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오직 팀 전체를 위해 자신의 100% 이상을 바칠 수 있는 선수들이야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지난 1995년 당시 퍼거슨 감독은 팀의 주축 멤버였던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폴 인스, 마크 휴즈를 한꺼번에 방출하는 충격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고, 이는 지난 10여년 동안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혁명'이었음이 분명했다. 이러한 퍼거슨 감독의 결단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 '뉴 제너레이션'을 앞세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95/96, 96/97, 98/99, 99/00, 00/01 시즌 프리미어쉽 우승, 95/96, 98/99 시즌 FA컵 우승, 98/99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해내며 클럽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지난 2003년 여름에도 퍼거슨 감독은 세계적인 미드필더들인 데이빗 베컴과 후안 세바스찬 베론을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로 방출, 제 2의 도약을 기대하던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02/03 시즌 도중 데이빗 베컴과의 '축구화 사건'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놓여지기도 했던 퍼거슨 감독은 유나이티드 팀 전체를 위해서라면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라도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매우 유명하다. 물론, '팀 전체를 위한 것'의 기준이 퍼거슨 감독 개인의 주관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유나이티드는 그 퍼거슨 감독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잉글랜드 최고의 팀이라는 명성을 유지해왔다.
데이빗 베컴이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제거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퍼거슨 감독은 점점 짙어져만 가는 베컴의 헐리웃 스타적 향기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빅토리아 아담스와의 결혼 이후 축구 외적인 측면에도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한 베컴으로부터 과거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킥을 차기 위해' 해질녘까지 연습에만 몰두했던 '전사'로서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러한 퍼거슨 감독의 잠재된 불만은 베컴이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팀 훈련에 불참했을 때 절정에 달했고, 결국 베컴은 '축구화 사건'을 계기로 정든 친정팀과 이별을 고해야 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의 생각과는 달리 베컴의 관심이 여러 방면으로 흩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유나이티드를 향한 '충성심' 만큼은 변치 않았다고 주장하는 팬들도 많았다.)
후안 세바스찬 베론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퍼거슨 감독은 베론이 여전히 유나이티드를 위해 땀흘리는 '훌륭한 전사'임을 강조해왔고, 베론이 갖고 있는 축구적인 상상력 및 창조성이 팀 전체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지난 두 시즌 동안 일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베론은 퍼거슨 감독으로 하여금 100% 믿음을 느낄 수 없게끔 만들었고, 결국 퍼거슨 감독은 베론을 베컴과 함께 고액의 이적료에 방출시킴으로써 미래를 위한 금전적 여유를 충전하는 쪽을 선택한다.
킨과 긱스가 점점 하향세를 면치 못함에 따라 과거와 같은 미드필드에서의 '패싱게임'만으로는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등을 당해낼 수 없다고 느낀 퍼거슨 감독은 루드 반 니스텔로이를 중심으로 하는 '역동성 넘치는 축구'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팀을 완성시키려 했고, 베컴과 베론은 분명 상대적으로 그 '역동성'을 결여하고 있는 스타일의 소유자들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지칠 줄 모르는 무브먼트의 루드 반 니스텔로이와 함께 상대 수비를 크게 흔들어놓을 수 있는 '다이나믹 3인방'으로 하여금 베컴과 베론의 자리를 대체하려 했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과 같은 라이벌 클럽을 물리치기 위한 퍼거슨 감독의 새로운 전술적 해답이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는 그 '다이나믹 3인방'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문제에 봉착했다. 당초 1000만 파운드 정도의 이적료에 영입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였던 1호 타겟 호나우딩요가 파리 생제르망의 '옥션 작전'에 의해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던 것. 당시 호나우딩요는 레알 마드리드의 잠재적인 갈락티코로 언급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레알이 "2003년에는 데이빗 베컴, 2004년에는 호나우딩요" 라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파리 생제르망이 협상의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잠재적 구매자'를 확보해놓은 파리 생제르망으로서는 호나우딩요의 방출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고,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에 3000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파리 생제르망의 '옥션 작전'에 걸려들리 만무했던 유나이티드는 이적시장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고, 파리 생제르망으로서는 어떻게든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다른 클럽들이 호나우딩요를 원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대중들에 각인시켜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나이티드에겐 불리함을, 파리 생제르망에겐 유리함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아스>, <마르카>, <엘 문도 데포르티보>와 같은 스페인의 지역신문들이었다.
마드리드 지역의 <아스>와 <마르카>는 곧 "호나우딩요가 호나우두, 라울과 함께 '3R'을 이룰 것이다" 라며 특종 기사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미 베컴의 영입에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쏟아부은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어떻게든 호나우딩요를 파리 생제르망에 묶어두길 원했고, <마르카>와 <아스>가 마치 레알의 손·발과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당시 "2000만 파운드 이상은 도저히 투자할 수 없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서는 점점 불리한 입장에 놓여질 수 밖에 없었고, 파리 생제르망은 계속해서 "3000만 파운드 이상" 을 주장하며 '고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파리 생제르망의 '옥션 작전'에 불을 지핀 것이 바로 또 다른 스페인의 거함 바르셀로나였다. 당시 데이빗 베컴의 영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새로운 회장으로 당선되었던 호안 라포르타 신임 회장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 베컴을 빼앗김에 따라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인물. 이미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의 브라질 출신 스타들과 함께 커다란 성공을 경험했던 전례를 감안해 본다면 '새로운 삼바 에이스' 호나우딩요는 바르셀로나에게 있어 여러모로 매력적인 대상이었음이 분명했다.
바르셀로나의 '호나우딩요 전쟁' 가담과 함께 유나이티드는 점점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미 데이빗 베컴을 향해 '한 방'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바르셀로나 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파리 생제르망과의 협상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 마치 3000만 파운드라도 기꺼이 배팅할 것처럼 보였던 바르셀로나의 기세는 유나이티드로 하여금 호나우딩요의 영입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현실적 구매자를 잃은 파리 생제르망은 결국 2100만 파운드 가량의 이적료에 호나우딩요를 바르셀로나에게 넘겨주는 길을 선택했다.
이후 퍼거슨 감독은 85년생 듀오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와 웨인 루니를 차례로 안착시키며 반 니스텔로이의 '보좌관'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지만, 아르옌 로벤의 영입실패는 유나이티드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법하다. 결과적으로 4-2-3-1에서 '3'의 한 자리를 끝끝내 채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라이벌 클럽 첼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로벤이 프리미어쉽 입성 이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에서다. 또한 로이 킨과 베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젬바젬바, 클레베르손 등이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여주면서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드 라인은 눈에 띄게 무게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퍼거슨 감독은 04/05 시즌 들어 전술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4-2-3-1은 여러모로 유나이티드의 여건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04/05 시즌 내내 반 니스텔로이가 부상에 신음했을 뿐 아니라, 호나우두, 루니와 함께 '3'에 위치할만한 선수가 베테랑 긱스 이외에는 마땅치가 않았고, 무엇보다도 '2'의 자리에 포진하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로이 킨은 시즌 내내 최고의 레벨에서 활약하기엔 이미 고령의 선수가 되어 있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3'의 자리에 위치하는 공격자원 한 명을 벤치로 내리는 대신, 로이 킨, 스콜스 등과 함께 중원 장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미드필더를 포진시킴으로써 팀 전체의 밸런스를 회복하려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회를 부여받은 인물이 바로 '4-3-3의 수혜자' 대런 플레처다.
퍼거슨 감독은 여전히 4-2-3-1을 가동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나이티드의 4-2-3-1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와 함께 양날개를 휘저을 수 있는 또 한 명의 '와이드맨', 그리고 로이 킨의 역할을 대신할만한 중앙 미드필더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방의 측면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정통파 윙어의 희소성이 증가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서 퍼거슨 감독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수준의 선수를 싼 값에 영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미 비센테 로드리게스(발렌시아), 호아킨 산체스(레알 베티스) 등이 유나이티드의 레이더에 포착된 바 있지만 이들의 영입을 위해서는 최소 2000만 파운드 이상의 천문학적인 이적료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1000만 파운드를 상회하는 수준에 영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아르옌 로벤의 경우가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말콤 글레이저의 입성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겐 '2500만 파운드'라는 이적료 지출의 한계선이 주어져 있으며, 이는 곧 유나이티드에게 있어 비센테 로드리게스, 호아킨 산체스, 미카엘 에시앙과 같은 '빅 사이닝'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핸디캡을 안고 여름 이적시장을 준비하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저가격 고성능'의 효율적인 영입대상을 꾸준히 물색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레이더에 포착된 인물이 바로 PSV 아인트호벤의 태극전사 박지성이었다. 04/05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박지성은 대런 플레처, 폴 스콜스 등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와 라이언 긱스의 윙어 역할까지 소화가 가능해 퍼거슨 감독에게 여러모로 커다란 매력을 느끼게끔 만든다.
또한 박지성은 '제 2의 가브리엘 에인세'가 될 수 있을만한 잠재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잉글랜드의 팬들은 남다른 투지와 활동량을 보여주는 충성심 높은 용병을 매우 사랑한다. 에인세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정교함이 부족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니는 '폭주기관차'일 뿐 아니라, 언제나 소속팀을 향해 높은 수준의 투쟁심과 충성심을 발휘하는 '유나이티드 맨'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선수다. 퍼거슨 감독 역시 에인세와 같은 선수들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있기에 박지성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올드 트래포드 팬들로부터,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그리고 팀 동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나이티드 팬들은 과거 호나우딩요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놓고 저울질 했을 때 각종 포럼을 통해 "호나우딩요가 아무리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충성심이 부족한 용병을 원하지 않는다" 라며 그 무엇보다도 '팀 스피릿'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꿈꿔왔습니다", "은퇴할 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라며 일종의 상투적 멘트를 날리는 용병들보다도, 오직 그라운드 위에서의 거침 없는 움직임과 정열적인 플레이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전사' 박지성이야말로 팬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우리에겐 박지성이 있기에 호나우딩요가 아쉽지 않아" 라고 노래하게 될 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