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의 '환'은 환단고기의 '환'이 아니라 박태환의 '환'임을 밝힌다.
2005년 황우석 사태가 일어나고 강산이 한 번쯤 바뀔만한 세월이 지났다.
디씨인사이드에서 사이언스지에 실린 사진이 합성이 아니냐는 의혹에서 출발한 이 사건은 결국 줄기세포나 원천기술이
실체가 전혀 없다는 최종 결론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여자 연구원의 난자 채취 문제로 인한 과학윤리적인 문제와
연구비 횡령 문제까지 제기되며 한 순간에 노벨상 후보로 까지 거론되던 인물이 끝도 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게 만든 사건이다.
황우석 박사는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불치병 치료의 길이 열렸다며 환우들을 만나고 희망을 심어주며 여러 행사를 참가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유력 정치인들과 함께 했었다.
황우석 박사와 정치인들 (출처: ktv)
2006년 MBC 피디수첩에서 황우석 관련 보도를 한다고 하고 지지자들이 반대 집회를 한다고 했을 당시 나는 서울청 기동대 의경 신분으로 말년 병장이었다.
방송국 앞 시위는 종종 있는 일이고 집회 참여자의 특징 상 규모나 상황이 급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기겠구나' 라는 생각을 갖고 닭장차는 여의도로 향했다.
MBC에 도착한 이후에도 하차 명령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더니 차벽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2년 기동대 생활 동안 본 적이 없는 2중 차벽 이었다.
집회 참여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집회 시간 시작 즈음에는 엄청난 규모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불법 시위용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때 집회의 분위기는 언론이 위대한 과학자를 죽이고 있다 였고 진실을 보도한 MBC는 천하에 죽일 놈이 되어 있었다.
(지금 MBC는 죽일놈인지 모르겠다만...)
국제사회가 줄기세포 관련 연구의 헤게모니를 쥐기위해 MBC를 이용해서 황우석을 흠집내 팔아넘기려 한다는 어마어마 한 우주적 음모론으로 인해
MBC는 매국노 방송국이 되어 있었다.
황우석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황우석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완치의 희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불치병이 없어지고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
영화 엘리시움이 나오기도 한참 전에 우리나라는 한 사람의 거짓말로 인해 어마어마 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던 거다.
그 때 당시 황우석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환우들과 그 가족들에게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눈 먼 자가 눈을 뜨게하는 어쩌면 예수와 비슷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결코 아니다.
그들의 정서를 움직이고 피켓을 제작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오게 만든 것은 바로 희망 이라는 원동력 이었을테니...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 황우석은 러시아에서 매머드를 복제하겠다며 말하고 다니고 있고,
사실을 알린 피디수첩의 피디인 한학수 피디는 제작부서가 아닌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MBC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학수 피디는 얼마 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에서 박해일이 분한 역할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현재 소수만이 남아있는 황우석 지지자들은 아직도 황우석을 믿고 전국을 돌며 1인 시위를 하시는 분도 계시며
간간히 포털사이트에 황우석의 기사가 올라오면 "황박사님을 믿습니다" 라던가 황우석을 정권의 희생양 처럼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시는 분도 계신다.
사건의 실체가 어찌 되었든 간에 한 사람의 정서를 건드리고 움직이게 한 순간 다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피 하게 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 모습일지
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지금 황우석과 박태환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황빠와 환빠를 비교하려는 것이다.
이제 박태환 얘기를 해야겠다.
일단 먼저 내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박태환이 모르고 금지약물을 주입했을 거라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이미 예전에 여기다가 글도 싸질렀었다.
여러가지 근거가 있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처방한 의사가 일본에서 내분비내과의로 근무한 호르몬 전문 의사라는것.
그런 의사가 도핑테스트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올림피언인 박태환의 동의도 없이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놓아줬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비단 박태환 같은 올림피언인 국가대표 뿐 만 아니라 소변검사 수준의 도핑을 하는 소규모 대회의 아마츄어 운동선수들도 감기에 걸리면 약을 안먹고 말지 주사는 커녕 보충제나 영양제 조차 함부로 먹지 않는다.
IOC에서 18개월 선수자격 정치 처분을 받은 박태환이 어제 기자회견을 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반성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고의성 여부이다. 이 문제를 떠나면 한 불쌍한 인간만 남게 된다.
지금껏 도핑테스트에 걸린 운동선수가 고의로 맞았다고 하는 선수는 단연코 없다.
박태환 또한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몰랐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약물에 의존 한 적이 없다" 등 사건 이 후 그 동안 박태환 측이 말해 왔던 것과 크게 다른 얘기는 없었다.
(박태환 기자회견 동영상에 달린 댓글 들. 출처: 다음TV팟)
댓글을 읽다 보면 "좋은게 좋은거지"라며 넘어가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쿨 함이 보인다.
황우석 사건때도 마찬가지 였다. 난자 채취 문제로 여성 연구원이 불임이 되든, 국민 세금인 정부 돈 펑펑 쓰든
일단 질병이 없어지는 유토피아 같은 미래가 눈 앞에 다가 왔는데 이런게 대관절 무슨 상관이야? 라는 식의 쿨함이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수영 천재가 수영 불모지 나라에 태어 났는데 실수 한 번 한 게 뭐가 대수야? 라는 식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 배 곯고 굶어 죽게 생겼는데 그깟 민주화가 대수냐? 일단 독재하자. 이번 한 번만 한다니까....등.
간혹 댓글들 중에는 핀트가 어긋난 것들도 보인다.
대뜸 연맹을 비난하는 글 이나 안현수처럼 귀화해라 라는 댓글들 이다.
박태환은 인천시청 소속의 수영선수이지만 박태환 관리만을 전담으로 하는 가족으로 이루어진 메니지먼트사(팀GMP)가 따로 있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선수가 자체적으로 전담팀을 꾸릴경우 국가대표 선수 자격이나 선수수당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초에 불거진 포상금 문제라든가 국가대표 명단 지각등록 문제는 모두 박태환측이 전담팀을 꾸려 호주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발생한 거다.
이 문제로 인해 박태환측과 대한체육회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수영연맹만 욕을 먹었던 거다.
외국에서 촌외훈련 하는 선수를 수영연맹이 어느 병원을 가는지? 어떤 훈련을 받는지? 무슨 수로 컨트롤 하겠는가?
그 동안 암묵적으로 승인해 온 촌외훈련을 수영연맹이 대한체육회에 의뢰해 규정을 바꿔가면서 까지 촌외훈련 승인을 얻어냈다.
그리고 연예인 스캔들과 약물 모두 촌외훈련 기간 중에 터진 일이다.
선수촌 시설이 뭐가 그리 맘에 안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다른 수영 국가대표들은 다 선수촌에서 훈련한다.
촌외훈련은 유례가 없는 명백한 특혜이다.
태릉선수촌 한 번 들어가 보려고 음지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이 보면 위화감이 들만 한 일이다.
박태환의 약물 사건 이후 박태환을 구제하기 위해 드림팀이 꾸려졌다.
박태환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박태환의 소속사 팀GMP, IOC만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외국인 변호사, 거기다가 대한체육회, 그리고 수영연맹,
MB(?) 까지 모두 총 출동해서 자격정지 18개월이라는 처분을 이끌어 냈다.
내부적으로는 2년을 예상했다지만 18개월 처분으로 브라질 올림픽 출전의 길은 열린 셈이다.
하지만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역시 대한체육회 규정이다. 도핑테스트에 걸린 선수는 3년간 자격정지를 한다는 내부 규정이 또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가봐야 알 문제지만 벌써부터 촌외훈련 때 처럼 규정은 안 중에도 없고 다시 규정을 수정하자는 얘기는 IOC의 처분 이후 바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비교하기는 싫지만 미국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시 한번 랜스암스트롱에 대한 미국의 처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존율이 절반도 안 되는 고환암에 걸렸던 사이클 선수였던 랜스 암스트롱은 폐와 뇌까지 전이된 병마를 이겨내고 뜨루드프랑스 라는 권위있는 대회에서 7년 연속 우승한다.
미국 인간승리의 아이콘이자 스포츠 영웅이 되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도 재조명 되었다.
헐리우드 여배우와 가수, 패션디자이너 등 결혼도 많이 하고, 암 환우들에게 기부도 많이 하고 좋은일도 많이 했다.
"ICON" 이라는 랜스암스트롱의 전기영화까지 제작중이었다.
그런 아이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규정을 바꾸기는 커녕 랜스암스트롱의 모든 수상경력을 박탈시키고 사이클계에서 영구 추방시켰다.
동네 조그만 동호회의 자전거 대회조차 못 나가게 만들었다.
미국 메이져리그 최고의 야구 선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 또한 마찬가지다.
211경기 출장정지라는 사실상 강제은퇴에 가까운 무서운 처분이 내려졌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스포츠 스타가 되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약물의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가기도 하고, 고등학교 풋볼 팀이 대회 나가기 전에 코치가 주사 한 방씩 놓아 줄 정도로 약물이 넘쳐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미국사람들 내면에는 잘 못하면 좆된다 라는 의식이 바텀라인으로 공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런 처분이 나올리가.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유럽의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어 왔을 독일을 예로 들면 아직도 나치 부역자를 색출하고 있다.
그 사람이 90이 넘은 노인이건 뭐건 간에 전범자가 되어 감빵에 간다.
잘 못 하면 좆된다 라는 인식.
우리 나라는 이런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의식의 부재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 문제이다.
무언가 일이 잘 못 되면 좋은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거나,
과거의 잘한 일을 들먹이며 한번만 봐주자 라는 둥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있느냐? 넌 그렇게 잘났냐?는 둥.
이런 소리를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이 하고 자빠진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일이 터지면 위와 같은 로직으로 돌아가고 처벌은 커녕 "우쭈쭈 담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식이 되고
황우석 같은 자는 맘모스를 복제한다는 소리를 하고 다닐 수 있게 되는 거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수 없이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일제시대와 같은 역사 이야기를 하거나 정치적인 얘기를 할 때는 대부분이 이러한 내용으로 귀결된다.
"그 양반이 잘 못 한건 있어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만큼 먹고 산다" 라든가...
"큰 일 하다보면 실수도 한 번 할 수 있지! 뭘 그걸 가지고 그래?"라든가...
그러다가 계속된 사실이 나오면 쉴더들은 음모론을 만들어 내고 사건의 당사자를 시대를 잘 못 타고난 불쌍한 피해자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쉴더들의 믿음은 종교에 가까운 것으로 변질 되고 빠가 된다.
황빠는 이렇게 탄생했다.
(황우석 지지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 아님을 밝힌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가 원칙과 정의를 얘기한다면
듣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보다는 애티튜드에 더 집중한다.
원칙과 정의를 얘기하는 사람은 입 바른 소리만 하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좀 싸가지 없이 보이긴 한다.
또한 스스로 오만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이 원칙과 정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스캔들의 당사자가 되면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고,
무슨 말을 하게 될 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바텀라인이 어느 정도 인가를 가늠해 보고나서 말 하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그 당사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