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난 후 씻지않은 접시들이 켜켜이 싾인 싱크대가 맘에 걸려 설겆이를 시작하여봅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눌님은 어쩐지 냉장고를 꺼내 정체를 알 수 없는 밀폐용기들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총각김치라던지 언제 집어넣었는지 기억이 나지않는 불고기라던지, 하여간 어느집 냉장고에나 흔히 있을법한 냉장고에 너무 오래있어, 이제 보내드려야할 음식들이었네요.
근데, 좀 많습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전날 비운 음식물쓰레기통을 단숨에 가득채웠으니까요. 어쩐지 저날은 뭐에 홀린듯이 밥도 태웠습니다. 뭐가 안풀리는 날입니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냉장고는 참 두려운 존재입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습니다. 일단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문을 열기 시작하면 끝도없이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튀어나옵니다.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았다지만 냉장고란 녀석은...
????????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선행상영회 티켓을 남겼?
뭐 냉장고가 준건 아니고 애니플러스 접속했다가 저 소식을 듣고 예매한거죠. 다만 일요일 저녁이라는 시간대가 문제였는데 저녁시간, 애들도 안보고 혼자서 동대문까지 올라가서 '만화영화' 를 보러간다는걸 마눌님에게 설득하는게 보통일이 아니었다는거죠.
"그럼 애들 데리고가. 만화영화라며."
"아니 저거 15 세 이상 관람가."
"보호자 동반하면 상관없잖아. 데리고 가."
"아니 저거 그런 만화영화가 아니라..."
마눌님의 말빨은 돌고래도 설득시킬 기세인데 아니 열살짜리 데리고 페이트를 어떻게 보냐구요. 가볍게 데구루루 구르며 떼를 써서 간신히 혼자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곳' 온게 처음인지라 둑은둑은했는데 역시나 잘왔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극장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극장을 가득 메운
달빠 덕후님들을 보며 뭔가 에매하게 자리잡고 있던 외로움이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달까...
당연한 얘기지만 극장 안에서 찍은 사진은 없네요. 애니플러스 스탭분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 중이었던데다가 찍을 생각도 없었고... 다만 아쉬웠던 장면이 엔딩때 아쳐 정면샷이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들이 극장 스크린을 가득채운 아쳐의 울퉁불퉁한 정면샷을 보고 정말 "꺄아~" 하는 비명을 질렀던지라... 아쳐, 등으로만 말하는줄 알았지...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2기도 상당히 잘나왔습니다. 심지어 원작에도 없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집어넣어 캐릭터들의 행동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네요. 특히나 메데이아의 경우 원작에서는 할로우아타락시아까지 진행을 해야 인물에 대한 공감이 가능한데 유포터블에서는 단 한 화를 할애해서 설득력을 부여했습니다. 애니화에서 흔히 보이는 다소간의 원작파괴(구체적으로 설정파괴, 엘키두)도 그저 극적인 장치로 쓰였을 뿐 원작 그 자체를 훼손한 수준은 아니었고 덕분에 버서커도 캐릭터가 확 살았습니다. 적어도 13 ~ 15 화까지의 전개는 어떤면에서는 원작을 능가하였고 눈에띄는 작붕도 없는 훌륭한 수준인듯합니다.
오늘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원 KT 야구장을 지나가는데 1번국도까지 울려퍼지는 우렁찬 응원소리에 깜놀해서 창문을 열고 그 소리를 애들하고 같이 들었네요. 둘째는 나중에 야구장 같이 가자고 하는데 첫째는 야구를 좋아하지않는다며 하는 말이 대충 이랬습니다.
"저 야구팀이 이기든 지든 내 생활에 무슨 변화가 있는건 아니잖아."
참고로, 얘가 초등학교 3 학년입니다. 단어의 사용과 생각이 대충 저러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거라면 다르지않을까? 아빠는 지난주에 만화영화보러갔잖아. 아빤 좋았는데?"
"아빤 만화영화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모르긴 몰라도 얘는 커서 훌륭한 사람될것같아요. 아니 적어도 멀쩡한 사람될것같아요.
상영회때 나눠준 선물들. 저는 사쿠라가 참 좋은데 이번에는 비중이 공기네요. 내년이면 극장판 나오겠죠? 그때 또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