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갓집은 어느 산기슭 온천 마을에 있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산인데, 온천에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하이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길이 깔린 곳은 어린아이 혼자서도 어렵잖게 다닐 정도지만,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포장조차 안되어 있죠.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짐승이나 다닐법한 산길이 숲속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갓집에 놀러왔던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어느날, 내가 강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길 옆에 오래된 사당이 덩그러니 하나 있는 게 보였습니다.
멋대로 자라난 풀들에 뒤덮여, 지금이라도 썩어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사당 안에는 작은 지장보살님이 한분, 자리를 틀고 앉아계셨습니다.
이끼로 뒤덮여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지갑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지장보살님 발밑에 바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딱히 믿음 같은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주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재밌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그날 역시, 손을 모아 무언가를 빌지도 않고 돈만 놓아둔채 자리를 떠나려 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내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손을 잡고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분 뿐이었겠지요.
거기에는 나밖에 없었으니.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할아버지는 무시하고 부엌으로 쪼르르 갔습니다.
그리고는 식사 준비를 하던 할머니에게 슬쩍 산 속 사당에 관해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소부터 그 사당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었거든요.
엄한 할아버지에게 사당에 갔다는 걸 들키면 한참 동안 설교를 들을 게 뻔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산에 갔다는 걸 혼내지 않고, 깔깔 웃으며 사당의 유래에 관해 말해주셨습니다.
옛날, 하지만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고, 막 전쟁이 끝났을 무렵.
아직 제대로 길도 닦이지 않은 산속에서 한 여자아이가 실종됐답니다.
산기슭 마을에서 어른들이 나서서 산을 수색했지만, 결국 여자아이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산신님 전설이 내려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는 분명 하느님 눈에 들어 이 산의 산신님이 된 걸게야. 앞으로 우리를 지켜줄걸세.] 라며, 여자의 부모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또 그 산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남자아이가 두 명.
그 중 한명은 무사히 산을 내려와 발견되었지만, 다른 한명은 골짜기 물에 떠내려가 하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살아난 아이 말하길, 길을 잃고 벼랑 근처를 헤매다 서로 누군가에게 손을 잡혔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아이는 골짜기 반대편으로 잡아당겨졌습니다.
하지만 죽고 만 다른 아이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끌려가듯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골짜기로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습니다.
전날까지 비가 내렸으니 지반이 약해져 무너져서 실족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말을 믿었습니다.
살아남은 남자아이 오른손목에, 손자국이 하나 선명하게 남아있었으니까요.
마치 누군가 온힘을 다해 잡았던 것 같은 손자국이...
그리고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산에 갔다 아이가 발을 헛디뎌 벼랑에 떨어지거나 물살에 휩쓸리고, 끝내 목숨을 잃고 마는 사고가요.
다들 죽은 것은 아니고, 산 속을 헤매다 무사히 돌아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같은 말을 하더랍니다.
[산 속을 걷다가 누군가한테 손을 잡혔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오른손목에는 으레 손자국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맨 처음 사라졌던 여자아이의 저주는 아닐까?]
마을에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소문이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민 끝에 처음 희생자가 나왔던 절벽 근처에 작은 사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장보살님을 모셔 원한을 달래려고 했죠.
[그렇지만 아직도 원한은 남아있을거야. 지금도 나쁜 아이가 있으면 손을 붙잡고 산으로 데려간단다?"
할머니는 익살스럽게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무서워서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사당에 관해 물었을 뿐, 누가 내 손을 잡았다고는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기분이 나쁜 탓인지, 주변이 이상하게 조용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써 겁에 질린 것을 숨기고 태연한 척 했습니다.
[그 후 누가 끌려간 적 있었어?] 라던가, [끌려간 아이들은 나쁜 아이들이었어?] 라고 끈질기게 할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오늘 밤 연회에 와서 큰아버지한테 물어보려무나. 너희 큰아버지는 옛날 산에서 손을 잡힌 적이 있으니까.]
그날 밤.
친척들이 모두 모인 연회니, 큰아버지도 오셨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들은대로, 큰아버지에게 "손을 잡혔던 것" 에 관해 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게 잘못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그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지, 정말 구성지고 무섭게 이야기를 풀어놓았거든요.
[알겠냐. 저 사당에 가까이 가면 안돼. 저 산에서 조난당한 여자랑, 그 여자한테 잡혀간 아이들의 저주를 받는단 말이다. 다들 네 손을 꽉 잡고 산까지 끌고가서는, 죽은 아이들한테 둘러싸일거야. 그리고 결국 너도 그 아이들의 동료가 되고 마는거지. 산에서 도망친대도 소용 없어. 그놈들은 네가 잘 때 몰래 다가와서 널 잡아갈테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 산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려는 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도 무서운 나머지, 저는 불이 환한 연회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어머니는 [이제 가서 자렴.] 하며 저를 잠자리로 이끄셨습니다.
나는 혼자 침실로 쓰던 방에 들어갔습니다.
외갓집은 지역에서 소문난 명가라, 집도 대궐 같이 넓습니다.
저택에는 연회 때 취한 손님들을 재우기 위한 방도 여럿 있는데, 내가 침실로 쓰는 방도 그런 방 중 하나였습니다.
평소에는 넓은 방을 혼자 독점하는 게 즐거웠지만, 겁에 질리고 나는 그것마저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복도로 이어지는 문을 모두 닫았습니다.
그리고 불을 켜 둔채 할머니가 깔아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문득 나는 눈을 떴습니다.
집 안은 고요하고 인기척 하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연회가 끝나고 다들 잠자리에 든 모양입니다.
평소라면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누가 깨어서 시끄럽게 소리라도 내지 않는 한 말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다들 자고 있는 조용한 집 안에서, 소리를 낼 사람 같은건...
[끼익...]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아마 미닫이문 너머, 마루를 지나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거겠죠.
누군가 걸어오듯,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였습니다.
부모님이나 다른 친척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집의 화장실은 배수 설비 문제로 모두 집 북쪽이나 서쪽에 있었으니까요.
내가 있는 침실은 집 동쪽입니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맨끝.
누구도 이 새벽에 복도를 지나 이리로 올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있는 이 방에 오려는 걸 빼면요.
[끼익...]
갑자기 소리가 멎었습니다.
나는 복도로 이어지는 미닫이문을 등진채 누워 있었습니다.
슥, 하고 나무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곧이어 다다미를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뺨에 바람이 닿는 것 같는 기분이 느껴져, 누군가 바로 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눈을 꽉 감고, 뒤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깨울 것이라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덜덜 떨리는 어깨에, 깨어있다는 게 들킬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와 동시에, 뒤에 있는 것은 누구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키는 큰지, 덩치는 큰지, 무서운 꼴은 아닐지 너무나도 신경 쓰였죠.
두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적어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고 싶어서 슬쩍 실눈을 뜨고 훔쳐보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시야를 움직이면 머리 끝 정도는 보일 터입니다.
상대방 얼굴까지는 안 보이니 알아차리지도 못할 테고요.
그렇게 생각한 나는, 살짝 눈꺼풀을 열어 시야를 등뒤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내 위에 몸을 들이밀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던거죠.
그것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띄고 있었습니다.
나는 엉겁결에 눈을 감고서, 떨리는 온몸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언뜻 보인 얼굴은 여자아이로,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 어깨까지 늘어진 긴 머리, 그리고 기모노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본 것은 그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역시 여자아이 귀신이 나를 잡으러 왔구나, 하고 확신을 갖기에 말이죠.
소리를 질러야 하나?
그러면 괜히 자극하는 꼴이 되는 건 아닐까?
이대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오른손을 쑥 잡아당겨졌습니다.
굉장히 강한 힘이라 팔이 빠질 것 같이 쑤셨습니다.
참을 수 없어, 나는 [으악! 으아악!] 하고 외치며 손을 빼내려 발버둥쳤습니다.
하지만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힘도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목에도 뭐가 걸린 것처럼,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몸부림치고 몸부림치며, 몸부림칠 뿐이었습니다.
문득 나는 눈을 떴습니다.
집 안은 고요하고 인기척 하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연회가 끝나고 다들 잠자리에 든 모양입니다.
방금 전까지 곁에 있던 그 여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은 꼭 닫혀 있었습니다.
자기 전에 내가 닫았을 때와 똑같이.
마치 한번도 열린 적 없었다는 듯이.
나는 황급히 일어나 불을 켰습니다.
방 안에는 나말고 아무도 없습니다.
어디를 봐도,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나말고 다른 누구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이불 위로 주저 앉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이마의 땀을 닦아냈습니다.
자기 전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탓에 꿈에 나온 거겠죠.
다 큰아버지 탓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왠지 화가 치밀었습니다.
불을 그대로 켜놓은채 누워, 밉살스러운 큰아버지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큰아버지가 그렇게 겁만 안 줬어도 이상한 꿈은 안 꿨을텐데.
큰아버지 때문에 이상한 꿈을 꾼 거야!
이런 기분 나쁜 꿈을...
그래, 분명 꿈이었을텐데...
하지만 나는 보고 말았습니다.
이마의 땀을 훔치던 오른손.
얼핏 보기에는 변한 것 하나 없는, 평상시 그대로인 내 오른손.
그 손목에 분명히 손자국 모양의 멍이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 멍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냥 손 모양으로 생긴 멍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하나 끝까지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진짜 손자국입니다.
그다지 크지 않아, 내 손하고 비슷한 정도 크기였습니다.
나는 혹시 자고 있을 때 내가 내 손목을 꽉 잡았던 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곧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오른손 손목을 한번 잡아보세요.
지금 잡은 손은 당연히 왼손이겠죠?
하지만 내 손목에 남아있는 손자국은 틀림없는 오른손이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세수를 하러 약수터에 갔을 때, 화장실에 갔을 때...
혼자 있을 때는 무조건 걱정에 사로잡혀 주위를 둘러보고, 누군가와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마치 지금도 그 여자가 곁에 있어서, 손을 잡히는 건 아닌가 하고.
이렇게 된 것도 다 큰아버지가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 때문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그 사당에 다가간 탓에, 여자아이의 저주를 받은 거겠죠.
이미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어쨌든 사당에 별 생각 없이 접근했던 걸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후가 되자 혼자 산으로 향했죠.
사당에 가서 사과하기 위해, 다시 한번 사당을 향해 걸어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순된 행동이지만, 당시 내게는 그것말고 다른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포장된 하이킹 코스를 벗어나, 풀로 덮인 길을 강 따라 걷습니다.
이윽고 길은 강 수면보다 높아지기 시작해, 조금 더 가다보면 물이 10m는 아래에 있는 계곡이 됩니다.
그 절벽을 따라 더 깊은 산속으로, 두어시간은 걸었을까요?
나는 사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사당은 전에 왔을 때와 다른 것 하나 없이, 무척 낡아있었습니다.
양쪽 여닫이 문은 떨어져 나가있고, 안에 있는 지장보살님은 이끼가 가득입니다.
집을 나설 때는 하늘이 맑았는데, 지금은 하늘 가득 무거운 구름이 끼어 주변이 어둡습니다.
그 탓에 황폐한 사당의 모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제사 때 조상님께 올리던 과자를 지장보살님 발밑에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모은 채, 마음 속에서 사과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어제 큰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머리 한켠을 스쳐지나갑니다.
손을 모으는 동안, 저는 계속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눈을 뜨면 거기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보일 거 같았으니까요.
나를 둘러싸고 둥글게 선 채, 손을 잡고 주변을 맴도는 아이들이.
그리고 그 원 안에는, 나, 그리고 내 손을 잡으려 하는 여자가.
[...찰박.]
갑자기 목덜미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아,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가빠 다리를 멈춰세우고 나서야, 나는 목덜미에 닿은 게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렸습니다.
어느덧 주위에는 엄청난 기세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공물로 무얼 바칠지, 저주는 어떻게 할지만 걱정했기에, 나는 우산도 우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비를 피할 나무그늘을 찾아 주저앉고 잠시 뒤.
이대로는 완전히 날이 저물어, 하산은 고사하고 여기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비는 내리고 빛도 없는데, 모기에게 물어뜯기며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죠.
슬슬 비를 맞으면서라도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나는 큰맘 먹고 비 내리는 숲속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은 본 적 없는 경치가 펼쳐져 있어, 나는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강을 목표로 걸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면, 오솔길이 하이킹 코스까지 이어져 있을 터입니다.
잘 포장된 산책로로 몇십분만 걸으면, 산기슭의 마을이 나옵니다.
강은 사당 서쪽에 있고, 북에서 남으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서쪽으로 나아가는 한, 언젠가는 강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날은 저물고 있었지만, 내가 온 방향을 되짚어 보면 대략적인 방위는 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서쪽이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한결같이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강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방향은 틀림없을텐데.
이제 주변은 칠흑 같이 어둡습니다.
빗발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거세져만 가고, 긴 시간을 계속 걸어왔기에 이미 몸의 피로도 한계였습니다.
그쯤 되자 이미 내 마음 속에서는 사당이나 저주에 대한 공포는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금방이라도 내 몸을 파먹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건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무언가에게 발을 잡혀, 앞에 있는 웅덩이에 크게 얼굴을 박고 말았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눈가에 들어가, 아픈데다 눈도 못 뜰 지경이었습니다.
눈을 비벼봐도 두 손 역시 진흙과 모래투성이라 그것 또한 쉽지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비와 어둠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는데, 더 심해져버렸으니.
옷과 신발은 물을 빨아들이다 못해 폭삭 젖어 축축 늘어지고, 무거운 손발은 피로로 인해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나는 웅덩이에 주저앉아 움직일 기력도 없이, 다만 몸에 쏟아지는 빗방울에 몸을 맡기고 힘없이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오른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옆에서 추어올려줬습니다.
내가 그 힘을 받아 일어서자, 그 손은 내 손을 잡은 채 어딘가로 데려가듯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거스르지 않고, 나아가는대로 따라갔습니다.
향하는 곳은 내가 걷던 것과 같은 방향.
강과 계곡, 절벽이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나는 생각조차 반쯤 마비된 채, 그저 어쩐지 계곡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저 손이 이끄는대로,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그것을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꽤 걸어갔는데도, 좀처럼 절벽을 넘어가는 느낌은 나지가 않았습니다.
내 손을 이끄는 누군가는, 도중에 몇번 방향을 바꾸면서도 계속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뛰다시피 걸으며, 중간에 머뭇거리거나 멈춰서지도 않았습니다.
도중에 몇번 넘어질 뻔 했을 때도, 그 손은 내 손을 꽉 쥔 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나를 일으키듯 강하게 손을 당겨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해주며, 하지만 그럼에도 멈춰서지 않으며.
한참을 걷는 사이, 나는 어느새 내 발 밑의 길이 흙바닥에서 포장된 도로로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아무래도 하이킹 코스에 접어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산기슭 마을까지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손은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나도 눈을 감은 채, 그 손을 따라 계속 걸어갔습니다.
이윽고, 그것은 갑자기 내 손을 놓았습니다.
주위에서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어느샌가 앞이 보이게 된 눈을 천천히 떴습니다.
주위에서 우산을 쓴 어른이 몇명 달려옵니다.
아무래도 나는 하이킹 코스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와 있는 듯 했습니다.
달려오는 사람들 사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옛날, 하지만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고, 막 전쟁이 끝났을 무렵.
아직 제대로 길도 닦이지 않은 산속에서 한 여자아이가 실종됐답니다.
산기슭 마을에서 어른들이 나서서 산을 수색했지만, 결국 여자아이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산에 갔다 아이가 발을 헛디뎌 벼랑에 떨어지거나 물살에 휩쓸리고, 끝내 목숨을 잃고 마는 사고가요.
다들 죽은 것은 아니고, 산 속을 헤매다 무사히 돌아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같은 말을 하더랍니다.
[산 속을 걷다가 누군가한테 손을 잡혔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오른손목에는 으레 손자국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맨 처음 사라졌던 여자아이의 저주는 아닐까?]
마을에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소문이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민 끝에 처음 희생자가 나왔던 절벽 근처에 작은 사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장보살님을 모셔 원한을 달래려고 했죠.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것은, 손자국은 무사히 돌아온 아이들에게만 남아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죽은 채 발견된 아이들의 손목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에서 처음 사라졌던 여자아이는 정말로 저주를 내리고 있던 걸까요?
나는 그때, 달려온 부모님에게 안긴 채 누가 나를 여기로 데려다줬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 모두가 같은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너는 혼자 돌아왔잖니. 함께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나는 문득,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는 분명 하느님 눈에 들어 이 산의 산신님이 된 걸게야. 앞으로 우리를 지켜줄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