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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봤다
게시물ID : humorstory_4347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르비내리둠
추천 : 1
조회수 : 34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4/04 22:24:46
의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여름이 걸린 병의 이름을.


병명 : analscutalism

특징 : 장에 전달되는 신경전달 물질의 차단하여 장의 장움직임을 정지시킴.


여름의 남편인 한일은 머리를 글적였다. 병원 안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일은 더위를 느꼈다. 평생 약초들을 캐고 다녔기에, 오랜만에 입어본 양복은 덥고 거추장스러웠다.


"그게 무슨 혀 꼬부라지는 소리요?"


의사는 사무적으로 답했다. 죽음도 삶도 내 것이 아니라는 듯.


"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환자 분은 지금 악질적인 변비에 걸렸습니다. 길어야 3개월 입니다."


산에 살기에 타인과의 교류가 적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심마니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삼을 원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고위 공무원도, 사업가도, 정치인도,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아는 연예인도 만나 본 한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해준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에서도, 변비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한일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겼다.


"으사 선상님, 약 드셨소?"


의사는 진료 차트를 뒤적이면서 말했다.


"보호자분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말씀 드리기 위해 변비라 말씀드린 것이지만, 이건 단순한 변비가 아닙니다. 모든 생물은 음식물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은 장이 음식물 흡수 자체를 멈추는 병입니다. 겉보기에는 변비와 같은 현상을 띄지만, 사실 생명으로써 중요한 부분이 망가진 것입니다."


한일은 이마를 짚었다. 요새 아내가 요실금에 미열이 계속 나기에 병원에 데려왔는데 악성변비에 걸려 죽게 생겼다니. 만일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다면 꽤 웃음이 나올 상황이었다.


"방법이 없소?"


의사는 진료차트를 괜히 넘기면서 종이를 팔랑거렸다. 한일은 의사가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솔직한 심정으로 산 타는 지팡이로 머리를 까부수고 싶었다. 만약 지팡이가 손에 쥐어져있다면 필히 그랬으리라. 의사는 그런 한일의 뇌내 살해충동을 몰라서일까, 여전히 시크하게 말했다.


"현재는 치료법이 없습니다. 링거를 꼽아 연장시키는 것 이외에는. 그러면 서서히 말라죽을 수는 있습니다. 마른 오징어가 되겠네요."


한일은 의사의 콧구멍을 파주었다. 피가 철철나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의사가 말한 말을 애둘러 전했지만 여름은 알아버렸다.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묘한 긴장이 흘렀다.


"먹고 싶은 것 없나?"


자신이 생각해도 형편없는 말이었다. 곧 죽을 아내에게 묻는 게 고작 먹을 거라니. 그러나 의외로 덥석 말을 무는 여름이었다. 여름은 멍하니 밖을 보며 답했다.


"산삼 먹고 싶다."


"산삼?"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이 캔 산삼이 먹고 싶다."


한일은 전방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 운전을 했다. 지나칠 정도로 앞만 보면서. 한일은 심마니였다. 값비싼 산삼을 도라지 찾듯이 찾는 것으로 유명한 심마니. 약초꾼이 부자되기는 코끼리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데, 한일은 그 낮은 확률을 뚫은 자였다. 한일은 물었다.


"왜 그게 먹고 싶은데?"


여름의 눈에 물이 고였다. 여름이 흐느끼며 말했다.


"내 짧은 인생 살면서 한이 두 가지 있는데, 남들 다 가지는 자식 못 가지는 게 첫째다. 근데 그건 내가 못나 그런거니 포기했다. 그리고 남편이 유명한 심마니인데, 산삼 뿌리 끝자락도 못 먹어 본 것이 둘째다. 이왕지사 뭘 먹어도 곧 죽을 거, 당신이 캐어준 산삼이나 먹고 죽고잡다. 무정한 남편 원망 한번도 안해봤지만, 이번 만은 들어달라."


한일은 여전히 전방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2시간 정도 차를 몰았을까? 한일은 귀에서 10cm 거리에 있어야 들릴 소리를 중얼거렸다.


알았다.






구형 롤스로이스가 구부정한 길을 올라갔다. 오후라기엔 늦었고 저녁이기엔 이른 해가 지리산을 그 날의 마지막을 데우고 있었다. 집 보다는 별장 같은 건물의 정원으로 차가 들어섰다. 파바박 돌이 튀었다.


집이 이상하다.


한일은 느꼈다. 말이 짧기에 짐승의 감각이 발달한 한일이었다. 뭔가 캥겼다. 무엇일까? 한일은 그 감각에 집중했다. 약초 창고에서 옅은 두드림이 들렸다. 한일은 여름에게 말했다.


"드가 있어."


한일은 문 앞에 놓은 지팡이를 쥐었다. 산 탈 때 쓰던 지팡이었다. 아까 있었다면 의사놈 꼴통을 부셔주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일은 지팡이를 들고 약초 창고의 문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발 끝에 힘이 실렸다. 누군지 몰라도 넌 오늘 죽었다.


[콰앙! 덜커덕!]


한일이 완벽히 준비가 되기도 전에 키 작은 그림자가 작업실에서 고양이처럼 뛰쳐나갔다. 이럴 수가 10대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삼 노리고 온 년놈들 많았지만, 10대 소녀는 처음이었다. 도둑답지 않음 묵지 않은 머리카락이 독특했지만 한일은 그 사실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손에는 나무와 풀로 얽기섞은 투박한 목걸이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일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목걸이 내놔!!!"


한일은 달렸다.






격한 추격전이었다. 한일은 분노와 절망의 감정과는 별개로 소녀에게 순수하게 놀랐다. 고등학생 때 심마니를 업으로 잡은 후로 일평생 산을 탄 한일이었다. 아무리 자기 나이가 40에 들어섰지만, 산에서 10대 소녀를 쫓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한일은 숨이 턱까지 차서 외쳤다.


"사...살..쾡이 같은 것아! 허.. 허억... 모..목걸이를 내놔!"


그러나 한일의 외침에 소녀는 그저 까르르 웃을 뿐이었다. 해는 어느덧 붉게 물들이며 산 아래로 꺼졌다. 산의 밤은 낮보다 일찍 온다.

 

결국, 한일은 소녀를 놓쳤다.


그리고 어둠 속에 고립되었다.


한일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십년도 지난 과거가 떠올랐다. 고등학생인 한일은 산을 헤매고 있었다. 좋아하던 동갑 여자가 열이 펄펄 끓어 학교를 3일이나 못왔다. 당시 지리산에는 약초꾼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치들이 떠들길 삼만 찾으면 낫는덴다. 해서, 한일은 주제도 모르고 산 속을 뒤졌다. 10대 특유의 무모함이리라. 


이따끔 짐승소리가 들려오고, 산바람은 어지러이 불었다. 그 당시만해도 곰이 나온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리던 지리산이었다. 깜깜한 하늘 속에 의지할 건 오래된 손전등 하나 뿐이었다.


얼마나 헤맸을까? 손전등마저 깜빡깜빡하더니, 꺼져버렸다.  


그 때였다. 


엷은 빛이 보인건.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빛이 사라지자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 것이다. 어둠 속에서 손, 발 온 몸을 더듬으며 빛을 따라갔다. 동굴이 보였다. 10년쯤 수련하던 선각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동굴이었다.







회상이 끝났다. 

한치도 앞을 볼 수 없은 어둠 속에서, 어릴 적과 같은 빛이 보였다. 

그 때와 같은 동굴에서 나오던 빛이었다. 

한일은 홀린듯이 그 빛을 따라간다.



별천지가 있었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덩굴들이 절벽을 덮고 있었다. 

거기엔 작은 집과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계절을 잊은 듯 개나리와 동백꽃이 동시에 피어있었다. 

기억과 그대로이다.

나무 의자에 누워있는 소녀까지도.

소녀는 햇살에 살짝 땀이 절어 있었지만 편아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행복한 꿈을 꾸는 것처럼까지 보였다.

한일은 말했다.


"삼할매. 그거 돌려줘."


삼할매라 불린 소녀는 눈을 뜨지도 않은채 말했다.


"안돼. 너는 약속을 어겼어."


한일의 얼굴은 어느새 앳된 소년이 되어있었다. 

한일은 고개를 도리질치며 소녀의 손에 들린 나무 목걸이를 가리켰다.


"아직 어기지 않았어. 한 번만 더 쓰고 돌려줄께."


"삼을 찾는 목걸이는, 가족을 위해 쓰면 효력을 잃어. 넌 이제 이거 못 써."


한일은 삼할매를 응시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할매.... 여름이가 또 죽는데."


"그래, 그 년. 죽느니 사느니 해서 빌려줬지. 가족한테는 안 쓴다고 약속하고. 이젠 이거 못 써."


한일은 여름이가 그 날이 떠올렸다. 


이웃사촌이던 여름이, 매일 저 멀리 등교하며 투닥투닥 다투던 여름이 아팠던 날을. 


씩씩하던 그녀가 죽는다 죽는다 고함치더 날을. 


생물에서 통각이란 걸 배웠는 데, 그놈이 다른 사람 것까지도 전하는 지를 처음 안 날을.


그리고 그녀가 낫던 날,


죽음보다 가까운 사랑이 있음을 알았다.



"할매.... 마지막이야."


소녀의 얼굴을 하고 할머니라 불리는 여자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이지."




한일은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산 속에서 쓰러진 것이다. 한일은 새벽 어스름 속에서 고개를 좌우로 들렸다. 빨간 열매를 맺은 풀이 하나 보였다. 한일은 그것을 캐서 돌아갔다.


심마니가 의례하는 것을 잊은 채로.


한일은 그것을 정성껏 달여 여름에게 먹였다. 여름의 생각보다 삼은 썼다. 그래서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어딘가 먹어본 맛이다. 그러나 몸은 나을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한일과 여름은 병원을 다시 찾았다.


그제와 다른 의사였다.


"임신입니다."


한일과 여름은 되물었다.


"네?"


"임신이라구요. 3개월째군요.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 보여주십시오. 축하드립니다."


"네??? 어제 으사선상님은...."



의사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짐짓 화가나 보이기도 했다.


"그 사람 정신병자입니다. 정신과에서 탈출해서 의사행세를 하고 다녔어요. 안 그래도 그 사람이 멋대로 처방한 진료 때문에 병원이 여간 골치가 아닙니다. 병원을 대표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한일은 탄식하듯 내뱉었다.


"아이고, 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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