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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다가오네요
게시물ID : readers_9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onewhale
추천 : 1
조회수 : 16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1/06 14:09:40

팩션으로 한번 올려봅니다 




수능이 다가오니까 생각난다.

옛날 일이다. 내가 수능을 보던 해였으니 3년 전쯤의 옛날 일이다.

가을이 거의 다 지나갈 때쯤 고3학생들이 전부 학교 근처에 있는  근처라 해도 버스를 타고 3~40분은 족히 가야했다  고분으로 졸업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다.

안개도 끼고 비도 많이 왔다. 사진만 후다닥찍고 준비해간 도시락은 뚜껑조차 열지 않은 애들이 많았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당시 내 친구 둘과 버스를 탔다.

 

시간은 점심을 약간 넘겼다. 주위에서 다같이 집에 돌아가느라, 내 친구 둘과 내가 있던 뒷자리에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보통 다 이과반 애들. 그리고 이과반 담임선생님 중 한 분. 

내 친구들은 문과였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서로 얼굴만 알고 인사는 안 하는 애들이 많았다.

버스에 자리가 넉넉치 않아서 나는 서 있었고, 내 친구 둘은 서로 반대쪽 1인용 의자에 앉았다. 나는 버스 통로에서 양쪽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능이 코 앞이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스기사와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한 취객이 내릴 생각이 있었는 지 뒷문으로 비틀거리며 왔다. 불안함이 커졌다. 그리고 곧 들어맞았다. 자기 몸조차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던 취객의 손이 내 친구의 얼굴로 향했다. 뒤에서 온 손이었기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나는 사람이 얼굴을 맞을 때 나는 소리가 무엇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이 있었다. 뒷문 바로 앞자리에 내 친구, 그리고 뒷문, 그리고 그 뒤에 이과반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내가 다른 쪽 창가에서 뒷문까지 가는 데는 두 발자국도 필요 없었다. 화학교사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보며 내가 뒷문으로 다가가 내 친구를 후려친 취객의 손목을 쥐고 물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 취객을 향한 질문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종종 있다.

 

 

나를 돌아보는 취객의 사나운 눈을 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여고생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키가 커봤자 여자애였다.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놀랐고 기사가 차를 세웠다. 

그를 버스 밖으로 끌어낸 것은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와 경관, 그리고 버스기사였다. 

낮이었다. 비가 와서 하늘이 맑지 못했다. 내가 화학교사를 뻔히 바라보고 있자 그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취한 사람이야. 

 

그건 나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게 궁금한 게 아니었다.

화학교사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황급히 내렸다.  

거기가 그 교사의 진짜 집이 있는 곳인지 아닌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뒷자석에 앉은 이과생들 중 몇 명은 나를 알고 있었다. 애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아는 애들은 날 부르기도 했다. 그 화학교사를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황스러웠겠지. 자기 반 애도 아닌 데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거기 앉은 애들 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애도 그를 학교에서 마주치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은 그가 내리면서까지 내 친구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 적어도 다가와서 괜찮아? 라고 물어줄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아니, 당신이 가르치는 애들 중 하나가 버스에서 얻어맞고 놀랬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거기 앉아서? 

 

집에 가는 내내 그 버스는 마치 스쿨버스 같았다. 상황이 정리되자, 애들은  만약에 그 자리에 호랑이 국어 선생님이 앉아있으면 어땠을까? 

 대신 일본어 선생님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같은 얘기들을 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적어도 그 자리에 앉아있다가 한마디 말도 없이 내리는 선생님은 없었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을 때 그걸 처리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우리는 그래도 다가와서 말이라도 건네는 선생님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그 해 학교를 제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식 날 화학교사를 만났다. 대학가면 여자애다워지겠구나, 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분이 꼭 딸을 낳으시길. 여자답게 자라되, 위험에 빠졌을 때, 나 같은 친구를 못 만나길. 그리고 자기 아버지 같은 선생을 만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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