 KBO리그 유격수 부문 타율 1위, 출루율 1위, 장타율 2위, 타점 2위를 달리고 있다 (
사진=두산) #
2014년 김재호는 프로 데뷔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다. 출전 경기수도 늘어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22경기에 출전했다. 주전 유격수 손시헌마저 NC로 떠난 터라, 김재호는 부담이 덜한 상황에서 장기레이스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타격 성적은 2013년보단 좋지 않았다. 손목부상과 체력저하가 문제였다. 2015시즌을 맞아 김재호는 전해의 경험을 교훈 삼아 ‘체력 강화’에 몰두했다. 스프링캠프에선 누구보다 체력훈련에 집중했고, 시즌이 시작했을 땐 철저한 몸 관리로 체력 유지에 신경 썼다.
그런 노력이 주효한 것일까. 김재호는 올 시즌 60경기에 출전해 타율 .330 출루율 .403 장타율 .436 1홈런 30타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김재호에게도 위기가 있었으니 바로 6월 초였다. 6월 3일부터 13일까지 김재호는 9경기에서 21타수 4안타 타율 .190으로 부진했다. 당시 구장에서 만난 김재호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종아리가 아파 죽겠어요. 정말 힘듭니다”라고 털어놨다.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표정과 말이 잘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의 표정만 보자면 슬럼프에 전혀 기죽지 않은 기개가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파 죽겠다’와 ‘정말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재호는 5월 말 경기에서 자신이 때린 타구에 맞아 종아리를 맞은 뒤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 수비 시에도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환한 표정으로 플레이했고, 그로 인해 그의 고통은 사소한 두통 정도로 격하됐다.
당시 기자가 “아프면 푹 쉬고,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 묻자 김재호는 “이 정도 고통은 어느 선수가 안고 있는 것”이라며 “정신없이 뛰다 보면 아픈지도 몰라요”하고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었다. 기자가 2008년부터 지켜본 김재호는 그런 선수였다. 매사 부정적인 생각보단 긍정적인 생각으로, ‘안 된다’는 좌절감보단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왜 나에게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하는 원망보단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준비의식이 더 돋보이는 선수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재호는 내년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는 셈이다. 그러나 김재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FA를 ‘반드시 손에 쥐어야할 일생일대의 대박’보단 ‘열심히 뛰다 보면 부차적으로 찾아오는 선물’쯤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자가 만나본 선수 가운데 ‘FA’에 가장 초연한 선수가 있다면 그건 바로 김재호일지 모른다. 내년 시즌까지 뛰면 FA자격을 취득하는 김재호. 하지만 그는 대형계약보다 현재 그라운드에서 동료,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걸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선수다
(사진=두산)
그도 그럴 게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하루 경기에 출전해 동료,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걸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선수다. “저 보고 ‘왜 실책해도 웃고, 삼진 먹어도 웃느냐’고 따진 분이 많으세요. 프로 초년생일 땐 그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반성을 많이 했어요. 자꾸 웃어서 반성한 게 아니라 실력도 안 되는 선수가 웃으면 저라도 좋게 보이진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경기에 나갈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요. 그러면서 속으려 결심했죠.
‘내가 지금보다 잘하면 더 환하게 웃으면서 뛰겠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음, 전 야구장을 찾는 분들이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시려고 온다고 생각해요. 선수인 제가 그분들께 해드려야 하는 것도 즐거움과 편안함이라고 봐요. 들으면 비웃으실 수도 있지만. 전 그라운드에서 ‘행복 바이러스’를 뿌리고 싶습니다. 제 미소와 제 표정을 보면서 많은 분이 좀 더 행복해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실책하고, 삼진당했을 때도 웃으면 안 되겠지만, 그건 제 천성이라(웃음).
전 그래요. FA가 언제가 되든 두산 유니폼을 입고 뛰는 날까진 팬분들이 우리 팀과 저를 보며 용기와 희망 그리고 즐거움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예전엔 멋쩍어서 미소가 나왔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넘쳐서 미소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당당하고, 늘 평상심을 유지해야 그걸 보는 팀과 팬 모두 안정감을 느끼실 테니까요.“
김재호가 가장 환한 표정을 짓고 싶은 순간은 단연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때다. 김재호는 “그땐 아껴둔 모든 미소를 방출해볼 생각”이라며 “팬들과 함께 꼭 한번은 우승 기분을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8년 전 김재호는 자신을 ‘두산 선수 김재호’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이가 그를 가리켜 ‘두산 유격수 김재호’라고 부른다. 그리고 올 시즌 6월 22일까지 성적만 본다면 그는 KBO리그 유격수 가운데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5시즌 6월 22일까지 KBO리그 유격수 타율 및 각종 타격 성적(기준 100타석 이상)(그래픽=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야구와 인생은 끝을 알 수 없는 드라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야구와 인생에서 ‘스톱워치’란 없다. ‘그만둬야 할 이유’보다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고, 그 찾은 이유를 바탕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다 보면 김재호처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이 김재호가 우리에게 그토록 주고 싶어하는 '긍정적 메시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