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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에 대한 기억_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이유
게시물ID : sisa_584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흑무지개
추천 : 12
조회수 : 732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5/04/03 02: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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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흑무지개입니다.



제가 1984년 초등6학년 시절. 당시 드물게도 학교에선 점심 급식을 실시하였습니다.

무료는 아니었고 한달 급식비가 3천원인지 6천원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급식판에 커다란 햄버거빵 같은 것에 우유와 스프류... 때론 밥과 국거리도 있었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점심식사 10분 전이면 저는 하루 중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급식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괴로울 듯한 냄새와 식은 땀 마저 흐르는 제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습니다만... 오늘은 어디를 가야 하나...

반찬통은 며칠동안 세척되지 않은 채로 무말랭이 혹은 무생채가 리필되어 있을 것이고, 밥은 50%의 높은 확률로 쉬어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도시락을 열지 않고 그냥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모르지요. 가난을 증명했다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런지요.

하지만 저는 부유하지는 못했어도 그다지 가난에 찌들 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얼마 되지 않는 급식비를 내기엔 제 용돈이 없었을 뿐이며 도시락을 싸주는 사람이 새어머니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가끔 물어보기는 하지만 배가 아파서 그렇다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흰 양말에 깨끗한 하얀 운동화를 신어 보는 것이 소원이 되어 버렸으며 여름철엔 집에서 얼려오는 보리차나 생수통을 든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지저분한 속옷과 발냄새 때문에 아파도 양호실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다음 해, 그렇게 동네에서 나름 명문 중학교에 진학을 하였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심한 꾸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비닐봉지에 도시락을 쏟아 버린 후 나중에 처리하려고 책상 속에 숨겨 놓은 것을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변명은 안했습니다. 변명해봤자 소용없었겠죠.

점심을 안먹는 제가 궁금했던지 담임 선생님은 저를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초등학교때와는 다르게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내밀더군요.

200원어치 빵 사먹고 300원을 거슬러 오라구요.

뭔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시고 그러시는 지...
그냥 넣어 둬.jpg

그 두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저는 결국 출가를 가장한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왜 의무급식이 꼭 필요한 지 너무도 절실했습니다.

저에겐 가난을 증명할 길도 없었고 급식비를 낼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정말이지 도시락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만 아니였어도 얼마나 행복했을까라는 상상에 빠지곤 합니다.

세상엔 진짜 가난한 아이들도 많지만 가난을 증명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가난을 증명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조리한 점이 있기에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고 눈치보지 않는 사회, 그리고 고통받지 않는 세상에서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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