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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인 이 남자, 그야말로 ‘덕내가 쩌는’ IT(정보기술) 덕후였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IT 분야에 흥미를 갖기 시작해, 나중에는 독학으로 리눅스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미끄러진 노무현은 생애 첫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바로 ‘한라 1.0’이다. 사람 많이 만나야 하는 정치인을 위한 인맥관리 프로그램이었다. 그의 데이터베이스(DB)에 대한 집착은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훗날 ‘참여정부’의 문서기록 정리 작업이 건국 이후 최대 규모가 된 것은 다 노무현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번의 개선을 거치는데, 일종의 파생상품으로 ‘우리들’이라는 그룹웨어도 있다. ‘우리들’은 “정당, 중소기업에서 인트라넷 환경을 통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5일)이다. 한라 1.0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1998년 ‘노하우 2000’으로 환골탈태한다. 일정관리·연락처·메모·회계·메신저 기능까지 갖춘, 당시 아마추어가 만든 것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인 프로그램이었다. 퇴임 후 만든 정치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도 그가 착안해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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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94년 국회의원과 변호사로 활동해오면서 조직 자료 일정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수있는 수단으로 컴퓨터를 택했다. 또 자연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에 관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처음에는 개인용으로 일정과 인명 자료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해 사무실에서 소규모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있는 수준의 제품을 개발했다. 노변호사는 프로그램개발과정에서 정당운영과 기업경영이 닮은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친김에 인트라넷 환경의 그룹웨어로 발전시켜 "우리들"이라는 그룹웨어를 탄생시켰다.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에 눈을 돌린이후 어느덧 이 분야의 박사급 못지않은 전문가가 된 셈이다. "사용자의 요구수준이 높아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그룹웨어는 원하는 기능을 프로그래머를 통해 끊임없이 채워넣는 작업의 연속이었다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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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호사가 PC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8비트시대 부터. 그러나 그당시는 PC가 주로 워드프로세서용으로 쓰일 때여서 활용은 주로 비서에게 맡겼다. 그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공부한 것은 지난 94년 소프트웨어를 개발키로 하고 데이터베이스 (DB)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부터이다. 그러다보니 DB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제는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할 제대로된 공개DB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변호사는 우선 시민들이 정치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DB부터 만들겠단다. 이와함께 정치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정책자료를 DB로 만들어 재야학자와 정치인이 정책방향을 놓고 상호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여는 것도 정보통신분야에서 갖는 소박한 꿈이다.
노무현이란 사람... IT에 이 정도로 관심이 있었던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고졸 출신으로 대학의 문턱에 가 볼 수 조차 없었던 그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그 노력의 소산으로 탄생한 그룹웨어의 이름이 '우리들' 이란 것에서 그가 지향했던 철학
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와 당신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들'. 프로그램명에
오롯이 담겨진 그의 철학은 그가 주창했던 '사람 사는 세상'과도 일맥상통하겠지요.
얼마 전 싱가폴의 리센룽 총리가 스도쿠 해답기 프로그램을 코딩했다는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과 위의 두 기사가 오버랩 되는 건 왜 일까요?
코딩할 줄 아는 총리가 싱가폴에 현재 존재하고 있지만, 그래요. 우리에게도 프로그래머 출신(?)
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술에 천착하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을 구현하
기 위한 알고리즘 설계 능력을 갖춘, 그런 프로그래머 출신의 대통령 말이에요.
여담인데, 우리가 또 다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갖게 될 날이 올까요?
IT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될 날을 바라는 건 요원한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