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옛날발언으로 많이 안좋아했었는데 로베스 피에르의 비유표현이 굉장히맘에들어서 가져왔습니다. 평론가라서 글을 잘쓰긴잘쓰는군요
현 정부를 향한 어떤 태도들에 관하여: 팬덤 정치를 향한 경계심을 이해한다. 조급함을 이해한다. 합리적 의구심과 비판적 지지의 당위도 이해한다. 나는 누구보다 그걸 이해할 수 있다. 맹목적인 믿음이 진영에 오히려 해악을 끼친다는 글을 쓰는 데 내 이력의 오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들어 어떤 의견들은 현 정부의 특수성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역사라는 레퍼런스가 있다. 잘못된 과거를 일신하고 최소한의 룰이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리더들은 항상 고꾸라졌다. 그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적폐 세력이 조직적인 사보타주를 통해 여론에 균열을 만든다. 군부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중도층이 먼저 등을 돌리고 끝내 핵심 지지층까지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개혁은 좌절되고 리더는 쓰러진다. 피를 담보한 혁명이 아니라 명백한 정당성을 가진 지도자들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극동의 전제군주부터 칠레의 아옌데까지 역사는 늘 반복되었다. 그것은 지도자 개인의 비극이 아니었다. 지도자가 쓰러질 때면 그가 상징하던 모든 종류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의 가치들 또한 함께 쓰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작년의 광장을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문회와 탄핵과 선거를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평화롭고 민주적이었기 때문에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이런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시민 불복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정부가 교체되었다. 전임 대통령은 수감되었다. 광장의 열망을 담은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 모든 것이 피 한 방울 없이 정교하고 엄밀한 제도적 절차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것은 역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현 정부가 혁명 정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현 정부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나는 우리가 어떻게든 정부의 방향성에 힘을 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물이 나오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오면 평가도 가능할 거다. 그러나 일단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모아야 한다.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정책과 인프라를 원점으로 돌리는 기행이 불가능하도록 확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앞서 역사를 언급했다. 청산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당위를 겨우 쟁취했는데 공동체의 뜻을 실행할 사람이 로베스 피에르가 아니고 선택된 정부마저 유능하다는 건 역사를 돌아볼 때 거짓말 같은 일이다. 어느 공동체나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역사는 지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체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성과는 더 큰 선의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싸워서 쟁취하고 지켜내야 잠시라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