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 최악의 안보와 한미관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
페북에 문통에 대한 비난이 넘쳐난다. 어쩌다 보니 문통과 일면식도 없고 정치권과 눈꼽만큼의 연계도 없는 내가 그를 자꾸 변호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 같아 좀 그렇다. 문통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푸틴을 만나 원유공급을 끊으라고 한다든지 북에 대해 최고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한다든지 하는 얘기들 보면 나 역시 억장이 무너진다. 굳이 왜 저런 얘기를 하는 걸까. 외교안보팀 처음 꾸려질 때부터 제기됐던 외교부 라인의 폐습인가.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그런 수사적 내용들 빼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문통이 지금 국면에서 챙겨야 할 것을 정확하게 챙기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트럼프와의 대화에서 탄두 중량을 늘린 것과 첨단무기 구입 부분에서 언뜻 나온 것 같은데 글로벌 호크 같은 정찰 자산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3축방어 체제와 관련한 첨단 무기체계를 미측에 요구한 것 같고 그동안 한국에 팔지 않던 무기 체계를 트럼프가 풀면서 생색을 내는 것 같은 장면을 인상깊게 봤다.
나는 그 지점에 포인트가 있다고 본다. 문통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 국가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다. 기는 것 뿐 아니라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장면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가?
나는 문통이 대북 압박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게 절대 자기 개인의 의사만으로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 또 시중에 도는 대로 외교부 북미라인이 안보라인을 장악해 좌지우지한 결과 때문만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지금 이 국면에서 핵을 가진 북한, 그리고 그 핵을 어떤 방향으로 휘두를지 알 수 없는 북한과 한국민의 생명줄을 쥐고 웃고 있는 미국 사이에 끼어 안보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살아온 이 한심한 나라를 갑자기 떠맡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가슴에 칼을 품고 저 고통스런 장면을 가슴 깊이 새겨도 시원치 않은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남의 일처럼 손가락질 하며 비웃느라 정신들이 없다.
요즘 참 실망을 많이 한다. 외교안보 대북 분야에서 그동안 식견을 보여줬던 분들이 상황의 변화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그 이전 상황에서나 통용될만한 얘기들, 아니 지난 9년간은 북한과 아예 접촉이 없었으니, 9년 전에나 통용되던 얘기들을 고장난 레코드 틀듯 하면서 정말 대안없이 부화뇌동하는 모습 정말 보기 안타깝다. 왜 대화 제의를 안하냐, 특사 제의를 안하냐 등등 얘기하는 데 대화도 상대가 응해야 하는 거고 특사도 받아야 보내는 거다. 모르긴 몰라도 국정원 조차 아직 대북 채널을 뚫지 못했으리라 본다. 저쪽이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가지 기대했던 것은 북한이 6차 핵실험까지는 넘어서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난 4월에 중국이 막아서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중국이 막으면 막아지는구나. 중국이 원유를 끊겠다고 인상을 쓰면 북한도 움추러드는구나. 그렇다면 거기까지는 넘지 못하고 그 이전 단계에서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중관계가 불편해지고 시진핑이 당대회 직전의 권력투쟁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일은 김정은이 공언했듯이 올해안에 5대 핵타격 수단에서 미진한 ICBM과 SLBM 추가 발사해서 완성하고 내년부터 미국과 본격 협상에 돌입하는 것이다. 거기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동결과 폐기를 둘러싼 흥정을 벌이고 북이 원래부터 주장했던 대로 소위 통일대전의 완수를 위한 대남압박을 본격화할 것이다. 북의 사고로는 주한미군만 철수 하면 남한 사회는 갑론을박하다 붕괴하게 돼있다고본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상대방이 이런 어마무시한 스케줄대로, 그것도 하루이틀 준비한 것도 아니고 몇십년, 최소 몇년 준비한 스케줄대로 착착 움직여 가고 있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과 중국이 달라붙어도 말리지를 못하고 있는데 무슨 방법으로 가서 대화로 해결한다는 것인가. 그런 딱부러진 대안 있으면 정말 귀를 활짝 열고 경청하고 싶다. 입장을 바꿔 자신이 김정은이라면 그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피땀흘려 고생해서 이제 고지에 다왔는데 어줍잖은 대화에 응해 결심을 바꿀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북한의 진짜 의도가 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볼 때는 본인들도 잘모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건 중요한 건 저쪽은 핵을 가졌다는 것이고 우리는 미군 전력 외는 우리 독자의 억지력이 없거나 구멍난 상태다. 지난 9년의 보수 정권들이 미국에 퍼주기만 했지 가장 중요한 정찰자산 하나 확보해놓은 게 없어 미군이 철수해버리면 까막눈인 상황이다. 내년의 북미 협상에서 미군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현재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왜 미군이 한국에서 그러고 있느냐 철수하라고 하고 있고 트럼프도 그런 성향의 인물이다. 나도 개인적으론 미군이 없는 자주국방의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 자주국방까지 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리고 우리의 약점이 뻔히 다드러나 있는 상황이라 틀림없이 미국이 도끼눈을 뜨고 문통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 한 국가의 운명을 맡게 됐다면 뭘 어떻게 할 것인가. 자존심을 세우고 멋있는 말을 하면 보기는 좋겠지. 그러나 그게 진정 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자의 자세로서 합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출처 : 2017. 9. 9. 시사in 남문희 기자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ulgot/posts/1443362339034736
2002년 대선, 한 토론회에서 노무현 후보는 권영길 후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당선권에 있는 후보입니다. 집권 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만 얘기해야 합니다.
제가 권영길 후보처럼 꽃노래 부를 줄 몰라서 안부르는거 아닙니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미국과 결코 동등한 외교를 할 수 없는 나라의 수장이
되었을 때, 더 큰 국익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대통령님 마음이 어떠셨을거 같습니까?
그 노무현과 함께 5.18을 목숨걸고 알렸던 인권변호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역시,
거시적 국익을 위해 사드배치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마음이 어떠할거 같습니까?
지난 9년간의 처참한 안보공백과 우리의 약점을 쥐고 압박하는 미국의 입김 속에서도
최대의 국익을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통령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비난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국가와 국민과 역사를 책임져야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꽃노래는 커녕 당장 국민의 질타를 받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을 전복시킨 수구세력 그들과 공생한 입진보정당의 시끄러운 장단에 흔들릴 때가 아닙니다.
지금 누구보다 외로울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건, 국민들의 변함없는 믿음과 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