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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스타크래프트2] 샹크투스 비밀작전 06
게시물ID : starcraft2_52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결두리
추천 : 7
조회수 : 110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4/05 05:54:27

깨어남.jpg

[히페리온 함교] 

작업자들은 외부 임시발전기 추가 설치와, 히페리온에 설치된 레이더 시스템 활성화에 매달려있었다.
그렇기에 함교에는 레이너와 맷 두사람 밖에 없었다.

맷이 말했다.
"대장님. 어느정도 예측하셨겠지만 암전 현상은 히페리온같은 장거리 차원 도약이 가능한 함에만 적용됩니다. 스완 아저씨께 확인을 부탁드렸는데, 발키리 호위함으로 우주까지 탈출하는게 가능했다고 합니다."

맷이 어쩐지 위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 자치령 기지는 소형기들이 많이 보관되 있습니다. 어쩌면 히페리온을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것 같습니다."

레이너가 가볍게 웃었다.
"일단 한숨 돌렸으니 좀 기다려 보자구 맷."

맷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레이너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가브리엘 토시. 

그 악령 요원은, 누구든지 첫 만남부터 깜짝 놀랄 강렬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에 걸맞게 실력의 확실함은(음악까지 포함해), 그 대단한 뉴폴섬을 뚫은 것에서 이미 증명했다.

그 순간, 함교창을 둘러싼 스크린이 반짝인다.
전자센서들이 줄지어 눈을뜬다.

울려퍼지듯 번져나가는 가동음. 
함교를 둘러싼 하드웨어들의 합주.  

-로봇부관 작동준비. 시스템 준비중.

잠들었던 함선의 두뇌가 서서히 깨어난다.

정면을 채운 메인 스크린에서 애타는 긴급전문 목록이 뒤늦게 띄워진다. 
지금은 추락한 두 순양함이 보낸 것이다.

그것이 끝없이 올라가는 가운데, 맷이 레이너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 순양함 최고의 음악가가, 결국 성공했군요."




히페리온이 깨어난다. 
한때 고갈됬던 대동맥에 다시금 뜨거운 혈액이 차오르듯, 함선의 심장과 같은 핵융합 반응로의 에너지가 힘차게 솟구친다.

함선의 중추를 이루는 메인 시스템을 시작으로, 
각부를 이루는 하부시스템과 그 아래 함선을 그물망처럼 감싼 말초신경같은 말단 시스템에 활력이 돌아온다.

함선 외부의 국지 방어 센서와 레이더 시스템들이 기지개를 켠다. 
모세 혈관같은 무수한 통로와 외부를 수없이 가로지르는 조명들이 일제히 눈을뜬다. 

메인 엔진이 주변 공기를 떨리게 하는 거대한 포효를 내뿜는다. 
주변에서 그 모든것을 바라보던 특공대 대원들이 모자를 높이 던지며 환호한다.

각 부서 대원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가 창을 가득 채운다.
함교에서 그 모든것을 스크린으로 보고있던 맷이 즐겁게 웃었다. 

"다들 기뻐하는군요."
"내가 보기엔 자네가 가장 신난것 같은데?"
"사실 그렇습니다. 이얏호!"

히페리온 함장 멧 호너. 언제나 귀족처럼 품위있던 이 친구가 발랄하게 팔짝 뛰었다.
동시에 가동 우선순위가 낮았던 함교 내부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다. 

카메라는 해군 정복을 입고 뒷짐을 진 품위있는 함장의 모습을 담는다.
맷은 젊잖게 고개를 끄덕인다.

"훌륭하군요."

철저한 녀석 같으니.
레이너는 그 순간을 담아두지 못함을 어쩌면 평생 후회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라한이 말한 맷의 매력이 이런건가?
 
레이너가 안타까움을 애써 접은후 말했다.
"좋아 맷 우선 나중에 기뻐하고, 당장 전 특공대에게 복귀통신을 띄우게. 가져갈수 있는것 다 챙겨서 이 멋진곳을 뜬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완벽한 전파차단으로 연락이 되지 않던 토시가 사라진 지하 방향이었다.

스크린에 깜빡이는 [ 신호 수신중 ] 메시지를 보며 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토시일거야. 히페리온이 깨어난것과 관련이 있겠지."

두 사람은 스크린을 쳐다봤다. 잠시후 지직 거리는 노이즈가 어린 화면이 띄워진다.
그곳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금발 여자가 레이너와 맷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에 안 든다는듯 눈을 흘겼다.
"또 만나는군 레이너."

맷이 놀라움속에 경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노바. 당신이 어쩐 일이죠? 설마 우리측 악령 요원을 노리고 온 겁니까?"

노바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는다.
"과연 토시가 너희들에게 붙은게 이해가 되는군. 생각하는게 어쩌면 이렇게 똑같지?"

맷이 미간을 찡그렸다.
"멩스크의 충실한 유령요원 노바테라. 말 돌리지 마시죠. 원하는게 뭡니까. 그때의 복수인가요?"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건 이미 끝난 거래야. 하지만 레이너, 후회하게 될거야. 우선 지금은 다른건으로 연락했어. 너희들이 찾고있는 그 골칫거리 악령."

그녀가 위치정보를 전송한다. 불이 들어온 입체 지도에서 드디어 그 유적의 내부가 드러난다. 

프렉탈과 유사한 크리스탈 기둥의 무수한 교차였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두 남자는 잠깐이지만, 마치 홀린듯 그 내부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떤 지점이 빠르게 표시된다. 가장 깊숙한 지점이다.

노바가 말했다.
"토시는 거기에 있어. 하지만 서둘러야 될걸? 거긴 토시만 있는게 아니야. 곧 행성에 엄청난 사이오닉 폭풍이 덮칠거야."

정신을 차린 맷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녀가 피식 웃었다.
"믿어달라고 애원한 기억도, 또 계획도 없는데?" 

그녀는 손을 살짝 흔들었다.
"지금은 여력이 안되지만 토시 녀석에게는 아직 알아낼 기밀이 많아서 말이야. 다음 기회에 꼭 죽인다고 대신 전해줘."

맷이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이미 그녀의 웃음과 함께 통신은 끊어졌다. 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레이너에게 말했다.
"우리 특공대와 엮인 여자들은 다 왜 이렇습니까?"

하하 웃는 레이너를 향해 맷이 재차 말했다.
"사령관님. 이건 거짓일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함정일 겁니다."

그때 막 깨어난 로봇 부관이 경고를 띄운다.
-경고 3등급 사이오닉 에너지가 탐지되었습니다.

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거짓말은 아니지만.... 행성을 덮을 정도는 아닐것 같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관이 재차 경고했다.
-경고 9등급 사이오닉 에너지가 탐지되었습니다. 

"뭐라고!"
레이너와 맷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너가 다그쳤다.

"자세한 정보를 말해 부관! 왜 등급이 틀리지?"
부관은 동공의 센서를 지지직 거리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처리불가능한 정보가 들이닥칠때 같은 극히 드문 반응 이었다. 
-경고. 12등급 사이오닉..... 12등급......12....

동시에 부관의 전자 센서가 번쩍였다. 
그녀가 잠시동안 오류를 해결한후, 곧 간결하게 보고했다.

-경고. 측정불가 등급 사이오닉 에너지가 탐지 되었습니다. 추가 정보가 필요합니다. 

함교의 관측창 너머. 하늘로 알수없는 투명한 푸른빛 기둥이 빠르게 솟았다.
그것을 중심으로, 거의 행성의 모든 대기가 천천히 회전한다.

마치 폭풍같은 구름의 응집에, 지상에 내려가 있던 요원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웅성댄다.

고대의 힘.jpg


레이너가 함교를 걸어 나갔다.
"저 정도 유령 요원이  굳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리 없어. 맷, 특공대원 호출해. 토시를 구하러 간다!"

맷이 만류했다.
"사령관님. 설사 저 정보가 사실이라해도 이건 더욱 어리석은 짓 입니다!"

레이너가 특유의, 아무리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상대 마저도 수긍시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할수있어 맷. 우리가 누구지? 함선 출발 준비나 해놔!"

빠르게 걸어나가는 자신의 상관을 보며 맷이 졌다는듯 미소지었다.
"네네 어련 하시겠어요."

자신의 사령관이 옳다. 그렇기에 레이너 특공대다.

보통 인간은 상상도 할수 없는 온갖 우주의 격전지와 신비로운 고대 세계들. 
삶과 죽음이 수없이 교차하는 역경 속에,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특공대는 유지될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후 대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기동대, 응답하라!" 





거대한 크리스탈 위쪽, 쓰러지듯 누운 토시는 꿈을 꾼다.
시간은 수많은 잔상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킨다. 그 자신의 꿈같지만 이질적이며 다른이의 꿈 이라기엔 익숙했다. 

고대의 우주. 첫번째 자각은 완전함을 열망한다.
우주의 중심. 운명의 은하로 그들은 간다. 이곳으로 왔다.

첫번째 창조 프로토스. 그리고 그 실패와 최초의 분노가 만들어낸 뒤틀림.
두번째 창조 저그. 저그의 시작 제루스의 옛 저그. 뒤틀림의 추동을 받은 침략. 창조물은 창조주를 찌른다. 

이 젤나가는 모든 함선의 관리를 맡고 있었기에 탈출할수 있었다.
고통. 그것은 첫번째 공포를 깨운다. 그들이 쫓아온다. 

의식이 흐려진다. 끝없는 우주속으로 돌진한다. 
물리적 법칙을 벗어나 빛보다 빠르게 공간을 거스른다.

도착. 흐려진 의식속 생명의 충만이 느껴진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 종족의 궁극적 목적을 기억한다. 회복을 추구한다.

본디 대기권에서 스스로 분해될 생명의씨앗은 스며들듯 충돌한다.

하지만 극히 중화된 반동만으로 광대한 산맥지대는 쓸려간다.
행성을 휘감는 새로운 협곡지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더이상 변치 않는다. 

행성의 모든 에너지가 함으로 흘러든다. 숲과 대지는 말라가고 호수와 바다는 사라진다.
가장 작은 생명들의 적응력만이 먼지폭풍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인다.

그는 그 에너지를 부활에 사용한다.
그는 꺼져가는 의식속에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존재는 우주와 같이 숨는다.
고요히 침묵한다. 그 누구도 알수 없도록.

그리고 그 모든 노력에도 회복할수 없는 상처. 
익숙치 않은 어두운 감정을 끝으로 그렇게 의식은 잠겨간다.


긴 시간.
아주 머나먼 시간.

의식은 무언가를 느낀다.

시간의 끝. 
활발한 움직임. 

문이 열린다.

어떤 존재들. 
작고 연약하지만, 개성과 이지를 가진 존재. 

이 행성과 다른, 이질적인 에너지가 흡수된다. 
흡수에 저항할수 있는 어떤 존재가 첫번째로 느껴진다. 

자신을 보려한다. 사념은 놀라움과 함께 눈을 뜬다.
다른 존재들이 들어온다.

다시 흡수. 그리고 깨달음. 익숙한 느낌. 자신을 찌른 두번째 창조물. 
그것은 일그러진 기억을 떠올린다. 그들은 하나의 중추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흐름은 배신자에 대한 기억을 가져온다. 고통과 원한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긴 세월 뒤틀린 감정속에 침묵한 이곳의 존재. 시간은 최초의 복수심에 독특한 능력을 부여한다.

그들이 가진 미세한 에너지의 가지를 타고 넘는다. 번개와 같이 역행한다. 
어떤 중간의 기착지. 그곳을 통솔하던 존재의 경악. 

통솔적 존재는 그 이상의 중추를 향한 역행을 차단한다. 
자신의 희생도 아랑곳 없다. 근원적인 충성의 대가는 지도자의 안전. 종족 전체의 안전. 

우주를 향한 그 존재의 마지막 외침이 솟구친다.

-여왕이시어! 탐험을 완수했습니다. 유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이곳을 보시면 안됩니다!

죽음직전 전달된 최후의 지휘. 
전사들은 야생화 되어도 마지막 쓸모를 가지리라. 

-기회를 준비하되 적이 다가가면 행동하라! 위협을 제거하면 공중전사를 생산하라! 적의 거대 비행체와 그 호위를 최우선 파괴하라! 

기함과 호위기 파괴가 실패할시 그것은 이제 막을수 없는일. 
칼날여왕의 명으로 행성에 투입된 여왕은 충분한 명령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만족속에 침묵한다.

고대의 젤나가. 그는 이윽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를 느낀다.
그는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뒤틀린 환희를 자각한다.

드디어 두 창조물이 모두 왔구나!





토시는 희미한 기억속에, 자신에 대한 젤나가의 오해를 이해하고는 얼핏 미소짓는다. 

오해. 토시를 프로토스로 혼동한 오해 . 
그것은 인간의 사이오닉 능력을 증폭시키는, 프로토스가 창조의 숨결이라 숭배하는 테라진의 흔적 때문이리라. 

젤나가의 흔적을 중심으로, 타오르는 태양과 같이 환한 에너지와 빛으로 산화할 이곳. 
이제 이 행성을 짓누르던 쐬기의 역활은 끝났다.

놀랍게도 불살의 의지를 가진 힘은, 두려움에 숨은 연약한 토착 생명체를 부드럽게 지나칠 것이다. 
이 행성은 몇만년후 다시 생명이 가득찬 행성으로 회복하리라....

힘은 오로지 행성이 낳지 않은 종족만을 대지위에서 파멸시킬 것이다.
'과연 세 종족은 같은 운명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는 기억과 혼동되는 어떤 희미한 형상을 본다. 
마치 영혼이 웅얼거리듯 기이한 소리를 듣는다.

환하게 일렁이는 녹색 빛무리 속에 그의 새로운 형제들, 레이너특공대의 문양이 아른거린다.
서서히 회복하는 자아를 느끼며 그는 미소짓는다. 

아아! 이것은 또한 어떠한 환상인가!
알수없는 영혼들은 왜 자신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토시는 젤나가와의 접촉과 동시에 자신을 잊었다. 
그저 쓰러진 찰나의 기억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과도 속도를 지나, 이미 우주의 시간, 그 끝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벅찬 적을 상대한 형제들은 무사할까. 
노바는 어찌 되었을까. 혹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건 아닐까. 

자신은 비록 이곳에서 죽더라도 레이너 형제여, 반드시 대업을 이루시길.
자신의 형제들도 그를 도우며 앞으로 잘 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키워졌으니.

다만 토시는, 마지막으로 느껴진 약한 아쉬움을 느꼈다.
죽음 직전에 발견한 자신의 약한부분을 그는 약간 조소했다.

레이너특공대. 그리고 레이너. 그 형제와는 어쩌면 죽음과 삶을 함께할수 있다고 여겼다.
그와 같은 운명을 걷고 있다는 믿음은 그저 흔적만 남은 치기일 뿐이었나....

그 순간, 무언가 차가운 가시같은것이 그의 몸 속으로 파고든다.
죽음이란건 참 기묘한 기분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성 의무관이 소리쳤다.
"아직 반응이 없어요! 응급 조치는 취했으니 빨리 함내 의료센터로!"

흰색 CMC 의료 장갑복을 입은 특공대 소속 의무관이 토시를 끌어안은채, 녹색 빛줄기 같은 나노봇 방출을 중단하며 주사바늘을 뽑아냈다.

낄낄 거리는 힘찬 목소리가 어떤곳을 보며 외쳤다.
"이봐 그때 그 화끈한 행성 생각나지 않아? 난 이 대장나리가 반란군 이끌고 우리를 구했을때 드디어 내가 진짜 미쳤구나 했는데!"

다른 목소리가 푸하하 웃는다.
"이 형씨 여기서 아주 끝내주는 경험을 했나보군! 전투 치료제 한사발 필요하겠어?"

점프 추진기를 걸친 한무리의 사신.
의무관을 양쪽에서 안고 이곳까지 순식간에 날아온 그들이, 멀리서 아른거리는 사이오닉 폭풍을 보며 마구 낄낄댔다.

예의 여성 의무관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런 이상한것 내 환자에게 주입하면 가만 안둬요!"

짐짓 과장되게 감탄 하는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이쿠! 무서운 언니네! 환자를 구하러 이 위험한 곳에 자원 하셧다죠? 전 중위님 같은 스타일이 좋더라!"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뒤이어 어떤 걸걸한 목소리가 외쳤다.
"이봐 수다는 나중에 떨고 일단 튀자고! 아무나 사령관한테 이 친구 찾았다고 연락해!"

"좋아 오늘 밥값 못해서 근질거렸는데 이 친구 덕분에 몸좀 풀었군!"
그들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의무관과 쓰러진 악령요원을 붙들고, 비스듬히 뉘어진 크리스탈 기둥위을 날듯히 솟구쳤다.

그들이 사라진지 얼마후, 지직거리는 엄청난 규모의 사이오닉 폭풍이 그 자리를 한차례 쓸어버린다.

샹크투스 해방.jpg


지상. 드디어 마지막 대원이 탑승한다.
마치 영원히 땅에 닿아있을것 같던 거대한 함선.

함선의 모든 문이 닫힌다. 
한차례 웅장한 진동. 

함선 운용 요원을 제외한 수많은 대원들은, 그동안 너무도 당연했던 출발을 지켜보기 위해 창마다 가득 늘어서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함선이 떠오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한번 터져나온 끝없는 환호성.
히페리온은, 드디어 우주를 향한다.

그리고 행성 샹크투스. 함선을 휘감은 대기가 기이하게 일렁인다.
히페리온이 착지한 흔적 주변 곳곳에서 추락하거나 나뒹군 발키리 편대가 어지러이 널부러져 있다.




[히페리온 무기고]

무기고 전면을 덮은 거대한 외부창이 땅을 뚫고 올라가 드디어 눈부신 태양의 빛이 들어온다. 
그 주변으로 빠르게 낮아지는 땅.

"우와아!"

엔지니어들은 마치 명공연의 클라이막스에 감탄하는 관객과 같이 기립박수를 보낸다. 
동료들의 환호성 속에 바깥을 바라보던 스완이 한숨을 쉰다.

카친스키가 옆에서 눈물을 흘릴것 같은 그를보며 웃었다.
"아까워요 스완?"

스완이 침음성을 흘렸다.
"젠장 아깝긴 뭘! 전장은 항상 변해, 감상에 빠져 따라가지 못하면 진다고!"

하지만 스완은 스텟먼에게 받은 미지근한 에너지 음료를 열어, 분풀이하듯 벌컥벌컥 마셨다.

당초 히페리온을 호위하며 함께 우주로 탈출하려 했던 발키리 편대.
 
하지만 지하에서 솟구친 빛기둥을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 중력이상 현상. 
그로인해 몇기가 땅을 나뒹굴고, 또 하늘로 갑자기 솟구치자 안전을 위해 모두 비상착륙했다.

그들을 격납할 시간은 없었다.
막 토시를 구출하러 떠난 사신 부대의 귀환소식을 접한 레이너는, 동시에 발키리 호위함 포기를 명했다.
 
예의 중력 이상 현상이 떠오르는 히페리온의 함체를 긁어댔지만, 
막대한 출력의 엔진은 그것을 꿋꿋히 버터내며 히페리온을 하늘로 차근차근 올려보냈다.




[히페리온 함교]

제자리를 찾은 승무원들이, 관측창 너머 천천히 낮아지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손을 신바람나게 움직였다.

로봇 부관이 한층 빠른 주기로 경고했다.
-측정불가 등급 사이오닉 에너지 탐지. 행성 전체를 초고위험 사이오닉 폭풍이 뒤덮고 있습니다. 즉시 대피를 권고합니다.

지상을 찢어발길듯 뒤덮는 격렬한 에너지 폭풍. 

"마지막까지 아주 끝내주는데!"
함교에 선 타이커스는 히페리온이 이륙한 협곡에서 넘실거리듯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격류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또다시 중력 이상이 함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반중력장을 마치 무시하듯, 순식간에 히페리온이 몇십미터 아래로 추락하듯 꺼져내려갔다. 

손잡이를 잡은 타이커스가 레이너에게 물었다.
"이봐 지미, 저거 진짜 장난 아닌데 말이야, 괜찮은거 맞지?"

맷이 그를 돌아 보며 빙긋 웃었다.
"타이커스씨는 우리 히페리온의 성능을 여전히 모르고 있군요."

항해사가 빠르게 외쳤다.
"메릴투스 궤도상을 목표로 단거리 차원도약 좌표설정 완료! "

맷이 손목의 시계를 들었다. 정각까지 5초전.
"2번, 6번 엔진 가동! 전원 내 신호에 맞춰 차원도약 실시!" 

히페리온의 차원도약 엔진이 에너지를 빛낸다.
샹크투스 행성을 뒤덮은 푸른 사이오닉 폭풍. 이제 그것은 히페리온이 솟은 대기권 하층부까지 격렬하게 솟구쳤다.

"발진!"

그 푸른 불길이 함선을 집어 삼키기 전, 맷의 외침. 
번쩍이는 차원도약과 함께 히페리온은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히페리온 휴게실중 한곳]

히페리온 곳곳에 위치한 휴게실은 음악과 작은 파티들로 소란스러웠다.
힘든 임무를 완수하고 상황 종료가 떨어지면, 한동안 이 정도 분위기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의미있는 결과를 낸것은 아니지만,
놀랍게도 희생자가 한명도 없는 상황속에 분위기는 임무의 성공적 완수를 축하하는 모습들이다.

사람들이 모인곳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웃음, 함성이 들려왔다.

"뭐야? 또 전쟁광 용병들이야?"
"오 그때 일을 드디어 마무리 하는건가? 그럼 난 이번에 코시 녀석에게 걸겠어!"
"사랑이 걸린 문제라고! 좀 진지해 이 자식들아!"

크라첼은 오랜만에 가벼운 활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아무나에게 권하는 술병을 받다가 어느세 맥과 월리엄과도 떨어졌다.

그는 약간 떨어져서 싸움 구경을 했다. 
'일단' 우정을 택하며 팔짱을 낀 용병들. 그후 시작된 뒷풀이 술병 비우기 대결을 구경했다.

'나도 끼어볼까?'
그는 생각하다가, 현재 착용한 레이너 특공대의 활동복을 힐끔 내려다 보았다. 
'역시 좀 어색하군.'

잠시후 그는 빈 의자중 하나에 앉았다. 
그리고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새로운 술병을 따는 호기로운 용병들을 계속 구경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곳은, 그들을 보고있지 않았다.

그는 방금전 의무동에 약을 타러 다녀 왔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크라첼은 자리를 비운 청년 의무병을 카운터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이전에는 경황이 없어 지나쳤던 병동을 천천히 구경했다.

깨끗한 침대들이 길게 늘어선 곳중 하나를 혼자서 차지한 흑인 남성이 보였다.
남성을 본 순간 그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자유분방하고 개성있는 레이너특공대 에서도, 그는 상당히 튀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 전해지는 남성적인 위압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분명, 저 친구는 군인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진찰을 위해 온것 같았다. 매력적인 여성 의무장교가 침대에 앉은 그에게 걸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사무적인 필요를 넘어선 무척 친근한 분위기로 말를 건냈다.

크라첼은 짐짓 다른 볼일을 보는척,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 가브리엘 토시 님. 이제 괜찮으신 거죠?"
"이제 괜찮군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 어차피 육신의 영향을 미치는 상처는 아닙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회복할수 있습니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함 최고의 보컬께서 혹시 잘못되시면, 저같은 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크라첼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히페리온에 소속된 가수였군. 그러니 전투중에 코빼기도 안 비쳤지.'

그녀가 그를 진찰하듯 팔을 쓰다듬으며 은근히 말했다.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 밤에 한번 더 진찰 받으러 오세요. 아무도 없을 시간이니 자세히 살펴볼수 있을거에요. 이런 일은 경과를 잘 지켜봐야 하거든요."

무시무한 인상을 가진 그는 의외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저의 상처는 보통 방법으로 치료하는 종류가 아닙니다."

토시라 불린 남자가 일어났다.

"아 저기....."
뭐라 말하려다 망설이는 그녀는 토시가 다시 쳐다보자, 마치 응원하듯 말아쥔 손을 들어보이며 화사하게 웃었다. 

"이번 토요일 공연도 꼭 보러 갈게요!"
토시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여준후, 그가 있는 입구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크라첼과 눈이 마주친 그 의무장교 아가씨가, 새침하게 눈을 흘기며 반대편 입구로 걸어 나가는게 보였다.
이런....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티나게 쳐다봤나 보다.

그는 토시가 지나칠때까지 짐짓 카운터의 흰 가운을 입은 여박사 포스터를 보는 척 했다. 
씨익 웃으며 수술장갑을 끼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이던데 누구지? 

그때 그의 뒤에서 그가 멈춘 기색이 느껴졌다.

크라첼이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마주봤다. 
'이거 사람은 맞나?'

가까이서 봤더니, 알수없는 위압감이 더 장난이 아니다. 
"저에게 볼일이라도?"

잠시 그를 쳐다보던 토시가 미소지었다.
"사령관이 구해준 분 이군요."

그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할 것도 없는 맞추기 놀이. 낯선 사람을 알아보는거야 아무나 하는 일이지.

그 순간, 그는 토시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그 흰색 눈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냥 '본다'와는 달랐다. 마치 그의 깊은 내면을 직접 들여다 보는듯 했다. 그는 살짝 굳어있는 그에게 미소지었다.

"이런, 저도 모르게 실례를 저질럿군요. 당신같은 인재를 보는것은 흔치 않은 일 이어서 말입니다."

크라첼이 어색하게 농담을 건냈다.
"인재? 혹시 절 밴드로 영입할 생각이신가요?"

토시와 아이들.png

토시는 재미있다는듯 하하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보며, 크라첼은 재차 확신했다.

이들 특공대가 보여준 모습 이상으로, 토요일에 공연을 연다는 이 음악가 역시 놀라웠다.
범상치 않은 집단이기에 과연 전속 가수마저도 이토록 비범하구나 싶었다.

토시가 말했다.
"흔치않은 인재. 영웅의 조건이죠."

크라첼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건 칭찬인가 아니면 어떤 조롱인가?

토시는 씨익, 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가장 큰 용기와 힘, 깊은 지혜보다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것은 옛 지구에서부터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렸죠. 강렬한 예감 혹은 예지나 천사, 수호신."

묘하면서 끌어당기는 듯한 분위기. 그는 마치 어떤 영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선지자처럼, 크라첼을 무의식적으로 집중하게 했다.
"비록 사이오닉 능력이나 초능력처럼 눈에 띄는 종류는 아닙니다. 또한 명백한 운명이라면 어쩔수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 거대한 흐름에서, 손을 한번 휘저어 볼수 있는 것이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찰나의 순간. 한발의 총탄과 순간의 선택에 생가 사가 갈리는 그런 순간..... 그것은 때로 절대적인 차이를 부르는 법이죠."

그가 안타깝다는듯 말했다.
"당신같은 인재가 이런곳에 뭍혀 있었다니. 영웅을 꿈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황제의 어두운 눈을 탓할수 밖에 없군요."

크라첼은 낮게 웃으며 멀어지는 토시의 뒷모습을 쫒았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불현듯 그의 뒷모습을 다시 쳐다봤다.

히페리온의 기묘한 예술가. 
그는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져 있다. 

크라첼은 유령이라도 본듯 멍하게 그쪽을 쳐다보다가, 방금전 그의 말에서 떠올린 무언가를 다시 생각했다.
'저 가수....마치 내 마음을 읽은것 같군. 역시 레이너 특공대는 대단해.'

크라첼은 자신의 경험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맥과 월리엄 둘다 없었다.
같은 벙커를 사용했던 특공대원들도 어디 섞여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월리엄 일병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아마 그 녀석은 지금쯤 이 함선의 수석 연구원 이곤 스텟먼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놀랍게도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자치령 연구소가 위치한 티라도3 행성에서 연구원과 보조로 함께 근무했었다는 두 사람.
그들은 자치령의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에 환멸을 느껴 그곳을 엉망으로 만든채 함께 탈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월리엄은 실패하고 말았다. 
스텟먼은 월리엄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네가 결국 나오지 않았기에 결국 혼자인줄 알았어! 하지만 넌 내가 바깥으로 탈출한 뒤로 시간을 벌어준 거구나!"

스텟먼은 그것에 모자라 눈물까지 흘렸다.
"넌 옳았어! 네가 날 구해줘서 이렇게 우리 특공대에 도움이 될수 있었다고!"

월리엄의 회상에 의하면, 그는 오랜 갈등끝에 마지막 순간 스텟먼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국 스텟먼을 이해하지 못한 한 동료로 인해 도망갈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결국 탈출을 포기한채 스텟먼의 탈출을 원격에서 지원,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하지만 보조 연구원일 뿐인 그는 딱히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애당초 사건을 일으킨 의도 역시 심문관들이 실소할 정도로 순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고향이자 자치령 수도성 코랄에는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그는 두가지 선택중 한가지를 강요받았다.

그가 지금껏 인체 실험체를 조달받았던 뉴 폴섬에 반란죄로 수감되던가, 혹은 기억 소거술을 거치지 않는 조건으로 해병에 '자원'해서 조용히 복무하던가.

스텟먼이 눈물을 훔치며 밝게 웃었다.
"월리엄 가족 걱정은 말라고! 너도 내가 있는걸 확신 못했잖아? 우리 특공대 정보조작팀 실력은 저 느려터진 자치령과 비교도 안된다고!"

월리엄은 이번 작전으로 드디어 묵은 빚을 받았노라 장난스럽게 평했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오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라첼은 2년 넘게 알아왔던 월리엄이,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생각을 하던 크라첼 병장은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더니, 맥 상병 이었다.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요. 병장님 함교에서 레이너 사령관이 우리를 찾고 있습니다."
"사령관님이..... 우리를 왜 찾는거지?"

크라첼은 레이너를 이제 자연스럽게 사령관님이라 부르는 자신에게 피식 웃었다.
맥은 상관없는듯 짐짓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깜빡 잊을 정도로 정신없긴 했지만, 저희는 일단 포로이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부른것 아닐까요?"
"....."

크라첼은 씁쓸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 말이 맞다. 맥 역시 몹시 진지한 표정 있었다.

사실 따지자면, 그들은 자치령에 대한 배신자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버린건 자치령이 먼저였다.

이곳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는 대중매체에서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정권의 비밀들을 접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이곳 특공대가 허물없이 대해줘서 어느새 마음을 풀어버리긴 했지만, 이건 중요한 순간이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걸까. 

방금전 휴게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곳의 전투적인 건설로봇 조종사들. 
그들이 자신을 '전리품' 이라 부르곤, 마치 동료처럼 친근하게 등을 두드리며 건내준 맥주캔를 꺼냈다. 

그는 맥을 불러세웠다. 이게 필요할 것이다.
그는 마치 어떤 의식을 치루듯 그것을 노려보다가, 힘있게 열었다.

크라첼은 차가운 탄산이 상쾌하게 터져나오는 첫번째 캔을 맥에게 건내곤 하나를 더 땃다.
"가기전에 우선 한잔씩 하지. 맥 코웬 상병님."

구원함.jpg

[히페리온 함교]

함교까지 걸어간 크라첼과 맥은, 여러 인물들 사이에 제임스 레이너 사령관과 맷 호너 함장을 보았다. 
먼저 도착한 월리엄이 밝은 표정으로 그들에게 미소지었다. 

함교의 전면 관측창으로 푸른 메릴투스 행성이 가득 들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페리온 주변으로 우주를 반짝이는 민간 함선들의 불빛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메인스크린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런 맙소사.

스크린 너머에 가득찬 사람들.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물들.
메릴투스 부 행정관과 신문에서 한번은 본적 있는 몇몇 행성 정치인들. 그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으로 레이너 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맷 함장이 막 도착한 두 사람을 미소로 바라봤다.
"아! 메릴투스가 낳은 영웅들이 또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화면 너머로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이제 보니 그들은 붉은 자치령 깃발을 떼어낸후, 
투스 항성계를 상징하는 푸른 깃발을 걸어올린 행정관서 앞 대광장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맙소사. 그들 너머로 수도 셀수 없는 시민군 병력이, 
레이너 특공대를 상징하는 깃발과 항성계 깃발을 바다처럼 흔들고 있었다.

맥 상병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죠?"

맷이 하하 웃은후 대신 답했다.
"그러지 말고 직접 물어보시죠."

화면에 중년의 부 행정관이 가득 들어왔다. 
자세히 봤더니, 그는 행정관을 상징하는 뱃지를 가슴에 달고 있다. 

크라첼은 바보같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없는사이, 도데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거지?'

부 행정관, 아니 자치령을 거부하고 메릴투스 자치정부를 세운 새 대통령. 
그는 그들을 보자 반색하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오오 당신들이 특공대를 도와 항성계의 저그를 몰아낸 우리의 영웅들 이군요!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레이너가 말해주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메릴투스는 자네들의 활약상을 모두 보고 있었어. 항성계를 버린 자치령에 대한 진실을 안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혁명정부를 세웠다네."

크라첼과 맥은 모르고 있었지만, 얼굴이 가려진 월리엄과 몇몇 특공대원들을 제외한 이들의 대화는, 
함선 곳곳은 물론, 메릴투스의 전 시민들과, 혁명에 동참한 다른 행성의 이들 역시 보고 있었다.

레이너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새 대통령을 바라봤다.
"메릴투스의 여러분. 혁명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 시작일 뿐 입니다." 

또한 그의 말은, 레이너와 친분이 있는 전직 연합 리포터의 해적방송에 힘입어, 
코프룰루 곳곳의 혁명 지지자들이 지켜봤다.

"해방된 행성들이 여러분의 동참을 환영할 것 입니다. 하지만, 많은 어려움이 따를것 입니다. 훗날 자치령의 보복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지만 새 대통령은, 오히려 활짝 웃으며 당당히 말했다.
-모든 시대는 반드시 끝나는 법입니다! 사령관님, 우리는 인간이며 모든것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영원한 역사와 함께 걷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의 메릴투스 전체가 진동하는 함성이 뒤따랐다. 레이너는 눈을 빛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메릴투스! 혁명을 함께 하게 되어 특공대 대표로서 영광입니다. 전 특공대, 메릴투스를 향해 경례!" 

레이너를 필두로, 함교의 인원들이 경례를 붙이자 화면속 인물들도 벅찬 눈빛으로 손을 머리에 붙였다.
-감사합니다 레이너 사령관님! 메릴투스를 대표해 혁명의 완수를 응원합니다!

다시한번 몰아친 함성. 
신임 대통령은 뒤이어 사령관과 함께선 세명의 해병들을 바라보았다.

-또한 여러분들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세분은 신생 독립국의 탄생을 함께한 영웅들로서, 마땅히 그에 걸맞는 직책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세 젊은이는 화면속 대통령을 쳐다보다, 서로를 번갈아 봤다.

오른쪽에 선 맥 상병이 두 사람을 보며 히죽 웃었다. 
"제기랄 저도 이러는 제가 놀랍지만.... 전 하겠습니다. "

왼쪽의 월리엄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뭐 어떻게든 될 겁니다. 병장님은?"

두 사람은 크라첼도 당연히 자신들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레이너 사령관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축하하네 제군들! 고향 행성에서 신생 정부를 이끌어 주게. 그렇다면 이제 이별이군. 다시 만날일은 아마 없을거야."

"레이너 사령관님...."
크라첼은, 우모자 보호령까지 포함한 약 수십억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을 보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화면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크라첼은 갑작스럽게 마치 사죄하듯 고개를 숙였다. 

제임스 유진 레이너 사령관. 
크라첼이 태어나서 처음 진정한 존경을 느낀 그 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본다.

"저는 어리석고 무지했습니다. 특공대를 무차별 테러리스트라 칭했으며 사령관님에 대한 비난에 의심없이 동참했죠." 

사람들로 가득찬 화면이 조용해 졌다. 
히페리온 내부에서 스크린을 보고있던 대원들도 침묵하며 주시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령관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이전의 어떤 그늘이 사라진듯 단호한 눈빛으로. 
얼핏, 그 두 사람의 눈은 같은곳을 보고 있는 듯했다.

크라첼이 힘있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저 비열한 자치령의 선동이라는 것을, 사령관님과 함께 해서야 비로서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그는 미소짓는 레이너를 향해 말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자유를 착취하는 비열한 손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죠. 이제 와서 그들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의 눈은 어떤 확신에 또렷이 빛났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깊은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레이너 사령관님. 저는.....!"



[히페리온 함교] - 3시간 후

히페리온의 차원도약 엔진이 눈부신 빛을 뿜어낸다. 
주변을 메운 메릴투스 민간함선들이 우주를 밝히는 축포와 조명탄을 일제히 쏘아올린다.

맷이 뒷짐을 진채 전방을 바라봤다.
"사령관님 장거리 차원도약 준비 완료 됬습니다."

레이너가 3차원 지도를 조작하며 전방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옆으로 신입대원 크라첼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크라첼,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네. 고향 행성을 보는것도 이게 마지막일 수 있지. 정말 후회하지 않겠나?"

크라첼은 몸을 꼿꼿히 세우며 우렁차게 외쳤다.
"물론입니다!"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함교 승무원들이 미소지었다.
크라첼은 마침내 결정한 자신의 선택에 의한 환희와 두근거림, 그리고 이들과 함께 나아갈 끝없는 우주, 그 운명을 가늠했다.

그의 예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자신을 전율시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들, 영웅들과 함께할 것이다. 
그 운명의 끝에 무엇이 있든 절대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레이너 특공대다.

레이너는 만족한듯 미소를 지었다.
"자네 장거리 도약 해본적 있나?"

크라첼이 약간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실은 전투순양함에 승선한것도 오늘이 처음 입니다."

레이너가 말했다.
"천천히 익숙해지게. 이제부터 여기가 집이니까."

승무원이 잇따라 외쳤다. 

"차원도약 좌표설정 완료!"
"2번 6번엔진 장거리도약 준비완료!"

맷이 손목의 시계를 들었다.
"전원, 10초후 내 신호에 맞춰 장거리 차원도약 실시."

그는 뒤이어 레이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령관님 저번에 말씀하신 곳으로 도착 좌표를 설정하였습니다."

맷의 말에 레이너가 무언가를 떠올린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로봇 부관이 말한다.
-경고. 진동에 대비하십시오. 5초후 장거리 차원도약에 돌입 합니다.



5


4

3

2....

긴장한채 진동하는 우주를 주시하던 크라첼은, 레이너가 짧게 웃는걸 들었다.
"좋아 혁명 성공에, 훌륭한 대원도 받았군. 다음엔 어떤 작전으로 멩스크를 깜짝 놀라게 해볼까."

시계를 주시하던 맷 호너 함장이 팔을 겨누듯 뻣었다.
"히페리온. 장거리 차원도약 발진!"

때아닌 눈부신 번개가 번뜩였다.
새 대원을 실은 히페리온은, 무한한 우주속으로 순식간에 쏘아졌다.

우주.jpg

-자유의날개 비밀임무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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