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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에 위치한 오래 된 원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원룸에는 유독 대학생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 중 같은 동향(同鄕)이라는 이유로 태우라는 녀석과 유독 친했다.
더욱이 바이러스 가득한 컴퓨터를 말끔하게 고쳐줘서
급한 업무를 처리 할 수 있었던 나는 태우를 친동생처럼 생각했다.
어느 날 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들어왔다.
당장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깠다.
쉬지도 않고 그것을 벌컥벌컥 마시고 침대에 누워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현관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십니까?”
문 밖에서 태우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문을 열어주자 녀석은 귀신이라도 본 듯 온 몸을 떨고 있었다.
호흡도 불안정하고 동공이 심하게 요동치는데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진정 시키기 위해 물 한잔을 건네었다.
녀석은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심호흡을 했다.
사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떨리는 손을 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태우야, 무슨 일 있나? 안 좋은 일 생긴거가?”
녀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까지 더듬으며
죽은 누나에게 방금 전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태우의 누나는 3년 전에 자살을 했다.
그런 누나를 잊지 못해서 번호를 지우지 않았는데
무려 3년 만에 죽은 누나로부터 전화가 와서 무서웠다고 했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혹시 술이라도 마시고 헛소리를 하나? 또는 새끼... 혹시 약에 손댄 것은 아닐까?
온갖 걱정과 잡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태우는 대뜸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하더니 통화내역을 보여줬다.
통화내역에는 ‘누나’라고 적힌 글자가 또렷하게 표기되어 있었고
시간도 조금 전이 틀림었다.
그래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면 다시 전화를 걸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전화기를 뺏어서 걸었는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
그제야 정신이 번쩍하고 들며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누나’라고 저장 된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 틀림없었고
심지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였다.
뒷목이 뻐근해지면서 나 또한 귀신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태우의 누나였다.
태우는 경악을 하며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심 때문에 내가 그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수화기 속에서 이명을 일으킬 정도로 잡음이 심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을 걸고 있었다.
통화음을 최대로 올리고 전파음 같은 것을 참아 내며 목소리에 집중했다.
“치지지직... 삐이이잉... 저.. 저는... 자.. 자살.. 하지.. 치지직... 삐이이이잉...
자.. 자살하지 않았... 어.. 요.. 치지지직... 삐이잉...
저... 저..를 .... 치지직... 저를 죽인 건... 다름 아닌... 치지직... 동생이에요...”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태우라는 것을 말이다. 순식간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태우에게 보이기 싫어서
기계음만 들린다며 푸념하는 척 전화를 끊어버렸다.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졌다.
겨우 믿거나말거나 하는 부류의 귀신인지 뭔지도 모를 말을 듣고
녀석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불안해하는 녀석을 뒤로하고 출근을 핑계로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혼자 잡생각을 하다가 그냥 자버렸다.
이후 자연스럽게 녀석과 멀어졌는데,
집 계약이 다되었기도 하고 회사도 그만둬버려서 나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한 때는 형님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간다는 말도 못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내 머릿속 쟁점은...
'정말 녀석이 자신의 누나를 죽였을까?' 하는 의심이다.
과연 귀신의 말만 듣고 태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나는 믿었던 것 일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증거가 될 수 없는데 말이다...
의심 完
PS : 설녀 4부는 지금 쓰고 있긴 합니다 ㅎㅎㅎ 또 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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