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사를 보면
실제 이날 시위는 심재철과 신계륜, 이해찬 등 당시 학생운동회장들의 격론 끝에 밤 8시 즈음 해산하며 마무리됐다. 당시 회의에서 신계륜 등은 철야 농성을, 심재철과 유시민 등은 군부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퇴각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 이수성은 이들 사이에서 내무부장관과 총리비서실장에게 전화 끝에 안전귀가 보장을 받으며 해산을 설득했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다.
나중에 확인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은 “여기서 해산하면 끝이다. 여기서 신군부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현 한나라당 의원)은 “잠시 물러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움직이자”고 했다.
유시민이 퇴각하자 라고 말했다는 말도 있지만..
나중에 글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쓴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철수 결정이 나오자 가슴 밑바닥에서 안도감이 차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라는 말에서 기인한다. 회군을 반대했으나 한편으로 철수함으로써 학생들의 희생을 막았다는 안도감 정도...
물론 서울역시위가 지속되었다면 유혈사태를 피할수 없었겠으나..
일반적 평은.. 당시 회군은 희대의 병크..로 서울의봄을 종결시킨 사건이다.
그 주역이 심재철이고.. 벌써 국회의원만 몇선째이며.. 똥누리로 승승장구중이고..
유시민을 끌여들여 자신의 서울역 회군을 물타기하는게 참.. 그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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