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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 홍합찜 요리 해먹다 망한 얘기
게시물ID : cook_146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edase
추천 : 0
조회수 : 176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4/07 01:03:07


http://todayhumor.com/?humorbest_1038454



이 글을 우연히 보고 난 후, 며칠째 홍합이 머리 속에서 동동 떠다녔습니다. 워낙 홍합을 좋아해서 겨울엔 무와 땡초를 넣고 홍합탕을 만들어서 한 솥을 혼자 해치우는데, 서양식 홍합찜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 그 맛이 궁금한 적도 별로 없었는데, 고든 램지 파워에 어쩐지 요리가 굉장히 쉬워보여서... 

그래서 부활절을 하루 앞둔 어느 날, 홍합과 백포도주, 크림을 사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사실은 해먹어 봐야지, 하고 결심한 것도 아니고, 장을 보다 보니 어영부영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나씩 집어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서막인 줄 예감하면서도 저는 운명처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요리 재료: 파 샬럿 마늘 칠리 샐러리 올리브유 올리브잎 타임 홍합 버무트 백포도주(드라이) 

                              파슬리, 크림 

집에 있는 재료: 파 양파 마늘 홍합 백포도주(스위트) 올리브잎 참기름 고추기름 식용류 크림... 



어라? 

뭔가 갖춰진 재료가 이상합니다. 포도주는 이거 만들려고 일부러 사온 건데 순간 눈앞에 뭔가가 끼었는지 

종류를 틀리게 집어왔습니다. 샐러리나 버무트 같은 건 그렇다 하는데 올리브유와 칠리가 없는 게 걸립니다. 

홍합탕에도 땡초 없으면 맛 없는데!!  


모자란 걸 새로 장 봐오면 되지 않겠냐 싶으시겠지만, 독일은 부활절을 맞이하야 금요일, 월요일이 모두 

마트를 열지 않는 휴일로, 모자란 재료를 보충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원래 가게 문을 열지 않구요. 

화요일 즈음 해 먹으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했는데, 홍합이 기다려 주질 않습니다. 점점 신선도가 떨어져 가는 홍합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이리 버리나 저리 버리나 매한가지라는 정신으로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요리 도중엔 멘탈이 붕괴되는 속도가 너무 심해 차마 사진을 찍지 못하였으니 사진없는 요리글에 양해를... 



생각해 보니 올리브유와 칠리가 없는 것을 극복할 묘안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고추 기름에 고춧가루를 볶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뭔가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이거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 생각이 제일 위험합니

다. 하지만 그 당시는 그게 위험한 줄 모르죠. 저는 늘 그렇습니다. 큰 냄비에 올리브유 마지막 남은 몇 방울과 

중국식 고추기름을 일단 두르고 고춧가루를 볶은 후 미리 손질해 놓은 채소를 볶습니다. 양파, 파, 마늘. 

샐러리는 원래 좋아하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패스합니다. 슬슬 볶은 채소에 간 고기를 섞어서 마파두부로 전환하

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2014. 11. 20. 20 36 39.jpg



(그러쓉니다! 저는 원래 요리계의 테러리스트는 아닌 거쉬였쓉니다!) 




지금이라면 다른 쪽으로 전환할 수 있어. 아직은 출구전략이 유효해! 하지만 어차피 홍합을 버리게 되는 건 마찬가지입

니다. 그럴 거라면 처절한 실패의 경험이라도 쌓는 것이 낫다!! 못먹어도 고!! 를 외치며, 껍질을 깨끗이 닦아 놓은 홍합

을 와르르 쏟아 넣습니다. 뭔가 모양새가 그럴듯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미심쩍은 모양새가 됩

니다. 뭔가 홍합만 넣은 짬뽕을 하려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것 같은 이상한 모양새라고 하면 좋을까요. 아무튼 발갛게 익

은 양파에 백포도주 를 부었다가는 뭔가... 목불인견의 무언가를 볼 것 같은 그런 확신이 듭니다. 에라, 모르겠다. 아, 

이젠 정말로 늦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정말로 늦은 것입니다. 



야매토끼 짤.jpg



포도주를 넣지 말고 육수를 붓는다거나 하면 구제가 될 거야.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상합니다. 

무슨 자존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홍합이 상하기 전에 자존심이 상합니다. 뚜껑을 대충 닫아두었던 냄비에 

화끈하게 백포도주를 콸콸콸 붓습니다. 새큼한 냄새와 함께 정신이 듭니다. 아차, 내가 이거 얼마나 넣은 거지. 꺼내 

두었던 계량컵을 괜히 흘겨봅니다. 언뜻 눈짐작으로 보기에 동영상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이 넣은 것 같습니다. 이 국

 다 졸아들까? 걱정이 됩니다. 슬쩍 떠 먹어 보니 신맛이 대애박...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를 외치며 고춧가루를 

한 수저 푹 퍼서 쏟아 넣습니다. 일단 하면서 뭔가 맛을 맞춰 보자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마늘도 조금 더 

넣어 봅니다. 그리고 냄비 위로 흩날리는 올리브잎. 



tears.jpg




아, 어려서부터 먹는 거 남기면 안된다고 보고 듣고 배우고 자란 데다가, 이걸 남에게 먹이는 만행은 저지를 수 없다는 

일념으로 제가 다 먹었습니다. 죽겠어요. 




Ich sterbe.png





다음 대선까지 홍합 생각은 안 날 것 같아요. 좋은듯. 







ps. 엑박이 뜬다는 분들이 계셔서 삭제하고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이전 글을 먼저 보셨던 분들 죄송해요 
그리고 요리 자체가 맛없는 게 아니라 제가 테러를 저지른 겁니다 ㅠㅠㅠ 혹여라도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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