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오늘 저랑 밥 먹을래요?] 야구장에서 사회를 보던시절, 이승엽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넸다. 이처럼 정겹게 들리는 말이 또 있을까. 하물며 늘 배가 고프던 시절의 나였으니... [사회를 재미있게 보시더라고요.] 그 말에 내가 먼저 구부정한 어깨로 손을 내밀었는지, 그가 먼저 악수를 청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날 밥은 아주 따뜻했고, 그날 부터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형, 내 결혼식 사회 좀 봐 줘요.] 그가 주위에 있는 쟁쟁한 스타들 대신 나를 찾아와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을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할까 싶었지만 결국 나는 수락했다. 이유는 딱 하나, 나만큼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사람은 없으리라는 자신감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네 시가 넘은시간, 그가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토크쇼에서 결혼을 앞둔 심경과 상황을 셀프카메라로 미리 찍는데 이 기회에 나를 방송에 데뷔시켜 주겠다는 생각으로, 그 새벽 서울에서 대구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찍힌 부분은 방송에서 모조리 편집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일, 하지만 그는 토크쇼 방송 날, 내 앞에서 울었다. '알아본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구 구장, 그 복잡한 곳에서 구부정한 어깨로 사람들 틈에 묻혀있던 키 작은 나를, 그는 알아봐 주었다. 비단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내 재능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자신이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줄 수 있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런 것을 알아본 것이다. 우리가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봐 준 것이다. 나는 이미 그에게 갚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받았지만 지금부터라도 그에게 뭔가를 꼭 해 주고싶다. 혹시라도 추운 겨울 그가 야구방망이를 잡아야 한다면 내가 그 방망이를 미리 품어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일, 소보로 빵의 뚜껑만 먹고 싶다면 그러라 하고 남은 부분은 내가 먹어주는 일 일주일쯤 웃을 일이 없었다 하면 기꺼이 내 안경을 벗어 웃게 해 주는 일... 그래, 나는 그런 것들을 그에게 해 주고 싶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수 있는 일, 형이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가족이 해 줄 수 있는 일들을. - 김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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